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도전과 기다림 끝에 빛을 본 배우가 있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드디어 세상으로 나온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임성한 사단에 합류했단다. 이젠 선택을 확신으로 바꾸고 싶다는 배우 이가령이다.
이가령이 연예계에 발을 디딘 건 모델을 하면서부터다. 패션과 뷰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모델 활동을 꾸준히 했다. 그러던 중 모델 프로필이 돌아 배우 캐스팅에 들어갔고, 연기가 무엇인지 모른 상태에서 배우가 됐다. 이가령은 "뭔지 모르고, 체감도 못하는 상태에서 부딪힌 거다. 당시에는 연기에 대한 준비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2013년 드라마 '주군의 태양'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친 이가영은 2014년 '압구정 백야'에 출연해 임성한 작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2015년 드라마 '불굴의 차여사'를 통해 주연에 도전한 이가령은 중도 하차라는 쓴맛을 보게 됐다.
이가령은 "2015년에 작품이 끝나고 활동을 잘 못했다. 안 한 건 아닌데 기회가 없더라. 하차 이슈가 있어서 그런지 작품을 하기 쉽지 않았다. 배우로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불굴의 차여사' 주인공으로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잘 마무리가 안 됐다. 뭔가 이게 연기구나 생각할 때 이슈가 생긴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차 이후 이가령은 다시 작은 배역부터 차근차근 도전했다. 이마저도 1년에 한 번씩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드라마는 일 년에 한 작품씩 했다. 그것도 한두신 정도만 나왔다. 배우가 되기 전에 모델 활동을 해서 작은 광고에 출연하면서 공백기를 보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참 없었다. 나름 트라우마를 벗어나려고 노력한 것 같다. 그때는 몸도 아팠는데, 괜찮다고 여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러 다녔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지 않는 시간들이었다"며 "만약 내가 일반 직장에 다녔으면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직급도 올라갔을 텐데. 참 막연한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길었다"고 전했다.
이어 "'불굴의 차여사'가 끝나게 되면서 연기 레슨도 받고, 김보연 선생님을 찾아가 조언도 얻었다. 그러면서 예전과는 시각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보이는 게 달라진 거다. 전에는 드라마를 봤을 때, 주인공 외모나 내용 위주로 봤다면 이제는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집안의 걱정을 샀다고. 이가령은 "애초에 연예계 일을 하는 걸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다. 걱정하는 마음이 크셔서 안정적인 일을 하길 바라셨다. 그래서 모델 일도 몰래 했다. 그래도 반대는 하지 않으셨다. 이 바닥에 들어온 지 좀 됐으니까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다른 일을 찾는 게 좋지 않겠냐고도 하셨다. 또 '불굴의 차여사' 하차를 겪으면서 부모님도 많이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긴 공백기를 거쳐 이가령은 임성한 작가와 다시 만났다. TV조선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극본 임성한·연출 유정준, 이하 '결사곡')을 통해서다. '결사곡'은 잘나가는 30대, 40대, 50대 매력적인 세 명의 여주인공에게 닥친 상상도 못 했던 불행에 관한 이야기, 진실한 사랑을 찾는 부부들의 불협화음을 다룬 드라마다. 이가령은 극 중 아름답고 똑 부러진 성격의 아나운서 출신 라디오 DJ인 부혜령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부혜령은 남편 판서현(성훈)과 2세 계획 없이 살자 약속하고 결혼한 인물이다.
이가령은 "임성한 작가님이 7년 전 '압구정 백야'의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셨다. 영광스럽게도 큰 역할을 주셨다. 처음에는 무슨 캐릭터인지 몰랐고, 그냥 내 극 중 이름이 부혜령이라고만 알려주셨다. 대본을 받았는데 정말 큰 역할이라 많이 놀랐다. 이렇게 기회를 주실 줄 몰랐고,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결사곡'은 소위 '막장' 드라마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이가령은 "작가님 작품을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데, 막장보다는 의도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쓰시는 작품에는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정말 내용만 보면 불륜이 있고 막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다. 그런 게 대사에 다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캐릭터 각각의 성향, 권선징악, 인과응보 등의 포인트가 있다"고 전했다.
또 임성한 작가의 작품은 특유의 문체가 포인트다. 소화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가령은 "대사가 정말 어렵다. 그래도 난 다행인 게 '압구정 백야' 때 캐스팅이 돼서 준비를 한 경험이 있다. 그때 조금이라도 한 게 있어서 덜 부담스러운 것 같다. 그때가 없었더라면 지금 더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난 낯설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가님이 캐릭터를 쓰실 때 구체적으로 쓰신다. 연기할 때 정말 대본에만 충실하면 된다. 상상해야 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 부분도 정말 디테일하게 써 주신다. 작가님의 의도대로만 표현해야 되는데, 내가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해야 잘 표현했나 싶다"고 덧붙였다.
이가령은 부혜령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더 이해가 잘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부혜령은 꾹 참는다. 자존심이 있어서 용납이 안 된다. 집에서 베개를 휘두를지언정 직정에서는 괜찮다고 하는 성격이다. 나도 그렇다. 거침없어서 오해를 받다가도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남편 앞에서 펑펑 우는 신이 있는데, 그 부분도 비슷하다.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척하다가 집에 와서 안 괜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령은 실제 연애관에 대해서도 전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연애관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연령대 별로 느낌이 다른 것 같다. 20대와 30대가 다르다. 우리 드라마에는 슬프게도 결혼과 이혼이 동시에 있다. 결혼과 이혼을 붙여놔서도 안 되고 떼서도 안 되는 것 같다. 극 중 전노민 선배님 대사 중에 '어떻게 평생 한 사람이랑 살아?'라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이 말이 와닿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연애 감정이 길지만, 나이가 들수록 나에게 닥쳐오는 게 많아져서 그런 감정이 단축되는 느낌이다. 나이 들수록 연애하기가 힘들다는 게 그런 부분인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표했다.
결혼에 대해서는 "일을 해서 결혼을 안 해야 된다는 마음은 아니다. 그 시기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싶다. 연애를 하면 마이너스 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대와 연애를 하더라도 그 사람으로 인해서 좋은 에너지가 생기면 연기할 때 빛이 나지 않냐. 메말라 있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가령은 임성한 작가를 만난 후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님 오디션 전후로 바뀌었다. 2014년에 오디션을 보기 전에는 배우라는 꿈이 없었다. 그런데 이걸 계기로 진로를 배우로 정한 거다. 작가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작가님의 선택은 그동안 틀리지 않았는데, 내가 스크래치를 낸 생각이 든다. 이제는 확신을 주고 싶다. 이 마음이 공백기를 버틴 동기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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