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이준익 감독이 또 한 번의 사극으로 돌아왔다. 정약전의 삶과 그가 집필한 책 '자산어보'에 관한 이야기다. 흑백이지만 더 뚜렷한 색채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산어보'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는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제작 씨네월드) 언론시사회가 18일 오후 열렸다. 현장에는 이준익 감독을 비롯해 배우 설경구 변요한 이정은이 참석했다.
'자산어보'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돼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 실존 인물 정약용을 다루다
이준익 감독은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찍을 수 없었다. 여러가지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조선의 서학이라는 천주교가 들어옴으로 해서 벌어진 사건이다. 인물의 사연이 들어가는데 정약전과 정약용은 어느정도 기록이 있어서 표현하는데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창대는 이름만 알고, 또 '자산어보'에 창대가 말한 이야기만 나와 있기 때문에 상상력이 필요해다. 허구로 만든 거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증과 허구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준인 감독은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나 정리할 때 근대에 대한 애매한 지점에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사극을 여러개 찍으면서 궁극적으로 근대성이라는 것은 어디서 찾아야 되는가를 고민했다. 커다란 사건이나 정치, 전쟁으로 그 시대를 규정짓는 게 오류라고 판단해 개인에 파고들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시대를 겪은 개인을 찾으면 집단이 갖고 있는 근대성의 씨앗이 보일거라는 판단이었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 안에서 창대는 어떤 삶의 방향을 잡을지 고민한다. 200년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과 다를까.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는 과거 집단주의에 묶여 있지 않는다. 현대성을 정약전이라는 인물로 찾아가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설경구는 "실존 인물, 그것도 큰 학자의 실제 이름을 배역으로 쓰는 건 부담스럽다. 게다가 사극이라 초반에 걱정이 있었는데 감독님이 잘 어울린다고 용기를 줘서 믿고 촬영했다"고 전했다.
◆ 흑백이 주는 잔잔한 감동
'자산어보'는 이준익 감독이 전작인 '동주'에 이어 흑백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감독은 "조선을 흑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집해 흑백으로 만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동주'는 일제강점기고 28살에 세상을 떠난 윤동주의 삶을 담고 있다. 때문에 함부로 밝게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 어둠을 깊이 있게 담으려고 했고, 활짝 웃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다만 그 젊은이 가슴에 있는 청춘은 어둡지만 싱싱하게 표현했다. '자산어보'는 어둠보다 밝음이, 흑보다는 백 위주다. 모든 인간은 시대와의 불화를 겪고 있는데 그걸 이겨내는 방식이 다르다. 가거댁(이정은)이 선물한 애정어린 웃음 등 삶을 재밌고 아름답게 이어가려는 모습이 백에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은은 "흑백 영화기 때문에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흑백 영화에서는 얼굴 표정이 정확하게 나온다. 조금만 과해져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헤친다. 이걸 조율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또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가 세 번의 칼라 장면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인 창대가 깨달음을 얻을 때, 흑산이 아닌 자산이라고 말할 때, 파랑새가 나올 때 색이 들어간다. 보고 싶은 대로 보면 안되고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배우들의 연기 호흡
이정은과 설경구는 학교 선후배 사이로 실제 절친하다고 전했다. 이정은은 "설경구와 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극 중 연인으로 호흡을 맞추게 될지 몰랐다. 너무 친해서 연인 연기를 어떻게 해야될까 싶었는데, 오히려 친하니까 여러가지를 더 얻게 되더라. 서스럼 없이 해볼 수 있어서 좋은 장면을 얻었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정말 담백하고 깔끔했다"고 표했다.
설경구와 변요한의 호흡도 좋았다. 설경구는 "실제로 둘이 섬 안에서 똘똘 뭉쳤다. 촬영이 있을 때는 물론 없을 때도 이정은의 밥을 얻어먹으면서 잘 놀았다"고 설명했다.
변요한은 "설경구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선배다.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빈말을 잘 못하는데 여러가지고 느끼고 배웠던 순간이 있다. 인생을 덜 산 후배로 여러가지를 느꼈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들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변요한은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예전이었으면 참았을 텐데 좋아하는 영화를 그냥 울었다. 내가 연기를 잘했다, 못했다의 눈물이 아니라 영화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며 "코로나 때문에 영화관이 안 좋다고 하니까 마음이 아프다. 영화배우가 꿈이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영화관에 영화가 나오듯이 우리 영화도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했다.
설경구는 "얼마 전에 코엑스로 영화를 보러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 몰랐다. 많이 힘드실 텐데 '자산어보'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위로해 주고 위로받고, 시원한 자연을 보면서 좋은 시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은 "흑백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있어서 오히려 흑백으로 안 느껴진다. 칼라보다 더 뚜렷한 자산의 색이다. 색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했다.
'자산어보'는 31일 개봉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