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안정적인 것을 추구할 만도 하건만, 그의 시선은 늘 새로운 곳을 향한다. 연기에 대한 만족이 없기에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는 배우 고상호의 이야기다.
고상호는 최근 스포츠투데이와 만나 2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극본 박재범·연출 김희원)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상호는 극 중 원리원칙주의를 고집하는 남동부지검의 FM 검사 정인국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고상호는 "'빈센조' 오디션을 초창기에 봤었는데 제작진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는 얘기만 전해 듣고 따로 연락은 없었다"며 "지난해 9월에 '빈센조' 촬영이 시작됐고, 잊고 지냈는데 12월쯤에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1회부터 대본을 보고 하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 고상호가 제안받은 역할은 '좋은 검사'였다. 그는 "촬영이 들어가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께서 그냥 FM 검사 캐릭터 그대로의 모습을 연기하면 된다고 하셨다"며 "근데 '일단'이라는 전제가 붙었다. 그래서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은 했었는데 대본 나오는 걸 보면서 그때 '일단'의 의미를 알아차렸다"고 웃었다.
고상호가 맡은 정인국은 극중 빈센조(송중기)를 배신하고 거짓 투성이인 대국민 발표를 하며 '빌런' 바벨그룹과 장한석(옥택연) 편으로 돌아서는 반전을 선사했다. 정의감 넘치는 모습으로 등장해 빈센조, 홍차영(전여빈)과 공조를 진행하던 그가 정의 구현이 아닌 야망과 권력욕을 드러내며 극의 몰입도를 한층 더 높였다.
고상호는 "처음에는 빈센조, 홍차영 무리와 서로 견제를 하다가 힘들게 합류하게 되는 전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제 일에서는 철두철미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시청자들이 느끼는 반전이 더 강력할 거라고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중간에 합류한 탓에 고충도 있었다. 그는 "제 연기 톤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로 촬영에 들어갔다. 대본을 먼저 봤을 때는 웃긴 장면도 굉장히 많아서 나만 진지해지고 무거워서 분위기의 결이 맞지 않을까 걱정했다. 근데 감독님이 제 역할은 진지하게 쭉 가달라고 하시더라. 촬영장에서 웃음꽃이 만발하고 애드리브도 남발하는 분위기에 저 혼자 진지해서 혼자 괴리감이 왔었는데 9회쯤 오니까 극의 진지한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튀지 않게 됐다. 감독님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끝까지 '빌런'의 길을 택한 정인국은 결국 죽음으로 '권선징악'의 최후를 맞이했다. 그는 "정신을 못 차렸으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웃으며 "빈센조가 경고를 했기 때문에 반전으로 다시 빈센조의 편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 이어 연속으로 '악역'으로 분류되는 역할을 맡았다. 고상호는 "어느 작품이나 그런 역할은 필요하다. 그 안에서는 제가 보통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낭만닥터 김사부2' 속 양호준도 현실적인 인물이고, 양호준 입장에서 보면 돌담병원 사람들이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라며 "정인국 역시도 권력과 야망이 있지만 서랍 안에 넣어두고 올곧은 사람처럼 자신을 포장했다가 막상 그 권력과 야망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본 모습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고민을 거듭한 끝에 탄생한 캐릭터지만, 아쉬움도 많았다. 고상호는 "악역이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악역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제가 많은 생각을 하고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제 연기를 보면서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고, 어떤 장면은 아예 못 보겠더라. 너무 부족하다는 게 많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도 송중기 씨, 전여빈 씨한테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서로 격려해 줬다"며 "다 각자의 고민이 있더라. 선배님들도 '나도 아직까지 어렵다'고 하시는 걸 보니 평생 가져가야 할 숙제인 것 같다. 한편 두 편하고 그만할 것도 아니니까 계속 답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대에서 13년간 연기해온 고상호지만, 그는 브라운관 세 번째 작품인 '빈센조'에서 배울 점을 찾고, 끊임없이 성장 중이었다. 고상호는 "아직도 카메라가 낯설고 어색하지만 시스템적인 건 적응이 됐다. 처음에는 공연과 매체 연기가 달라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도 대극장, 소극장이 너무 다르다. 대극장은 너무 멀고 크기 때문에 소리와 그림이 큰 이미지가 강조되는 공연이 많고 소극장은 관객들과 더 근접하기 때문에 연기적인 것들이 더 중요해지고 디테일해져야 한다"며 "그런데 매체 연기는 소극장에서의 연기보다 더 디테일해야 하는 것 같다. 가만히 서서 대사를 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모든 표정과 동공의 움직임, 근육의 떨림까지 비춰지기 때문이다. 감정을 쓰는 건 비슷하지만 테크닉적인 부분은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더 나아갈 길을 찾고 있는 고상호는 무대에서도, 또 매체에서도 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상호는 "무대할 때도 더 다양한 역할을 하기 원했다. 비슷한 역할 제의가 오면 최대한 피했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걸 경계한다"고 밝혔다.
이어 "똑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정체될까 봐 두려운 면도 있다. 잘 못하더라도 매번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 얻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상호는 "매체 쪽에서도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두 번 연속 악역을 했기 때문에 악역의 끝판왕으로 방점을 찍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내추럴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제가 어떤 연기를 하게 될지 저도 기대되는 정도"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만을 바라보고, 어느 자리에서든 꾸준하게 고민과 연구를 멈추지 않는 고상호는 '천생 배우'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고상호는 연기는 항상 부족하고 만족을 느낄 수 없는 일이라 만족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매사에 손쉽게 질려 하는 편이다. 제 장점 중에 하나가 습득력이 좋다는 것"이라며 "잘하는 선을 넘어가는 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뭘 해도 빨리 배운다. 습득이 되면 질리고 다른 걸 찾게 된다. 근데 연기는 그런 만족감을 얻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다. 그런 점이 제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연기가 질리지 않고 일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고민한다"며 "제가 연기를 하는 게 만약 일처럼 느껴지면 차라리 쉰다. 제가 무대 위에서 스스로 재밌고 신나게 연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너무 티가 난다. 그걸 스스로 느낀 이후로는 힘들고 지치고 못하겠다 싶으면 과감하게 안 하고 리프레시를 한다. 그렇게 하면 장기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고상호는 "연차가 얼마 안 됐을 때는 막연하게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근데 이제는 그게 위험한 생각이라는 걸 안다. 믿고 보는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일이 보통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저 하나만 잘 해서 잘 되지 않는다.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