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악역 전문 배우' 김의성이 이번에는 '모범택시'에서 선역으로 열연했다. 시청자들은 언제든 김의성이 악역으로 변할 수 있다며 긴장의 끊을 놓지 않았다. 김의성은 이런 반응 역시 즐겁다고 전했다.
김의성은 1988년 영화 '성공시대'로 데뷔해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건축학 개론' '관상' '내부자들' '부산행',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W' '미스터 션샤인' '국민 여러분!' 등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그런 그가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극본 오상호·연출 박준우)로 돌아왔다. '모범택시'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김의성은 극중 무지개 운수의 대표인 장성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의성은 "6개월 동안 100명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했는데, 큰 사고 없이 코로나19 환경에서 촬영을 무사히 마친 게 가장 큰 다행이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우리 드라마를 뜨겁게 응원해 주셔서 감격했고, 감사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끝내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종영 소감을 말했다.
김의성은 '모범택시'의 기획에 끌려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그는 "인물, 대본의 퀄리티, 같이 출연하는 배우 등을 다 떠나서 기획 자체가 좋았다. 정의감과 세태를 논하는 게 좋았다. 이렇게 억울한 피해자를 위해 복수하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소속사 스태프들과 모여서 다음 작품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내가 '사적인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면 안 되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범택시' 대본을 받았다. 바로 읽고 하자고 말했다. 오래 기다린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장성철과 만난 김의성은 캐릭터에 접근하는 데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그는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일단 장성철은 이중적인 사람이다. 낮에는 범죄자들을 용서하고 피해자들을 돕고 다정다감하지만, 밤에는 범죄자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이 사적인 처벌을 가한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감흥이 없고, 사람들을 감옥에 넣기도 한다. 이 사람의 진짜 모습을 무엇일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공존할 수 없는 두 인격이 공존하는 게 이 사람의 특징이라는 거였다. 이런 게 바라보기로 마음먹었으면서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택한 건 장성철도 마음에 병이 있다는 거였다. 이 사람이 받았던 상처가 병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을 정하니 인물에 접근하는 길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장성철은 김의성이 오랜만에 맡은 선역이다. 그간 김의성은 악역을 연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장성철이 끝내 배신해 악역으로 바뀌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의성은 "시청자들 반응이 재밌었다. '긴장 풀지 말고 끝까지 각 잡고 봐야 된다' '김의성은 배신해도 배신이고 배신 안 해도 배신이다'라는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장성철이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준 게 아니냐"고 미소를 보였다.
이어 "드라마에 참여한 한 구성원으로서 메인 줄거리가 주는 즐거움 외에 다른 즐거움을 준 것 같다. 장성철은 참 좋은 배역인데, 나같이 삐뚤어진 사람이 이걸 맡았고, 살릴 수 있다면 더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사적인 복수라는 내용이 시청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었을 터. 김의성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장 걱정된 건 '모범택시'에서 옳다고 행동하는 게 법에 어긋난다는 거였다. 이 부분을 시청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거부감이 들 수 있고, 지나치게 옹호해도 문제였다. 이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방송이 되니 쓸데없는 걱정이구나 싶었다. 시청자들은 지혜롭게 작품으로 즐기더라"며 "'모범택시'를 보고 실제 택시를 몰고 길거리에 안 나가지 않냐. 우리 드라마에서 묘사된 폭력의 수위가 높았지만, 성인들이 보는 작품인 만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모범택시'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방송됐던 '빈센조'도 다크 히어로물로 사회 부조리를 다뤘다. 법의 영향력이 아닌, 개인이 사적으로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모범택시'와 '빈센조'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으며 2021년 상반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시청자들이 다크 히어로물에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의성은 카타르시스라고 평했다. 그는 "법이나 공권력이 고루 다 미치지 못하고 있고,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처벌이 약한 부분도 있다. 다들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온라인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 않냐. 실제로 우리나라 법이 공평하지 않은지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공권력은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잘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다르니까, 뭔가 부족하고 풀리지 않은 답답함이 있는 거다. 이럴 때 드라마가 대리 만족을 주고, 사회적인 카타르시스를 준 거다. 실제 제도를 바꿀 순 없지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돌파구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모범택시'는 학원 폭력, 보이스 피싱, 성범죄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다뤘다. 김의성은 그중 학원 폭력 문제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고 전했다. 그는 "직접적으로 겪은 건 아니지만 학원 폭력 문제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 때보다 지금이 학원 폭력 문제가 더 심한 것 같다. 우리 때는 그냥 선생님이 폭력을 휘둘렀고, 학생들끼리는 잘 지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 이런 심각성을 학교나 경찰, 교육청이 인지하고 있나 의구심이 든다. 이런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며 "내가 했던 대사 중에 '누구에게 학창 시절이 추억이지만 누군가에겐 죽고 사는 문제일 수 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죄의 무게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라는 대사가 있다. 이런 부분이 공감 되더라"고 했다.
이처럼 '모범택시' 속 장성철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나아가 복수까지 한다. 실제 김의성은 조금 달랐다. 그는 불의를 보고 의견을 표출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느낀 건 세상 모든 일에 내 의견을 표시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피로감도 있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내가 다 옳은 게 아니었다. 때론 경솔하게 표현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있다. 깊이 반성하는 부분이다. 나에게 어떤 생각이 생기더라도 표현하는 데 자제를 하고 예의를 갖춰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김의성은 어느덧 데뷔 34년 차를 맞았다. 오랜 세월 연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그는 '쉼'을 꼽았다. 그는 "너무 바쁘지 않게 일하는 게 원동력이다. 나는 에너지가 세고 체력적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다. 가능하면 조금 덜 바쁘게 일하고 싶어 하는 편이다. 작품도 가능하면 많이 겹치지 않고, 쉬는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한다. 욕심이 나는 순간 무너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의성은 "배우란 비정규 계약직 같다는 생각이 든다. 2~3년 안에 좋은 작품에서 좋은 캐릭터를 만나면 계약이 연장되는 거다. 그 기간 안에는 내가 부족함이 있어도 업계나 대중이 기다려주는 것 같다. 이런 과정은 2~3년 단위로 겪는 거다. 연기를 하면서 '관상'에서 안정감이 생겼고, 2~3년마다 '부산행'과 '미스터 션샤인'을 찍으며 계약이 연장됐다. 이번에 '모범택시'로 인해 또 재계약에 성공한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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