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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 간극을 오가는 배우 [인터뷰]
작성 : 2021년 04월 20일(화) 10:45

엄태구 낙원의 밤 / 사진=넷플릭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엄태구는 마치 야누스 같은 배우다. 예능에서 부끄러움 많은 수줍은 소년의 면모를 비쳤다가도 스크린 속에서는 처절함을 가득 담은 비련의 남자가 된다. 엄태구의 매력은 이런 간극에서 나온다.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제작 영화사 금월)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신세계', '마녀' 등 누아르의 대가 박훈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으며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이 치밀한 감정 연기로 독보적이고 짙은 감성을 더했다.

엄태구는 극중 라이벌 조직의 타깃이 되어 제주로 몸을 피한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 역을 연기했다. 차분하고 조용하지만 숨길 수 없는 카리스마로 이야기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먼저 엄태구는 작품을 본 소감에 대해 "대본보다 더 처절하거나 통쾌하거나, 웃게끔 만들어졌다. 또 차가운 느낌이 잘 살아났다"면서 "사우나 신을 나체로 촬영하면서 부끄럽고 외로웠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생을 많이 했다. 사우나가 정말 습하고 더웠는데 스태프들은 다 옷을 입고 있었다. 그때 다 같이 고생했다는 게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엄태구 낙원의 밤 / 사진=넷플릭스 제공


엄태구에게는 '낙원의 밤' 시나리오 첫인상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야기 속 이름이 본인의 이름이었기 때문. 당시를 두고 엄태구는 "시나리오에 태구라고 적혀 있어 놀랐다. 읽으면서 신기했고 재밌었다. 박훈정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왜 저를 주연으로 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저를 생각하고 태구를 쓰셨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했다. 예전에 절 몰랐을 때 썼다더라. 나중에 엄태구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하셨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자신을 모티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엄태구에게 '낙원의 밤'은 좋은 기회였다. 냉정하고 잔인한 조직원이지만 의외로 내성적이고 따뜻한 모습도 갖고 있어 엄태구는 양면적인 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는 "캐릭터가 분량이 많아 부담이 많이 됐다"면서도 "그간 했던 작품들이 조금씩 제 안에 쌓여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전여빈, 차승원, 박호산까지 다른 선배들이 있어서 부담이 덜 됐다. 이야기를 많이 하며 작품을 더 즐기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저희가 촬영이 끝나면 항상 다같이 모여 그날 찍은 편집본을 본다. 다같이 하나가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때마다 차승원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미세한 표정 하나로 현장 모두가 웃고, 정적이 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엄태구는 캐릭터의 정형화를 피하기 위해 현장에서 하나씩 도전하며 인물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다. 현장에서 박훈정 감독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자는 마음가짐이 담긴 덕분일까. 태구는 생동감이 넘치는 인물로 이야기를 넘나든다. 특히 박훈정 감독은 태구의 첫 등장에서 얼굴만으로 캐릭터의 서사가 느껴지길 바랐다고. 조직원 특유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엄태구는 체중 증량에 힘을 썼다. 평소 촬영에 임하면 살이 빠지는 체질이기에 보충제를 먹어가며 몸을 불렸다.

극중 태구는 조직원 생활 중 어떠한 계기로 가족을 잃게 되며 복수의 길을 걷는다. 자신을 파멸로 이끄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칼을 잡았고 끝내 파멸하게 되는 인물이다. 엄태구는 "극 초반 누나와 조카를 잃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족을 떠나보낸 감정을 제주도까지 가져와 계속 기억하고 몸 안에 간직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너무 밝아도 어두워도 안 될 것 같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어두운 감정을 촬영 기간 내내 갖고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감정선이 보는 이들에게 느껴져야 했다. 감정을 디테일하게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서울, 제주도 촬영기간에 공백이 있었지만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되짚고 복기하고 계속 제 안에 있게끔 노력했다. 심리적으로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제주도 풍경이었다. 제주도는 극중 또 다른 주인공이라 불릴 만큼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는 궁지에 몰린 태구의 도피처이면서 태구와 재연에게 잠시나마 낙원의 시간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폭력과 비극이 제주의 절경을 대비되며 캐릭터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쓸쓸함을 더욱 확장시킨다. 이에 엄태구는 "촬영 끝나고 해안도로, 차 안에서 제주도 풍경을 바라봤다. 다른 촬영장에서 느끼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참 힐링되더라. 제주도 액션신은 모든 장면이 힘들었다. 쉽지 않았지만 순간 순간 최선을 다했다. 무술팀 덕분에 액션신이 좋게 완성됐다"고 언급했다.

엄태구 낙원의 밤 / 사진=넷플릭스 낙원의 밤 스틸컷


그렇다면 엄태구의 성격과 캐릭터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엄태구는 "실제 성격은 극중 태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연기하고 캐릭터를 만들 때 살을 찌우거나 걸음걸이 같은 것들 외에 내적으로 이야기를 만들다보면 실제 나와 부딪히는 지점이 있다. 선한 모습이든 악한 모습이든 다 제 안에 있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정답은 없다. 캐릭터를 할 때 이것저것 해보고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다. 제 일상 생활 속 겹치는 지점이 있고 또 일상에서 꺼내지 않지만 현장에서 꺼내는 지점이 있다. 이 직업의 묘미"라고 말했다.

다만 길어진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해 '낙원의 밤'은 넷플릭스로 공개됐다.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없었을까. 그는 "큰 화면과 좋은 사운드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OTT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을 만나게 돼 너무 신기하다. 팬들의 반응이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태구는 "기억에 남는 평가로는 부모님의 칭찬이다. 재밌고 잘했다고 해주셔서 기분이 좋다. 또 팬들의 칭찬 중 '내성적인 갱스터'라는 표현이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 새롭고 기억에 남는다. 동료 배우들에게도 '잘 봤다, 고생했다'는 응원 메시지가 왔다"고 덧붙였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엄태구는 영화 '밀정' '택시운전사' '안시성', 드라마 '구해줘2' 등을 거쳐 당당히 주역을 꿰찼다. 성장한 것을 체감하냐는 질문에 엄태구는 "아직 모르겠다. 몇년이 지나야 지금의 경험이 제게 어떤 자양분이 됐는지 알 것 같다. 그저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잘해나가고 싶다"면서 소망을 내비쳤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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