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어른들은 몰라요'는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다. 최근 영유아 학대와 유기가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는 가운데,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들의 불안한 여정이 많은 어른들에게 감정을 선사하길 바란다.
15일 개봉하는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제작 돈키호테엔터테인먼트)는 가출 팸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박화영' 이환 감독의 두 번째 문제작이다. 온갖 위험에 노출된 10대들의 현실 그 이상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은 가정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10대 임산부 세진(이유미)이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친구 주영(안희연)과 함께 험난한 유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어른들은 몰라요'의 오프닝은 파격적이다. 세진은 모두가 잠든 밤, 자신의 팔을 커터 칼로 긋고는 SNS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가녀린 팔은 수많은 자해 흔적으로 가득하다. 세진의 라이브 방송에는 200명 가량이 시청하지만 피가 흐르는 세진의 팔을 걱정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저 조소의 대상이 되고 만다. 다음날 아침, 세진은 동급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받는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입"이라는 한 마디에 세진은 입을 틀어막고 신음 소리를 내지 않도록 힘을 준다.
어른들은 몰라요 / 사진=영화 어른들은 몰라요 스틸컷
세진에게 닥치는 불행은 끝이 없다. 담임 선생님과 부적절한 관계 속에 임신을 하게 됐지만 이를 책임지려는 어른은 없다. 그저 세진을 입막음시키려는 '나쁜 어른들'만 가득하다. 끝내 세진은 유산을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우연히 만난 주영과는 서로의 속사정을 말하지 않아도 방황하는 이들만 아는 유대감이 형성된다. 갈 곳 하나 없는 두 소녀는 어른들 눈에 좋은 먹잇감이다. 세진과 주영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매매 업소까지 가게 됐지만 큰 죄의식은 없다. 이렇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움직일 뿐이다.
작품은 이환 작품의 날카로운 독설로 꽉 찼다. 한 소녀가 처절하게 하루 하루를 살게 되는 과정을 파격적으로 담았다. 의지할 데 없는 10대 미혼모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세진에게는 아이를 지우는 게 가장 절박하고, 그러기에는 돈이 필요할 뿐이다. 긴 러닝타임 내 청소년들을 위한 교훈은 없다. 오히려 어른들에게 질문을 건넨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앤드크레딧에 삽입된 빈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는 작품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 "제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들의 오늘 하루는 어땠고 지금은 또 어떤 기분이신가요"라는 가사는 마치 세진의 심정을 대변한다. 폭력에 무력한 이 소녀가 쉬이 쉴 수 있는 곳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는 세진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할 수 있다. 세진의 선택에는 내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날 없이 그저 하루를 보낸다. 극 중 인물들의 전사가 크게 나타나지 않아도 관객들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가정에서 '유기'된 미성년자들은 지하철에 몸을 누이고 지저분한 벽에 쉽게 몸을 기댄다.
'어른들은 몰라요'라는 제목은 꽤 아이러니하다. 사실 어른들은 다 안다. 알면서도 세진을 이용할 뿐이다. 성 상품화로 이용하는 남자들과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 모두에게 세진은 도구 그 자체일 뿐이다. 어른들은 모른다는 말이 중의적으로 들리는 지점이다.
매끄러운 전개나 개연성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 영화의 중심은 오롯이 배우들이 끌어간다. 특히 주연 이유미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몰입도를 고조시킨다. 스크린 속 맨 얼굴의 이유미는 '18, 세진'으로 존재하며 수많은 감정을 담되 표출하지 않는다. 극 후반부 이유미의 지쳐 버린 표정 연기는 보는 이들을 더욱 먹먹하게 만든다. 안희연의 첫 연기 도전 역시 눈길을 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캐릭터를 거뜬히 소화해내며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를 당당히 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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