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초로 한국 배우 이름이 호명됐다.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가 들썩이는 중이다.
26일 오전 9시(한국시간) 미국 LA의 유니온 스테이션, 돌비극장에서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됐다. 현장에서는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제작 플랜B)의 주역인 배우 윤여정, 한예리, 스티븐 연, 앨런 김, 노엘 조, 정이삭 감독이 참석했다.
이날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되며 한국 배우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아시아로는 1957년 일본 여배우 우메키 미요시 이후 역대 두 번째 수상이다.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 땅으로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 가족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극중 윤여정은 딸 모니카(한예리) 부부를 돕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를 연기했다.
이미 윤여정은 '미나리'로 해외 영화제에서 통상 32관왕을 달성한 바 있다. 그는 미국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 Award, SAG), 전미 비평가위원회부터 LA, 워싱턴 DC,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연기상 등을 수상, 통상 38번째 여우조연상 영예를 안게 됐다.
그의 수상 소감도 화제가 됐다. 윤여정은 무대에 올라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고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유럽인들 대부분은 저를 '여영'이나 또는 '유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 모두를 용서하겠다"면서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한국 배우에 대한 손님맞이가 친절하다. 그리고 저는 이 상을 저의 첫 번째 감독님, 김기영에게 바치고 싶다. 아주 천재적인 분이셨고 제 데뷔작을 함께 했다. 살아계셨다면 아주 기뻐하셨을 것"이라면서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선다는 것은 배우로서 최고 영예일 법도 하지만 윤여정은 달랐다. 그는 오후 진행된 국내 언론 기자회견에서 "(아카데미 수상이) 최고의 순간인 건 모르겠다. 동양 사람들에게 아카데미는 너무 높은 장벽이다. 내가 생각했을 땐 최고가 되기 보다 '최준'만 하면 된다. 동등하게 살고 싶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미나리 윤여정 / 사진=Gettyimages 제공
뿐만 아니라 윤여정은 아시안 인종차별에 대해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마치고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석, 인종차별에 대한 가치관을 밝혔다. 그는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거나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며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게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미나리 윤여정 / 사진=Gettyimages 제공
이에 외신 반응 역시 뜨겁다. 로이터는 "윤여정이 수십 년간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주로 재치 있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큰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호평했다. 이어 유럽 매체들은 "팬들은 (윤여정의) 솔직한 순간을 좋아했고, 일부는 그를 '절대적인 전설'이라고 불렀다"면서 "윤여정은 자신의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미나리 제작에 대해 진심으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런 챔피언이라니(What a champion)"라며 윤여정의 수상 장면이 판에 박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사실 윤여정의 55년 연기 인생은 쉽지 않았다. 1966년 TBC 공채탤런트 3기로 연예계에 입문한 윤여정. 그는 1970년대 한국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에 전 남편 조영남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1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사회 풍토상 이혼한 여배우가 홀로 서기에는 힘든 분위기로 윤여정은 번번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2003년 '바람난 가족'으로 성공적인 스크린 복귀에 이어 2010년 '하녀', 2016년 '죽여주는 여자'로 국내외 큰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가 올해 '미나리'로 이뤄낸 성과에 전 세계가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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