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인터뷰 시작 전, 가수 라비의 신곡 '카디건'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시간이 있었다. 모니터 앞에 있던 라비는 리듬을 타고 노래를 살짝 따라부르는 등 자신의 노래에 흠뻑 빠진 모습이었다. 만족해하는 그의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이 넘실 넘어왔다.
그러나 정작 라비에게 "지금 보면서 느낀 감상평"을 물으니 그는 "볼 때마다 '여기를 바꿀까 말까' '수정을 할까 말까' 한다. 이미 몇 번 하긴 해서 이젠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며 약간의 아쉬움을 담은 답을 내놨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만족도는 높아보였다. 라비는 이번 신보 '로지스(ROSES)'를 "라비하면 이런 음악이 떠올려질 수 있게 하는 시작 같은 앨범"이라 정의했다.
라비의 네 번째 미니앨범 '로지스'는 사랑에 대한 감정과 온도를 꽃에 비유해 다양한 시각으로 표현한 앨범이다. 라비는 "꼭 장미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로즈'라는 발음 뉘앙스가 표현하기에 좋았던 것 같다. 또 장미가 색깔별로 다양하지 않나. 가시라는 보여지는 아름다움과는 또다른 내면도 있고. 이런 것들이 재밌어서 '로지스'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꽃밭(FLOWER GARDEN)'과 카디건(CARDIGAN)' 더블 타이틀곡이 낙점됐다. 라비는 "원래 '카디건'이 타이틀이었다. 근데 '꽃밭' 만들고 나서 만족도가 있어서 주변에 많이 들려줬더니 '꽃밭'이 더 좋다는 사람이 더 많더라. 저도 애정이 있어서 고민을 하다가 '더블로 가자' 했다"고 전했다.
'카디건'은 카디건을 소재로 사랑을 재밌게 노래한 곡이다. 그는 "'카디건을 입은 네가 좋아. 카디건은 핑계고 그냥 네가 좋아' 그런 내용이다. 메시지가 크게 있진 않다"면서 "카디건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노래를 쓸 때 제가 봄을 생각했고, 실제로 카디건을 사려고 하고 있어서 카디건으로 곡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꽃밭'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봄의 생기가 돈다는 감정을 꽃과 꽃밭에 비유한 곡이다. 라비는 "대상이 있는 사랑 노래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2절을 보면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도 접목된다. '누군가가 닿는다면 무기력한 것도 다르게 인지가 된다'는 내용이 있다. 우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감정이었던 게 누군가가 닿음으로서 완전한 해소는 아니더라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나. 실제 저 같은 경우는 어떤 인물보다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일을 하거나 재밌게 오가는 대화로 그런 부분들이 해소되는 것 같다"고 했다.
'로지스'는 그동안 라비가 래퍼로서 가지고 있던 고민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게 해준 앨범이다. 라비는 "그동안 내온 곡들이 다양했던 것 같다. 이렇게도 했다가 저렇게도 했다가 시도했던 건데 저는 개인적으로 확실한 뭔가를 드러내고 싶다. 아이덴티티와 사운드적인 색채가 또렷해졌으면 했다. 그 고민이 '로지스'로 해결이 됐다. 다양한 시도보다는 어느 정도의 큰 틀이 정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라비는 '대중성'을 많이 의식했다고. 그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찾으면서 만들 순 있지만 만들었다고 다 내 옷 같은 느낌은 아니더라. 실제로 주변 피드백도 '노래는 좋은데 네 곡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또 대중을 고려해도 결과적으로 고려한 만큼 대단히 잘되는 것도 아니었다"며 "접근성이 편한 음악보다는 더 내 마음이 끌리고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 나에게 더 맞는 형태의 멜로디와 트랙의 사운드와 코러스를 만드는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인 틀이 생겼다. 앞으로는 그렇게 음악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라비에게 좀 특별하다. '데뷔 10년차'인 동시에 20대 마지막인 해다. 그는 "올해 초 '내가 스물 아홉이라니. 곧 서른이라니' 그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지금은 좀 많이 없어졌다. 활동하는 선배님들 보면 30대 되는 게 제가 상상하는 그런 느낌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 '체력도 안 좋아지고 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했는데 저보다 체력 좋은 30대도 있고, 저보다 트렌디한 형들도 있지 않나.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제가 좋아하는 걸 잘 하면 나이와 상관 없이 잘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아이돌부터 회사 대표까지, 어린 나이에 많은 걸 이룬 라비지만 그는 "아직은 더 욕심이 난다"고 했다. 라비는 "생각했던 것들을 20대 때 다 하긴 했는데 너무 못 놀았다"면서 "이뤄가는 것보다 계속 더 추구하고 일을 벌리는 것 같다. 앞에 새로운 목표나 새로운 어떤 프로젝트들에 대한 갈망이 계속 있으니까 성취에 대한 인지가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되돌아보면서 '이만큼 해냈다' 생각을 안 하니까 스스로 만족도보다는 '항상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렇게 해야지' 한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일하지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가수 크리스 브라운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이다. 그때의 기억은 라비가 계속 가수로서 나아갈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제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있어요. '가수가 되어야지'가 아니라 동경하는 마음으로 히어로물 보듯이 '나 저 사람이고 싶어'하면서 춤추고 따라했거든요. 그 순수한 자극으로 시작해서 계속 본질적인 걸 욕심내고 아직도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아직도 음악 안에서 어떤 소리들이나 춤이나 무대나 그 안에서의 옷이나 영상이 저한테는 흥미 요소여서 그 자극 덕분에 여전히 계속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다행이죠."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