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배우 김명민의 말 한 마디에는 여유가 넘쳐 흐른다. 여유로우면서도 묵직한 한 방이 있는 김명민은 모두를 압도하는 관록이 있다. 이러한 관록은 '로스쿨'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최근 김명민은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극본 서인·연출 김석윤) 종영을 맞아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로스쿨'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이 교수가 사체로 발견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얽히게 되면서 펼쳐지는 캠퍼스 미스터리 드라마다. 김명민은 극 중 검사 출신 형법 교수 양종훈 역을 맡았다.
김명민이 '로스쿨' 출연을 결심한 건 김석윤 감독을 향한 강한 신뢰 때문이었다. 과거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 김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김명민은 "영화에선 서로 눈빛만 보고 통했다. 그런 김 감독과 드라마에서 만나면 어떨까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예상한 만큼 좋았다"고 말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고 고백한 김명민은 이 과정에서도 김 감독을 향한 애정을 뚝뚝 묻어냈다. 그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 탓에 외적인 사담을 나누지 못했다. 원래 김석윤 감독의 현장은 살을 부딪히면서 '꽁냥꽁냥' 가족 같은 매력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선 그런 걸 하지 못해 한이 맺혔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김 감독은 '로스쿨'을 통해 김명민의 레전드 캐릭터를 되새기는 기회를 줬다. 실제 김 감독은 김명민의 대표작 '베토벤 바이러스' 속 강마에 캐릭터를 떠올릴 수 있도록 연기 디렉팅을 했다. 김명민은 "대본을 봤을 때부터 강마에와 너무 비슷했다. 일부러 그렇게 쓰셨다더라"며 "10년 전의 김명민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젊은 세대들에게 그때의 김명민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는 게 김 감독의 의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말투나 억양을 대본에 쓰인 대로 하나 보니 강마에와 비슷한 면이 있더라. 초반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저 나름대로 강마에의 맛을 살리되 그 기시감을 극복하려고 했다. 그래도 양종훈만의 모습도 보인 것 같아 다행"이라고 털어놨다.
김명민에게 '로스쿨'은 쉽지만은 않았던 작품이었다. 짤막한 클립 영상으로 만족하는 요즘, 하나하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파헤치는 작품이 수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고. 그는 "제가 정통 드라마를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며 "머리를 싸매고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시청자들이 생각해야 할 몫을 나눠드리기도 했다. 그게 '로스쿨'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깊이 있는 서사라는 과제를 넘으니 고난도 대사라는 장애물과 마주했다. 김명민은 "보통 일반 캐릭터를 연기할 때와 비할 수 없이 대사가 어려웠다. 한 페이지 대사 분량을 똑같이 외운다고 해도 시간이 10배 이상 들었다. 잠깐 딴짓을 하면 까먹어 항상 잠꼬대 하듯이 외워야했다"고 밝혔다. 이어 "법적 용어를 이해하지 않고는 대사를 외울 수가 없더라. 관련 판례를 찾아보고 완전히 이해했을 때 대사로 읊을 수 있었다. 100배 더 힘들고 괴로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명민은 역시 김명민이었다. 호흡이 긴 대사를 원테이크 촬영으로 소화한 그는 "오히려 여러 번 촬영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매너리즘이 생긴다"고 밝혔다. "연극을 하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원테이크를 찬성하는 편이다. 흐름도 끊기지 않고 매끄러운 호흡들이 나오기 때문에 훨씬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한 그에게서는 '프로'의 향기가 느껴졌다.
'로스쿨'은 로스쿨 교수, 학생들의 이야기 외에도 성범죄, 정치, 데이트 폭력 등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면서도 같이 판단해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가면서 이를 로스쿨 학생의 사연에 접목시켰다. 기가 막히게 잘 녹아들어 큰 부담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로스쿨'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가장하고 있지만 치열한 경쟁을 통해 뭔가를 이뤄내려는 법학 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들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투영시키며 시사하는 바도 컸다"며 "저 역시 배우로서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부분이 컸다. 살아가는 동안 비슷한 문제들이 대두될 때마다 '로스쿨' 생각이 간절하게 날 듯싶다"고 언급했다
김명민에게 '로스쿨'은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 됐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김명민을 괴롭게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저를 힘들게 한 만큼 그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두 번째는 자신을 닮은 듯한 양종훈 때문이다. 그는 "살아가면서 양종훈을 계속 떠올릴 것 같다. 목표하는 지향점 등 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며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작품에 임할지, 배우로서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명민은 소문난 '전문직 전문 배우'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의사, 지휘자, 검사, 교수 등의 직업을 섭렵했다. 그러나 전문직 연기는 매 순간 그에게 도전이었다. 김명민은 "전문직은 모든 연기가 어려웠다. 그 순간에는 죽기 아님 살기로 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제가 읊고 있는 대사의 키포인트는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전문직 너무 어려워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며 웃음을 보였다.
전문직 배우라는 이미지 고착화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그는 "기시감을 극복하려 했다. 이번 작품을 할 때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강마에 같은 부분을 원하는 시청자들이 있다는 김석윤 감독의 말에 용기를 가졌다"고 말했다.
용기와 더불어 여유도 가지게 됐다. 차기 활동 역시 조급하지 않게 결정하고 싶다는 그다. "다른 캐릭터를 보여드리려 노력도 해 봤다. 그러나 좀 이른 감이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한 그는 "그래서 차기작도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고민 중이다. 성급하게 이미지를 확 바꾸기보단 조금 더 여운을 드리고 시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김명민은 여유로움의 미학을 잘 아는 배우다. 여유롭기에 더욱 관록이 묻어나는 그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