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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순간' 고두심, 제주의 얼굴 [인터뷰]
작성 : 2021년 07월 06일(화) 10:51

빛나는 순간 고두심 / 사진=명필름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배우 고두심은 제주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고두심이 곧 제주도의 풍광이라는 소준문 감독의 말처럼 그는 제주도 자체다. 진심으로 고향을 사랑하는 배우가 고향과 맞닿은 작품과 만났을 때의 시너지는 엄청나다. '빛나는 순간'에서의 고두심이 그렇다.

1972년 MBC 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고두심은 어느덧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드라마 '전원일기' '인어아가씨' '꽃보다 아름다워' '한강수타령' '춘자네 경사났네' '거상 김만덕' '결혼해주세요' '최고다 이순신' '엄마의 정원' '부탁해요, 엄마' '디어 마이 프렌즈' '계룡선녀전', 영화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깃발 없는 기수' '엄마' '가족의 탄생'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 그가 33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멜로 영화로 관객과 만났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제작 명필름)을 통해서다. '빛나는 순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멜로 작품 중에서도 큰 나이 차이다. 그러나 고두심은 사랑의 여러 가지 이름 중 한 가지기 때문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사랑이라는 것은 꼭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다. 만약 남녀 간의 사랑만 생각한다면 그 나이 차이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사랑은 평생 있을까 말까, 그것도 나에게 찾아오지도 않을 사랑이다. 단지 남녀 간의 감정뿐 아니라 상대방의 깊고도 아픈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생기는 감정이다. 각각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만난 상황이다.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이 사람의 마음이 치유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뭘 못할까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고두심은 소준문 감독의 적극적인 러브콜에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소준문 감독에 따르면 고두심이 곧 '빛나는 순간'이고, 고두심의 얼굴이 제주도의 풍광이다. 이에 대해 고두심은 "감독님이 처음에 나를 꼬실 때 '제주도가 곧 고두심'이라며 손 편지를 써 줬다. 이걸 받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해녀를 대변하는 역할이다. 해녀는 제주도의 정신이자 혼이다. 그래서 내가 꼭 해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도 나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더라. 내가 아니면 이 작품을 덮으려고까지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감독님을 뵈니 진실성이 보였다. 영화에는 남녀의 멜로뿐 아니라 제주 4.3 사건 등이 나온다. 거기에 감동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빛나는 순간 고두심 / 사진=명필름 제공


제주도는 고두심의 고향이다. 실제로 겪은 사건을 표현하는 데 더욱 공감이 됐을 터. 그는 "실제로 내가 살던 고장 바로 윗동네는 제주 4.3 사건으로 초토화됐다. 얼마나 끔찍하고 무섭나. 내가 제주도에 살면서 그런 것들을 쭉 몸에 각인시켰다. 극중 제주 4.3 사건에 대해 내가 긴 독백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건 내가 했어야 하는 게 맞다. 어느 배우보다도 내가 실제로 피부에 와닿은 게 있지 때문에 생생하다. 그 생생함을 작품에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가 깔끔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것 같다. 비단 남녀 간의 멜로뿐 아니라 제주도의 배경과 인물들에 중점을 두면서 보시면 좋을 것 같다" 고 설명했다.

제주도에서의 촬영은 고두심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고두심은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19살에 상경했다. 이후 계속 서울에서 살면서 배우 활동을 한 그다. 다시 고향에 내려간 고두심은 촬영 자체가 치유였다고 전했다.

고두심은 "고향에 가서 촬영한다는 거 자체로 힐링한 기분이었다. 항상 고향에 대한 기억과 음식들이 머릿속에 있었는데, 두 달 동안 촬영하면서 다 이룬 기분이다. 제주 사투리는 내가 정말 잘 하는 건데, 사투리로 촬영한 것도 좋은 기억이었다. 또 해녀들과 교류한 것도 좋았다"며 "제주도 분들은 다들 날 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도 재워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활했으니 얼마나 좋아겠냐"고 뿌듯함을 표했다.

이어 "사투리도 더 못 알아듣는 옛날 사투리를 쓰려고 했다. 어차피 영화에서는 자막 처리가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윗대의 언어를 쓰고 싶더라. 이걸 끄집어 내기 위해 옛날 기억을 더듬기도 했다. 사람들이 더 모르는 말을 소개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두 달 동안 정말 푸짐하게 사투리를 쓴 것 같다"고 덧붙였다.

특히 해녀를 연기한 게 잊지 못할 점이라고. 고두심은 "나 역시도 나이가 70살이 됐지만 여자라는 건 못 놓겠다. 해녀는 아주 척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목숨을 걸고 밑바닥을 살았다고도 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들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들이 여자인 모습을 연기한 건 정말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다만 고두심은 수중 촬영은 어려웠다고 전했다. 중학교 때 바다에 빠질 뻔한 기억이 있는 고두심에게 바다란 어려운 곳이었다. 과거 영화 '인어공주' 촬영을 위해 바다에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고두심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촬영은 달랐다. 곁에서 지켜주는 해녀들 덕에 용기를 내 바다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더 찍자고 요구할 정도였다.

고두심은 "'인어공주' 때는 자맥질도 못해서 대역을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역을 쓰기 참 어려운 역할이었다. 이걸 기회로 물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자는 마음이었다. 내 주변에는 해녀들이 포진하고 있으니까 혹시 내가 물에 쓸려가도 날 끄집어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런 믿음 덕분에 공포를 극복했다. 사전에 연습을 많이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는 자신감이 붙어서 더 찍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물에 들어가서 부력에 인한 리듬이 붙는데, 그게 참 묘하다. 이젠 맛이 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빛나는 순간 고두심 / 사진=명필름 제공


진옥의 빛나는 순간은 경훈을 만나 "예쁘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고두심의 빛나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는 "연기자로 말하면 상을 탈 때도 있고, 작품을 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도 있다. 인간 고두심으로서는 엄마가 돼서 아기를 잉태했을 때를 꼽고 싶다. 너무 신비로운 경험이다. 그때는 남편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면서 아이를 세상에 낳는 거다. 그 순간은 정말 찬란하고 빛나는 순간이다. '빛나는 순간'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듣고 내가 언제 빛났을까 생각해 보니 딱 그때였다"고 전했다.

'빛나는 순간'까지 세상에 내놓은 고두심은 어느덧 데뷔 50년 차다.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그에게도 연기적인 고민은 있었다. 그는 "앞으로 무슨 역할을 맡고 싶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다. 물론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 역할이 꼭 오는 건 아니지만, 어떤 배역이 주어지면 그 인물에 어떻게 다가갈까를 고민한다. 고두심을 빼고 그 인물 자체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거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분했을 때의 연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내가 마냥 연기하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그리는 거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은 책을 통해서 얻고, 귀동냥으로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연기에 녹는 거다. 이런 걸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 새벽 시장이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전에 요리 프로그램을 했을 때 직접 의상을 준비하러 동대문 시장에 다닌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연기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면서 연기에 녹이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떡을 파는 사람들은 등이 굽었는데, 왜 굽었는지 관찰하고 그걸 나중에 연기에 어떻게 쓸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거다. 새벽 시장은 생명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고두심은 연기 인생 50년 차에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으로 꾸준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 이번에 파격 멜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난 고두심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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