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영화 '낙원의 밤'은 흔한 누아르 이야기지만 서정적이다. 푸르른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했지만 유독 서늘하고 또 시리다.
9일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제작 영화사 금월)이 공개됐다.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신세계' '마녀' 등의 박훈정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또 엄태구와 전여빈, 차승원이 만났다는 점 역시 이목을 끌었다. 영화 '밀정' '택시운전사' '안시성', 드라마 '구해줘2'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온 엄태구는 극 중 라이벌 조직의 타깃이 돼 제주로 몸을 피한 범죄 조직의 에이스 태구 역을 연기했다. 영화 '죄 많은 소녀'부터 드라마 '빈센조'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배우 전여빈은 제주도에서 무기상을 하는 삼촌과 함께 살고 있는 재연 역을 맡았다. 이어 영화 '독전' '힘을 내요, 미스터 리', 드라마 '최고의 사랑' 등에서 명연기를 펼쳐온 차승원은 태구를 추격하는 북성파의 2인자 마 이사로 분했다.
먼저 작품은 '낙원의 밤'이라는 낭만적인 제목과는 반대로 유혈과 배신이 난무한 한국식 누아르 이야기다. 태구는 라이벌 조직의 스카웃 제의를 거절하고 양 사장(박호산)에게 충성을 다한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의리로 양 사장 옆에 남는다. 예고도 없이 가족들의 죽음을 겪은 태구는 복수를 위해 라이벌 조직을 정리, 잠시 제주도로 떠나게 된다. 태구가 도착한 제주의 풍경은 흐리고 축축하다. 이는 태구의 짧은 휴식 기간이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는 복선이기도.
재연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태구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 역시 조직에게 가족을 잃었기 때문. 서로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정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그 시각 서울에서는 마 이사가 태구를 향한 칼을 갈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낙원의 밤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 사진=넷플릭스 제공
복수를 위해 참극을 벌인 한 남자와 그에게 다시 복수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나 익숙하다. 과거 '신세계'부터 최근작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그러했다. 더 이상 신선할 게 없는 포맷이라는 뜻이다. 박훈정 감독은 이야기의 아쉬움을 독특한 분위기로 메꾼다. 눈 시릴 정도의 푸른빛 계열을 깔아 넣어 인물들의 처연함을 강조한다. 벼랑 끝까지 몰린 태구와 재연의 울부짖음이 처절하고 또 시리게만 느껴진다. 엄태구와 전여빈의 열연이 없었더라면 전해지지 않았을 감성이다.
관객들이 숨 쉴 수 있는 잠깐의 위트도 있다. 마 이사와 양 사장의 티키타카는 차승원과 박호산이라는 관록의 두 배우기에 가능한 '케미'다. 또 후반부 5분가량, 전여빈의 액션신은 가히 '낙원의 밤' 속 최고의 장면이다. 앞서의 서사들이 재연을 위해 깔린 서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카타르시즘이 강렬하다.
다만 빠른 전개에 비해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촘촘하지 못하다.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기엔 불친절한 스토리다. 태구와 재연의 유대감이 서사의 주 토대임에도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하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를 보며 물음표들만 남는 이유다. 복수, 시한부, 납치, 협박 등 희소성 없는 소재들도 작품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관객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감정 이입도 어렵다. 누아르에 낭만 한 스푼을 담아 한 편의 시처럼 끝맺고 싶었던 연출이었겠지만 끝내 가학적인 장면만 남은 '낙원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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