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잠들어 있던 연기 괴물이 눈을 떴다. 영화 '파이프라인'을 만나 숨어 있던 내면 연기를 터트린 배우 겸 가수 서인국의 이야기다.
서인국은 2009년 Mnet 오디션프로그램 '슈퍼스타K' 시즌 1에서 우승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출연해 연기력을 입증받은 그는 '고교처세왕' '38사기동대' '쇼핑왕 루이' '주군의 태양', 영화 '노브레싱'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그런 서인국이 8년 만에 '파이프라인'(감독 유하·제작 곰픽쳐스)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파이프라인'은 대한민국 땅 아래 숨겨진 수천억의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여섯 명의 도유꾼, 그들이 펼치는 막장 팀플레이를 그린 범죄 오락 영화다. 서인국은 극 중 기름을 훔쳐 인생 역전을 꿈꾸는 도유 업계 최고의 천공 기술자 핀돌이 역할을 맡았다.
서인국이 '파이프라인'을 택한 이유는 작품의 섹시한 매력 때문이었다. 고난과 역경이라는 상황과 마주한 핀돌이가 빠른 두뇌를 이용해 이를 극복해나가는 이야기가 섹시하게 느껴졌다고.
흔하지 않은 '도유'라는 소재 역시 서인국을 끌어당겼다. 서인국은 "도유라는 소재 자체가 신선했다. 실제 도유 사건이 있기도 하더라"며 "땅굴에서 오합지졸들이 모여 도유를 하는 게 우습기도 하고 신선했다. 신선해서 오히려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방이 막힌 땅굴에서의 촬영은 쉽지 않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몸을 쓰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은 물론, 밖이 보이지 않아 심리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서인국은 "그래도 땅굴에 구멍을 뚫어 문제는 없었다. 틈틈이 밖에서 공기를 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서인국의 부상 투혼이 발휘된 장면도 있다. 그는 "제가 끈에 묶여 있고 끈을 특수한 방법으로 풀려고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악을 많이 쓰느라 온몸에 압력이 많이 올라갔다. 그래서 두통은 물론,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손가락에 마비가 왔었다"며 "병원에 가서 확인했더니 일시적인 마비라고 헀다. 일주일 정도 고생을 하다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서인국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제공
유쾌한 촬영 에피소드도 많다. 서인국에게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는 바로 '유승목의 팬티'와 '음문석의 방귀' 사건이다.
서인국은 "건우(이수혁)가 나과장(유승목)을 발로 차서 넘어트리는 신이 있는데 당시 유승목이 빨간 속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넘어지면서 바지가 터져서 빨간 속옷이 보였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음문석 방귀 사건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음문석이 줄에 온몸이 묶인 급방한 상황에서 몸부림을 치다가 방귀를 뀐 사건도 있었다"며 웃던 서인국은 "재밌었던 일들이 많았던 촬영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웃음 가득한 촬영장에서 동료 배우들의 매력도 찾게 된 서인국이다. 먼저 유승목에 대해 "그동안 보여줬던 강력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잔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태항호, 배다빈, 음문석을 떠올리던 그는 "다들 너무 귀엽다. 촬영하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서로 격려하며 촬영했다. 아직까지 연락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 '고교처세왕'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게 된 이수혁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던 두 사람은 이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이로 발전했다. 서인국은 "'고교처세왕' 때는 이수혁과 대립 관계의 역할이라 대화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또 소통하는 시간이나 여유도 없었다"며 "이수혁의 특유의 차가운 이미지가 있는데 저도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낯가림도 심할 것 같아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후 같이 운동, 게임을 하면서 친해졌는데 정말 귀엽다"며 "TV에서 봤던 모습과 정말 다르다. 웃긴 걸 좋아하는 귀여운 수다쟁이다. 사람들이 이수혁의 재밌는 모습을 많이 알아주시면 좋겠다"고 애정을 드러내기도.
유하 감독을 향한 찬사도 이어졌다. 서인국은 "감독님이 작품 이야기할 땐 진지하지만 촬영장에서는 유쾌하시고 배려가 좋으시다. 배우가 가진 깊은 면모를 볼 줄 아신다"고 말했다.
감독의 진두지휘 속 서인국은 내면에 잠들어 있던 연기 괴물을 깨우게 됐다. 그는 "영화 막바지에 감정이 극한으로 올라오는 신이 있다. 감독님이 이성을 잃어버린 듯한, 더 깊은 극한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하셨다. 여러 번의 촬영 끝에 그 모습이 나왔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감정들을 연기할 수 있어 신기했다. 제 내면을 방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서인국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제공
'파이프라인'은 케이퍼 무비(무언가를 강탈 또는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의 전형이다. 그러나 차별점도 있다. 서인국은 이러한 차별점을 '오합지졸 도유꾼들'로 꼽았다.
서인국은 "도유꾼들이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문가가 아니다. 핀돌이 같은 경우도 송유관 구멍만 뚫는 인물인데 도유꾼의 리더가 됐다. 팀원들도 모두 실력이 부족하고 특정 분야에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게 처음인 오합지졸을 보며 '불안하다' '저래서 성공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다. 그러나 이들이 위험한 계략을 어떻게 헤쳐나갈지가 관전 포인트이자 차별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서인국은 '파이프라인' 외에도 tvN 월화드라마 '멸망'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멸망'에서 핀돌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이는 서인국이 배우로서 지향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많은 분들이 인간 서인국이 아닌 작품 속 캐릭터로 저를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그게 배우로서의 제 목표"라고 말했다.
가수로 데뷔했던 서인국은 음악 활동에도 갈증을 느낀다. 그는 "정규 앨범도 내고 싶다. 제가 원하는 음악적 장르를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고 싶다"며 "제 작은 소망 중 하나가 정규 앨범을 내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콘서트에서 노래를 즐기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음악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본업을 잘하면 섹시해 보인다고 했다. 핀돌이로 완벽 변신한 서인국은 섹시한 서사를 가진 '파이프라인'만큼이나 매력이 넘친다. 섹시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파이프라인'을 만난 서인국은 제대로 연기 포텐을 터트렸다. 내면의 연기 괴물을 깨운 그가 보여줄 활동에 기대를 걸어 본다.
서인국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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