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첫사랑, 추억, 기다림이란 키워드는 아련하고 풋풋하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역시 아련한 감수성을 노렸으나 어딘가 부족하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성이 부족하니 첫사랑과 추억은 애매해진다. 오랜만에 나온 청춘 멜로물인 만큼 아쉬움은 진하다.
28일 개봉된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제작 아지트필름)는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돼준 영호(강하늘)와 소희(천우희)가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 낮은 약속을 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공부에 도통 소질이 없는 삼수생 영호가 어린 시절 첫사랑을 떠올리고 무작정 그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작된다. 편지의 수취인은 소연(이설)이다. 그러나 소연은 영호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소연의 동생 소희는 아픈 언니를 대신해 영호에게 답장을 쓴다. 소희는 차마 영호를 거절할 수 없어 언니인 척 편지를 쓰고, 둘은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쌓이는 편지만큼 소희와 영호는 가까워진다. 영호는 소희와의 만남을 원하지만, 소연 대신 편지를 쓰는 소희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기다림이 쌓이게 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 사진=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스틸컷
작품은 첫사랑, 추억, 기다림, 청춘을 내세웠다. 아련한 첫사랑과 몽글몽글한 추억, 그리고 기다림의 서사로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겠다는 것. 여기에 '비'라는 분위기를 곁들여 의미를 더했다. 각각의 요소들은 훌륭하나 이를 연결하는 서사가 부족하다. 극적인 장치 없이 흐르는 아련한 감정이 목표였겠으나 그냥 흘려버렸다. 이는 옛 일본 영화에 자주 사용된 방식이다. 이미 클리셰가 돼 버린 전개는 그 수가 읽히기 마련이다.
추억이라는 '치트키'를 사용했으나 지지부진하다. 작품의 주된 배경은 2004년이다. 2004년을 대표하는 '가로본능 핸드폰', 故 장국영 사망 등이 등장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향수나 아련함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추억을 불러오는 소품이나 배경이 더 등장했으면 첫사랑의 분위기가 더 살 수 있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캐릭터 설정도 아쉽다.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어렵다 보니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중 영호를 짝사랑하는 친구로 나오는 수진(강소라)의 분량은 상당하다. 강소라가 특별출연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수진과 영호의 서사가 세밀하게 쌓이니 자연스럽게 소희와 영호의 감정선이 약해진다. 영호가 수진을 좋아하는 건지 소희를 좋아하는 건지 헷갈릴 뿐 아니라 두 명을 동시에 좋아하는 것처럼 모호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영호와 소희의 관계가 모호해지면서 첫사랑이 주는 강력함이 옅어진 격이다.
제목은 '당신의 이야기'지만 공감하기도 도통 힘들다. 누구나 첫사랑의 아련함은 간직하고 있지만 '랜선 친구'와의 사랑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애초에 접근부터 이해가 되지 않으니 공감은커녕 몰입도만 떨어뜨린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강하늘은 청춘의 얼굴을 섬세하게 그리면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천우희는 전작에서 보여줬던 강렬함 대신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맑은 청춘인 강하늘과 새로운 천우희의 시너지였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 작품 속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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