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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리, 맨땅에 헤딩으로 얻은 것 [인터뷰]
작성 : 2021년 03월 07일(일) 14:56

미나리 한예리 / 사진=판씨네마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처음 시작하는 길은 누구나 막막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기 위해선 한발 내디딜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맨땅에 헤딩이라고 할지라도 수백 번 다시 도전할 용기다. 배우 한예리에겐 연기가 맨땅의 헤딩이었다. 수백 번의 헤딩을 통해 비로소 자리를 찾은 한예리다.

한예리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청춘시대' 시리즈 '녹두꽃'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영화 '코리아' '남쪽으로 튀어' '스파이' '동창생' '해무' '챔피언' '인랑'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제작 플랜B)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는다. 한예리는 극 중 제이콥(스티븐 연)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모니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한예리는 정이삭 감독을 보고 '미나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는 번역체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궁금해서 빨리 감독님을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감독님을 만났는데 너무 좋은 사람이더라. 시나리오고 뭐고 그냥 감독님과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그냥 감독님이 좋아서 뭐든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당시 '녹두꽃' 촬영 중이었는데, 내가 만약에 촬영을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으니 그냥 감독님께 좋은 배우 있으면 소개해 줘야지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나리 한예리 / 사진=판씨네마 제공


한예리는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 여성상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그는 "감독님의 유년시절과 자신의 부모님을 얘기했을 때, 잘 알고 있던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엄마, 이모, 할머니. 모니카는 내가 어렸을 때, 그 시대에 여성의 얼굴이 많이 남아 있더라. 그 부분을 잘 확장해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이콥과 모니카는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린 인물들이다. 자신들의 꿈과 자아를 이루기 전에 가정을 먼저 꾸린 거다. 그들이 자아를 찾는 과정과 아이들의 성장이 부딪히면서 성장통을 같이 겪게 되는 환경에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많은 걸 책임져야 되는 상황이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 도망을 갔을 것 같다. 이 과정을 지탱하면서 그나마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기르려고 했던 제이콥과 모니카가 대단하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잘 자라겠구나. 그런 부분을 연기하면서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미나리'는 이민자의 이야기다. 한예리는 겪어보지 못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는 "과거 자료만 찾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사실 이 사람들은 80년대에 이주해서 거기에 멈춰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빨리 발전했는데, 이 사람들은 정체되지 않았을가. 실제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계시다고 하더라. 감독님 가족의 사진을 봤다.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연기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당시 우리 부모님의 말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서로 이름으로 안 부르지 않냐. 대게 첫째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누구누구 아빠, 엄마라고 부른다. 이런 게 떠올라서 감독님께 제안했고, 그렇게 나왔다"고 전했다.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들이라는 특수한 사람들을 다루지만, 그 안에는 우리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해 한예리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모습, 누구나 겪었을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있기에 이 영화가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부분이 조금씩 다 마음에 남는다. 공감이 많이 됐다. 모니카는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일을 헤쳐나가거나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사건을 해결하기 보다 받아들이고 묵묵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가족을 지켜낸다. 이런 게 가족을 지탱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미나리 한예리 / 사진=판씨네마 제공


'미나리'는 미국 등 세계 평단에서 인정받으며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고 있다. 한예리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민자들의 땅이다. 그 사람들이 그 안에서 미나리처럼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그다음 세대도 단단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서 더 이 영화를 공감해 주는 것 같다. 그런 사람뿐 아니라 보편적인 가정, 유년 시절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이 추억을 꺼내보거나 마음에 스며들 듯이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어떤 누구도 나쁘게 보이거나 상처를 주지 않는다. 각자의 의견과 살아가는 방법, 선택이 다를 뿐이다. 어떤 감정들을 강요하거나 화두를 던지지 않고 정말 서서히 편안하게 다가간다. 그게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라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 그런 부분이 공감을 만드는 것 같다. 내리사랑이라는 게 있지 않냐. 그런 것들도 너무 비슷하고 잘 알고 있는 부분이다. 외신들이 영화를 보고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하더라. 나의 어린 시절 같았다, 내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감독님이 근본적인 이야기 뿌리를 사람 사는 것에 뒀기 때문에 한국,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호평이 이어지자 팀 '미나리'의 반응도 좋다고. 한예리는 "일단 우리가 상을 받거나 축하할 일이 생기면 단톡방에서 다들 엄청 축하해 준다. 우리끼리 만나지는 못하고 메시지로 대신하는 거다. 너무 보고 싶고, 빨리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미나리 한예리 / 사진=판씨네마 제공


한예리는 아직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기사가 나오면 쑥스럽다고 미소를 보였다. 그는 "아직도 쑥스럽다.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마음과 목표를 갖고 한 작품이었으면 그렇게 쑥스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윤여정 선생님과 감독님이랑 작품이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거라 쑥스럽다. 실감이 더 안 나는 이유는 현장에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오스카 릴레이를 직접 하고 있지 않아서 그런지 실감이 크게 안 난다. 그래도 작품을 하면서 너무 좋은 사람들을 얻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또 한예리는 영화 속 모니카의 삶과 자신의 경험을 비교했다. 모니카 가족은 척박한 땅으로 옮겨 다시 삶을 일군다. 일종의 맨땅의 헤딩이다. 한예리에게는 연기가 그렇다고. 그는 "연기를 할 때 맨땅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맨땅이 맞았다. 영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뭔지도 모르고 즐거워서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게 나에게 어떤 이득이 되거나 나에게 뭔가를 가져다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그저 이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그때는 돈도 안 받고 연기를 하기도 했다. 일단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뭘 하기만 하면 허투루 하는 건 없구나를 나중에 알았다. 나도 내가 연기를 할 줄 몰랐다. 그때 맨땅에 헤딩을 많이 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 같다. 감사하다. 이런 식으로 시작한다고 해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된다. 예리야. 일단 하자"고 설명했다.

끝으로 한예리는 '미나리' 이후 변화를 전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내가 변했다는 걸 느낀다.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얻고 좋은 에너지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어디서도 받지 못했던 애정들을 받았다. 그렇게 용기와 많은 애정을 받으면서 행복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긍정적인 기운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감독님을 비롯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며 "내가 누구고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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