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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조작된 살인자 정원섭, '그날' 이야기 향한 눈물과 분노 [ST이슈]
작성 : 2021년 04월 30일(금) 11:28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사진=SBS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경찰의 고문과 조작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49년 인생을 살아야 했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정원섭 씨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눈물과 분노가 쏟아졌다.

29일 방송된 SBS 교양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2'(이하 '꼬꼬무')는 '조작된 살인의 밤, 연필과 빗 그리고 야간비행' 편으로 방송돼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된 그날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1972년 만화를 보러 간다며 집을 나선 초등학교 5학년 윤소미(가명) 양이 시신으로 발견됐고, 신원 확인 결과, 피해자는 관내 파출소장의 딸이었다. 경찰은 겁도 없이 경찰 가족을 건드린 범인을 꼭 잡겠다며 동네 남자란 남자들을 모조리 연행하기 시작했다. 만화방을 운영하던 39세 정원섭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열흘 뒤, 경찰은 대대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범인은 바로 정원섭 씨였다. 목격자와 관련자의 증언이 쏟아지고 모든 증거는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심지어 정원섭 씨가 그동안 만 14살, 17살의 만화방 여종업원들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원섭 씨의 가족들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정원섭 씨는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며 범행을 부인했고, 경찰의 고문을 주장했지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원섭 씨의 말을 들어준 사람은 부장판사 출신 이범렬 변호사 한 명뿐이었다.

정원섭 씨는 이범렬 변호사에게 일명 '비행기 태우기' 고문을 당해 거짓 자백을 하게 된 사연을 모두 털어놨다. 이에 이범렬 변호사는 수사 기록을 살폈고 이상한 점을 발견해 2심 판결에서 판결을 뒤집으려 노력했지만, 정원섭 씨의 누명은 벗을 수가 없었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정원섭 씨는 모범수가 돼 하루빨리 밖으로 나가 무죄를 밝히겠다는 생각 하나로 성실한 수감 생활을 했고, 15년 2개월의 수감 생활을 끝에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그러나 석방된 지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도록, 변화는 없었다. 그런 정원섭 씨 앞에 이범렬 변호사가 수기로 남겨둔 사건 기록과 재판 기록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범렬 변호사는 유품처럼 그 기록을 남기고 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해당 기록을 바탕으로 1999년 정원섭의 재심을 담당할 변호사들이 나타났고, 재심을 준비하던 중 사건 당시 증거와 성폭행 증거들이 모두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재심 신청을 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은 "30년 만에 진술을 번복한 증인들의 증언은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원섭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2005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출범되자 마지막 문을 두드렸고 결국 2008년 정원섭 씨의 무죄가 선언됐다. 당시 그를 고문하고 증거를 조작했던 경찰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정원섭 씨의 주장을 부인했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정원섭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고, 1심에서는 26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손해배상 소명 시효가 10일 초과해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황당한 결정을 내렸다.

이후 정원섭 씨는 한 푼도 배상받지 못했고, 뇌출혈과 치매까지 와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날 방송에서는 정원섭 씨가 '꼬꼬무' 제작진이 취재 중이었던 지난달 28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故 정원섭 /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좋았다. 여러 사람들과 같이 좋았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기억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고문을 당했을 당시의 기억은 잊지 못했던 정원섭 씨의 말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그의 안타까운 인생에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대신 울고, 함께 분노하는 것뿐이었다.

'꼬꼬무' 제작진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시청자들은 행동했다. 시청자들은 방송 이후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조작된 살인의 밤 피해자 정 씨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정 씨에게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배상해 주세요', '정 씨 고문 조작 사건 청원합니다' 등의 청원글을 게재하며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꼬꼬무'가 들려준 이야기의 힘이기도 하다.

정원섭 씨 사건을 취재한 '꼬꼬무' 왕성우 PD, 손하늘 작가는 스포츠투데이에 "사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그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몇 마디면 끝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게 한 평생, 인생 자체다. 방송에 다 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故 정원섭 씨 본인은 물론 부인과 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밤새 들어도 끝이 없었다. 그래도 방송을 보시면서 같이 울고, 같이 분노해 주시는 시청자들이 많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당신은 참 열심히 싸우셨다고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고인과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될 거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한편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 또 기억해야만 할 이야기를 쉽게 들려주는 '꼬꼬무'는 진실한 스토리에 힘입어 시즌1에 이어서 시즌2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6.2%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2049 시청률은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는 등 그 관심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웰메이드 스토리텔링 프로그램의 선구자가 된 '꼬꼬무'가 앞으로 들려줄 이야기에도 기대가 모아진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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