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픈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과 교감을 나눈 순간을 들 수 있다. '빛나는 청춘'은 각각의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나이를 초월해 진심을 나누는 이야기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제작 명필름)은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과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경훈(지현우)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진옥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온 경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경훈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진옥을 설득하고, 진옥은 TV 출연이 부담스럽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중 진옥이 아이들에게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 시범을 보였고, 4분이 넘어가도록 바다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영도 하지 못하는 경훈은 불안함에 바다에 뛰어들었고, 도리어 진옥이 경훈을 구해 건져낸다. 인공호흡으로 경훈을 살린 진옥은 감사함에 눈물을 흘리고, 이들은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이후 진옥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그의 매니저를 자처한 경훈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진옥의 곁에서 성심성의껏 일을 돕는다. 이들은 서로가 소중한 사람을 바다에서 잃은 것을 알고 더욱 교감한다. 진옥 역시 점점 남자로 보이는 경훈 때문에 소녀처럼 변하고, 경훈도 진옥을 향한 마음을 키우게 된다.
빛나는 순간 / 사진=영화 빛나는 순간 스틸컷
작품은 33살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진옥과 경훈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나아가 이성 간의 사랑으로 발전하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이다. 심지어 극중 진옥과 경훈은 '손자뻘'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작품은 과하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진옥과 경훈의 사랑이 단지 에로스(육체적 욕정이 동반된 사랑)로만 그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처한 아픔과 고통을 진심으로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누구나 위로할 수 있지만, 내면의 깊은 슬픔을 공감하기란 힘든 법이다. 진옥은 바다에서 어린 딸을 잃었고, 경훈 역시 여자친구를 바다에서 찾지 못했다. 바다라는 매개체, 그리고 생사를 오간 순간을 함께하면서 서로의 위로가 돼준 것이다. 존재 자체로 위로이자 치유인 이들의 사랑은 육체적 의미보다 정신적 의미에 가깝다.
매개체인 바다도 중요한 장치다. 바다는 생명을 품고 있는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다. 진옥에겐 딸을 잃은 공간이면서 해녀로서 활동하는 곳, 즉 삶의 터전인 셈이다. 아이러니한 바다는 강한 생명력을 뿜고 동시에 아픔이 응축된 곳이다. 진옥과 경훈의 사랑도 바다처럼 강렬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운 제주도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아름다운 공간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연출을 맡은 소준문 감독은 구도, 색채, 조명은 물론 먼지 하나까지 아름답게 그렸다. 영상미에 푹 빠져서 러닝타임을 그대로 보내도 좋을 정도다.
제주도의 풍속도 사실적으로 표현된다. 실제 해녀들이 등장해 그들의 노래를 부르고, 알아듣기 힘든 제주도 사투리가 여과 없이 나오며 사실성을 높인다. 이는 관객들을 쭉 몰입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실제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가장 사실적인 배경에서 묘사된 것이다.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높이는 데 한몫한다.
배우 고두심의 연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힘 있게 작품을 끌고 가고, 지현우와 파격 멜로도 거침없이 소화한다. 특히 서서히 경훈에게 마음을 여는 진옥을 소녀처럼 그리며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역시 50년 경력의 내공이다. 롱테이크로 이어진 진옥의 독백신 역시 명장면이다. 고두심이 특유의 흡입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해 제주도로 초대한 듯하다. 실제 제주도 출신인 고두심의 제주도 사투리 연기도 압권이다.
'빛나는 순간'은 파격적인 멜로 아래 위로와 치유라는 잔잔한 감동을 담고 있다. 진한 여운과 제주도의 아름다운 배경이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