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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곳', 잔잔한 물결이 이는 호수 [무비뷰]
작성 : 2021년 03월 29일(월) 10:06

아무도 없는 곳 / 사진=아무도 없는 곳 포스터

[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호수에는 잔잔한 물결이 인다. 거센 파도가 만들어내는 장관은 없지만 고스란히 물 위에 비친 익숙한 풍경들이 있다. 호수 같은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은 놀랄 것이 없지만 그래서 더욱 익숙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아무도 없는 곳'(감독 김종관·제작 볼미디어)은 어느 이른 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그들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이야기다.

작품은 아내가 있는 영국에서 떠나 서울로 온 창석이 시간을 잃은 여자 미영(이지은)을 만나며 시작된다. 두 사람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늙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후 창석은 새 소설 출간을 돕는 편집자 유진(윤혜리)과 만난다. 유진은 인도네시아 유학생이었던 전 남자친구로부터 겪었던 상실의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 카페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성하(김성호)는 창석에게 가슴에 품고 다니던 조그마한 약통의 비밀을 알려준다.

창석은 한 바에서 시 쓰기를 좋아하는 주은(이주영)과 만나기도 한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주은은 창석이 들려주는 기억의 일부분을 지워져 있던 자신의 기억에 채운다.

아무도 없는 곳 / 사진=아무도 없는 곳 스틸컷


'아무도 없는 곳'에서 창석은 청자 역할이다. 창석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작품 전체를 바라볼 때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창석이 주연처럼 보이지만, 각 사연을 살펴보자면 새로운 인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이처럼 '아무도 없는 곳'은 경계가 흐려 구분을 짓지 않는다. 주연, 조연간의 경계가 없음은 물론이고 각 에피소드가 캐릭터들의 경험인지, 창석의 소설 속 허구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단정하지 않아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정해진 답에 갇혀 결론을 내리기보다 자신의 방식대로 그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연출은 강렬할 것 없지만, 올곧게 흘러가며 안정감을 준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품에 빠져든다.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됐지만 흐름은 끊기지 않는다. 길을 걷다 장소에 옮겨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된 듯한 느낌만을 줄 뿐이다. 각기 다른 에피소드에서 '사연'이라는 공통점을 뽑아 한 작품처럼 연결시켰다.

화려함이 없기에 배우들의 연기에도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늙음, 상실, 죽음, 기억 등을 이야기하는 배우들은 오로지 자신의 감정, 표정, 말투에 의지해 연기를 펼친다. 세밀한 감정 연기를 이어가는 그들의 눈을 지긋이 보고 있자면 가슴 깊은 사연이 느껴진다. 호수이기에 잔잔한 물결들의 움직임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잔잔하기에 보여 줄 것이 많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숨 가쁘게 달려 지쳐 있던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다독임도 전한다. 잠시 멈춰 있는 것이, 남들보다 느린 것이 나쁜 것은 아니란 듯이. 31일 개봉.

[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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