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나는 돈을 쓰는 가수입니다."
과거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고 자수성가를 이룬 덕신하우징 김명환 회장은 이제 마음속에 품었던 가수의 꿈을 피우기 시작했다. 단순히 노래를 잘해서 인기를 얻는 게 목표가 아닌, 어려운 가수들을 도와주고 기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단다. '트로트계 키다리 회장님' 김명환의 이야기다.
김 회장의 음악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과거 그는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 그는 마음 한편에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늘 품고 살았다.
김 회장은 "사춘기 때는 노래한다고 부모님 속도 많이 썩였다. 멋 내고 옷도 찢어진 거 입고 다녔으니 그럴 만했다. 부모님이 노래 계속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결국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김 회장은 덕신하우징을 키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덕신하우징은 데크플레이트 시장 점유율 26%를 자랑하며 업계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랐다. 김 회장은 사업 자금을 만들기 위해 돈을 모으느라 끼니를 자주 걸렀고, 결국 폐 한쪽을 떼어낼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자수성가한 김 회장은 일흔의 나이에 드디어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중견기업을 일구며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다가 자신의 삶과 열정을 담은 노래를 발표함으로써 트로트계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김 회장에 가수에 도전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단순히 기념 음반을 제작하려고 작곡가를 찾아갔는데, 작사 작곡 편곡가 등 제작자들이 김 회장의 목소리를 듣고 가수 데뷔를 권유했다. 김 회장은 "기념 음반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프로의 세계에 들어와 버렸다"며 "내가 잘 들어온 게 맞나 싶다. 사실 노래를 만들고, 띄우는 게 정말 힘들다. 그냥 노래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정말 많으니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또 외모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나이도 많고 미남도 아니니 힘들다"고 전했다.
그렇게 김 회장은 2020년 6월, 곡 '두 번째 인생'과 '밥은 먹고 다니냐'를 발표한 후 2021년 1월, '눈물의 대전역' '잊을 수가 있을까' '부모님' '우리는 하나'로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김 회장은 "노래 두 곡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4곡을 더 만들어서 정규앨범을 발매했다. 음악 기초도 모르고 악보도 못 읽던 내가 6곡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하는 게 쉽지 않을 터. 김 회장은 자꾸 더 힘들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언제까지 무명 생활을 해야 되는가 싶다. 내가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수도 없고. 그 부분이 어렵다. 내 노래를 알리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려고 한다. 참 홍보가 어려운 걸 느낀다. 올해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으니"라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가장 힘든 건 물리적 한계였다. 그는 "염색하고 메이크업 받는 게 힘들다. 내가 나이가 있으니 이걸 물리적으로 커버해야 된다. 그래도 한계가 있지 않냐. 내 피부가 염색약이랑 안 맞는데, 요즘은 염색약도 잘 나오는 것 같다. 가수를 하려면 그 정도는 참아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회사 경영과 가수 병행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김 회장은 "회사 일은 10년 전부터 공동 경영 체제로 돌렸다. 내가 안 나가도 회사는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놨다. 내가 41년 동안 일궜으니 누가 들어와도 힘들지는 않을 거다. 가수 활동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 회장이 생각하는 가수의 성공 궤도는 어디일까. 그는 "나는 뭐 하나 붙들면 끝을 내는 성격이다. 끝을 못 내면 아주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 이 상태로 절대 멈추지 않고 가수로 승부를 걸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노래를 임영웅, 나훈아처럼 잘 하는 게 아니니 구수한 방향으로 잡을 거다. 구수한 방향으로는 충분히 따라갈 만하다.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서 행사도 많이 다니고, 그래서 국민들에게 나를 알리고 싶다. 행사를 많이 돌아야 수입이 생기고 또 수입을 기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 회장의 바람은 늘 기부로 귀결됐다. 자신의 일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사하고, 이를 토대로 음악을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을 기부한다는 포부다. 김 회장은 "나는 돈 버는 가수가 아니다. 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불러주면 거기서 수입이 나와서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또 가수들을 도와주는 꿈도 갖고 있다. 많은 가수들이 옷도 못 해 입어서 빌려 입고, 인력거를 끌면서 노래한다.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없어서 더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녹화 방송을 가는데 공장을 얻어서 한다고 하더라. 측은하다. 난 가수들의 놀이터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한강 둔치에 공연장을 크게 지어서 녹화도 하고 공연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여기서 가수들이 자유자재로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다. 이곳은 내가 죽을 때 나라에 기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의 기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2010년 기부를 시작해 2019년에는 자신의 호를 딴 무봉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작은 나무를 무성하게 키우는 것처럼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또 김 회장은 통일을 꿈꾼다. 그는 "내 노래 중에도 통일에 관련된 노래가 있다.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한 거다. 평양에 가서 이 노래로 음악회를 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이미 관련 청에 공문도 보냈는데, 만만치 않다. 마지막에 꼭 내 사비로 가서 음악회를 하고 싶다. 일단 2025년까지 문을 두드리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끝으로 김 회장은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노래란 밝고 긍정적인 힘을 갖고 있다. 노래를 통해 마음을 나눌 수 있고, 노래를 부르면 화목해진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가정이 화목해지고, 또 마을이 화목하고 결국에는 나라가 화목한 거 아니겠냐. 대한민국이 밝아지면 또 밝은 지구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내 노래가 아니더라도 뭐든 노래를 즐겨 부르시길 바란다. 그런데 이왕이면 기부로 이어질 수 있는 내 노래도 한 번씩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이처럼 김 회장은 음악에 선한 영향력을 가미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소망을 품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큰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는 가수들에게는 물론, 대중들에게도 키다리 아저씨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