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공유가 기나 긴 여정을 천천히 걷고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서는 관록의 힘이 느껴진다. 늘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을 만나온 배우인 만큼 거쳐 간 작품보다는 앞날을 바라보겠다는 포부이자 각오다.
15일 극장과 티빙에서 동시 공개된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제작 STUDIO101)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박보검)을 극비리에 옮기는 생애 마지막 임무를 맡게 된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이 서복을 노리는 여러 세력의 추적 속에서 특별한 동행을 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공유는 서복을 이동시키는 생애 마지막 임무를 맡은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 역으로 분했다.
공유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불사의 몸을 가진 도깨비부터 도덕과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선생, 기차에서 딸을 지키기 위한 아빠까지 다채로운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독보적인 캐릭터 스펙트럼을 자랑하던 공유가 이번에는 시한부 요원이 돼 묵직한 철학적 메시지를 던진다.
흥행작이 많은 만큼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도 높을 터. 공유는 '서복'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제 필모그래피가 어렵다는 시선이 있다. 출연작들의 공통점은 시나리오가 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들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이야기의 새로움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복제 인간은 헐리우드나 이전 외국 작품에서 수도 없이 많이 접했던 소재다. 하지만 한국 상업 영화에서는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이용주 감독이 하고 싶었던 철학적인 이야기, 삶과 SF 장르를 접한 게 신선했다. '서복'이 어려운 선택이라 생각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대한 고민도 짙어진다는 공유는 "많은 고민 속에서 영화를 접했다. '서복'을 그림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라는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반면 다른 작품은 자극적이고 가벼운 재미를 선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거절한 시나리오 중 실제로 흥행했지만 고민이 덜 느껴진 작품도 있었다. 그래서 '서복'이 잘 만들어졌을 때 관객들에게 뭔가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신껏 고른 '서복'이지만 뜻하지 않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팬데믹으로 개봉 연기를 겪기도 했다. 이를 두고 공유는 "시국이 조금 어렵고 분위기가 침체된 상황이다. 관객들이 극장에 스트레스를 풀고 웃으러 오는 게 대다수인데 '서복'을 보고 마음이 다운되면 어떡할까. 너무 피곤한데 메시지를 강요하게 될까 걱정"이라며 노파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속상함보다 모두가 겪고 있는 일이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한편으로는 개봉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결국 개봉 예정일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개봉했다. 그러다 보니 제 마음이 평소와 달리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관객들을 만나는 것 같다. 기쁘지만 제때 개봉을 못 해서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다. 많은 분들에게 이 영화가 알려진 후에 개봉을 미루다 보니 기대치가 너무 커진 것 같다. 영화를 찍은 입장에서 기대하는 바와 이 영화가 가고 자는 길의 갭이 커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솔직히 부담스럽다"면서 속내를 밝혔다.
극 중 기헌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탓에 예민하고 또 날 선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기헌의 어둡고 부정적인 성격이 짙은 만큼 캐릭터를 소화하기 쉽지 않았으리라는 예상이 들기도.
이에 공유는 작품을 한 번 고사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용주 감독의 거듭된 회유에 공유는 '서복'의 주제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나서게 된 것. 당시를 두고 공유는 "내가 하기에는 너무 큰 이야기라 생각해 거절했다. 다시 한번 연락이 와서 이용주 감독과 이야기를 자세히 나눴다. 그때 감독님이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완고에 이르렀을 때 저를 상상하고 쓰셨다더라"면서 이용주 감독에게 설득당하게 된 계기를 전했다.
공유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느 순간 캐릭터에 대입하는 편이다. 어느 순간 '서복' 역시 기헌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됐다는 공유다. 이에 공유는 기헌을 완전히 체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병마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체중 감량을 물론 어두운 분위기를 입었다. 실제로 기헌이 고통스러워 하는 몽타주가 더 많으나 작품의 흐름상 편집됐다고.
"제가 생각했던 기헌은 훨씬 더 어두웠다. 죽어가는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대략 4개월 간 체중 감량이 필요했다. 이용주 감독이 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마워하더라. 저는 체중 감량 과정에서 인물의 예민함을 가져갈 수 있어서 좋았다. 숙소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 게 기헌이라는 캐릭터와 어울리는 일이었다. 제가 평소 예민함을 티내지 않아 많은 분들은 몰랐지만 이용주 감독은 알아주더라. 사실 영화 '용의자' 당시 더 심하게 감량한 적이 있어서 크게 어렵지 않았다. 예전부터 해왔기 때문에 막상 하게 되더라."
사실 기헌은 공유에게 새로운 발자취가 됐다. 그전 다정하고 젠틀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주로 했던 만큼 거칠고 투박한 성격의 기헌이 처음이라는 것. 특히 욕설을 거침 없이 내뱉는 공유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이에 "이렇게 욕을 하는 캐릭터가 처음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후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어울리지 않게 착한 역할만 했다. 자유롭고 통쾌했다. 욕을 하면 안 될 거 같은 캐릭터는 약간 답답하다. 인간이라면 위급한 상황에서 욕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냐. 욕설은 표현의 기능이 된다. 하나의 제약이 풀린 상황이기에 더 하고 싶고 통쾌했다"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난 소감을 밝혔다.
전직 정보국 요원이라는 설정상 공유는 액션신까지 완벽히 소화해야 했다. 다작으로 다져진 실력 덕분일까. 공유는 박진감 넘치는 카체이싱부터 절제된 총기 액션까지 짧지만 강렬한 액션을 선보였다. 이를 두고 공유는 "체력적으로 예전같지 않다고 느낄 때마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면서 "사실 저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영양제도 꾸준히 먹는다. 그런데 주변에서 잔소리를 한다. 특히 (피부)레이저를 하라고 한다"면서 유머 섞인 겸손함을 드러냈다.
'서복'의 주 관전 포인트는 공유와 박보검의 만남이다. 그간 로맨스 장르에서 특화된 배우인 공유와 박보검이 만나 '브로맨스 케미'를 펼친다. 두 톱스타의 만남은 개봉 전부터 국내외 큰 이슈로 떠오르기도. 이처럼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에 대해 공유는 "박보검과 같이 작품을 하게 될지 몰랐다. 수많은 배우들이 있지만 작품 속에서 이렇게 함께 하는 게 인연이다. 사실 남자 후배랑 연기하는 게 처음이다. 많은 여성 팬들이 두 조합을 귀엽게 봐주시니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어느덧 배우 20년 차인 공유는 첫 출연작인 드라마 '학교4' 이후 영화 14편, 드라마 16편을 거쳐왔다. 그가 쉴 틈 없이 일했다는 방증이다. 이에 "한 해 한 해 제가 얼마나 일했는지 더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알고 싶지 않은데도 팬들이 알려준다. 올해 데뷔 20주년이라는 것보다 한 광고를 10년동안 했다는 게 더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광고주이 축하 꽃다발을 줬는데 솔직히 남우주연상 받은 것보다 마음이 몽글거리더라.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말미 공유는 하루 하루에 거듭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현재와 미래에 충실하기 때문에 '지난날을 잘 돌아보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돌아보기보다 앞날을 바라보는 게 공유의 롱런 비결이 아닐까.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