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드라마 시장에 불어닥친 '반중(反中) 정서'가 심상치 않다. 역사 왜곡 논란부터 PPL(간접광고) 사태 등 중국 자본의 유입에 대한 반감에 많은 드라마가 휘청였다.
최근 중국은 역사 동북공정 움직임에 이어 한국의 다양한 문화인 판소리, 아리랑부터 음식, 한복까지 '자국의 문화'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문화 동북공정'까지 펼치고 있어 국민적 저항을 받고 있다. 이렇듯 중국의 문화 공정 시도에 대한 반발이 커지자 드라마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2021년 많은 드라마들이 이와 관련한 논란에 직면했다.
단순히 불만의 표시가 아니었다. 이러한 반중 정서는 드라마를 폐지해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낳았다. 시청자의 힘은 강했고, 드라마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시작은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철인왕후'부터였다. '철인왕후'는 불의의 사고로 대한민국 대표 허세남 영혼이 깃들어 '저 세상 텐션'을 갖게 된 중전 김소용(신혜선)과 두 얼굴의 임금 철종(김정현) 사이에서 벌어지는 영혼 가출 스캔들을 그린 작품.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太子妃升职记, 2015)'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그러나 원작인 '태자비승직기'의 작가의 혐한 행위가 발목을 잡으며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제작진은 "원작 소설이 아닌 웹드라마의 리메이크 방영권을 구입한 것이고, 계약 당시에는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의 원작 소설가의 또 다른 작품인 '화친공주'에 한국 관련 부정적 발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드라마의 기획과 제작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해당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원작과 차별화된 새로운 창작물로서 보시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제작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시청자들을 완벽하게 설득하지는 못했다.
이어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하고, 실존 인물인 신정왕후가 미신에 심취해있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등 역사 왜곡 논란까지 제기되며 '문제적 작품'으로 낙인찍혔다.
'철인왕후'는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5위를 기록하며 tvN 드라마 역사에 발자취를 진하게 남기고도, 이러한 논란의 연속 탓에 맘껏 웃지 못했다. '철인왕후'는 현재 모든 플랫폼에서 다시보기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
PPL도 문제가 됐다. tvN '여신강림'에서는 중국 인스턴트 훠궈를 먹는 장면이나 중국어로 도배된 버스정류장 광고 등이 수시로 비춰지며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고, tvN '빈센조'에서는 중국산 비빔밥 도시락을 먹는 장면 등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제품의 과도한 PPL이 잇따라 시청자들의 우려와 질타를 받았다.
특히 '빈센조' 속 중국산 비빔밥의 경우, 한국 음식인 비빔밥이 중국 브랜드 제품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거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문화 공정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에 우리나라의 드라마가 명분과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렇듯 반중 정서에 불쾌감이 누적된 시청자들에게 SBS '조선구마사'가 결정타를 날렸다. '조선구마사'는 첫 방송 당시, 외국인 구마 사제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월병과 만두, 피단(오리알을 삭힌 음식) 등을 등장시켜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역사 왜곡 논란이 더해지며 '조선구마사'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시청자들의 불타오른 반중 정서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는 자신의 SNS에 "'조선구마사'는 최근 중국이 한복, 김치, 판소리 등을 자신의 문화라고 주장하는 '新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이러한 시기에는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청자들의 격한 반발에 광고주와 제작지원사 등이 줄줄이 빠져나가면서 더 이상 제작과 방송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첫 방송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폐지를 결정했다. 시청자들의 정서가 프로그램의 존폐까지 결정한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 tvN 드라마 '간 떨어지는 동거'가 타깃이 됐다. '간 떨어지는 동거'는 중국 대표 OTT기업 아이치이(iQIYI)가 제작한 국내 첫 오리지널 콘텐츠. 중국의 자본 투자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청자들의 보이콧 움직임이 일었다. 방송 전임에도 불구, '중국의 자본'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반감을 산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한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정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간 떨어지는 동거' 제작진은 국내, 외 방송분 전체에서 중국 관련 PPL을 전면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방송계 관계자는 "잇따른 논란들에 업계 내부적으로 고심이 깊다. '조선구마사' 사태 이후 중국풍 설정과 중국 자본 유입 등은 완전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콘텐츠의 해외 시장 수출과 나날이 불어나는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PPL 등 글로벌 자본 유입이 불가피하지만, 대중 정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과거에는 불매 운동이 있어도 화제성과 시청률 성과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대중 정서가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히 높아졌다. 반감이 높아질수록 작품에 대한 타격이 커지게 됐다. '조선구마사'가 폐지까지 된 것처럼 말이다. 이에 제작자들 역시 몸을 사리게 된 상황"이라고 조심스러운 답변을 내놨다.
하반기 tvN 기대작인 '잠중록'도 동명의 중국 베스트셀러 웹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다는 사실이 알려져 방송도 전에 도마에 올랐다.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또한 중국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해당 책 출간 당시 중국 정부가 적극 홍보하는 등 '시진핑 정부 선전 소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좋지 않은 의미로 말이다. 각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며 각색과 홍보에 신중함을 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반중정서로 인한 콘텐츠 검증이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들의 불안한 입장도 이해는 간다. 중국의 문화공정이 콘텐츠에 제작비를 댄 중국 측의 입김이 작용하면 분명히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걱정은 당연하다. 애초에 사전에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라면서도 "우리 콘텐츠가 글로벌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자체 로컬로만 생산해서 돌던 시대면 상관이 없지만, 지금은 해외와 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외 자본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경쟁력이 죽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이 들어가면 다 아니라고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중국 자본이 들어갔어도 '콘텐츠가 뭘 담고 있는가. 콘텐츠가 우리가 우려했던 내용을 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걸 구분해서 봐야 한다"며 "중국향 논란은 제작사들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조심할 거다. 그럼에도 중국향이 드러났을 때 그때 가서 비판해도 된다"고 했다.
정 평론가는 "나오기도 전에 지적하고 물고 늘어지면 제작 자체가 어려워진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고민해 보고,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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