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굵직한 작품에서 존재감을 보여주는 김태리는 '성공'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으로 화려하게 영화계에 등장한 후 대작에 연이어 출연하며 작품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런 수식어에는 김태리의 숨은 노력이 있다. 일종의 성공 노트다.
발음이 좋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아나운서를 꿈꾸던 김태리는 연극을 접하며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김태리는 "연극의 전 과정이 좋았다. 연극 한 편을 올리면서 무대를 만들고 배우들과 연습하고, 밥 먹고, 술 먹고, 밤새우고, 소품 하나 만들면서 싸우고. 무대에 올라가서 조명을 받고, 관객들을 만나고, 한 시간 반 동안 무대에 서 있고, 박수를 받는 게 꿈같이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잘 질리는 성격인데 이건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 싶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극을 하던 김태리는 2016년 영화 '아가씨'를 통해 혜성같이 데뷔했다. 이후 영화 '1987' '리틀 포레스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에 출연해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런 김태리가 이번에는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감독 조성희·제작 영화사 비단길)로 돌아왔다. '승리호'는 2092년,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의 선원들이 대량살상무기로 알려진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한 후 위험한 거래에 뛰어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 김태리는 승리호의 선장인 장선장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태리는 '승리호'가 한국 첫 우주 SF 영화라는 점에서 설렜다고 전했다. 그는 "말 그대로 두근두근했다. 원래 SF 영화를 좋아하는데, 한국 첫 우주 SF라니까 더 설레더라. 감독님을 만나 뵙고 미팅하고 구상한 이야기 등을 들으니 너무 좋았다. 생각보다 장선장이 단순하지 않은 인물이고, 장르물이라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또 다른 할리우드 SF 영화를 보면서 학습된 게 있어서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태리의 설렘은 장르적 부담감을 벗어날 정도로 강력했다. 그는 "장르에 대한 부담감보다 설렘이 훨씬 컸다. 사실 난 최초면 다 잘 된다는 생각이 있다. 한국에서 할리우드에서만 보던 우주 활극이 나온다니. 게다가 한국 영화고 한국 배우들이 연기한다는 게 기대됐다. 그냥 관객으로 봤을 때도 재밌을 것 같은데 내 얼굴이 있다는 것에도 기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설렘 뒤에는 현장의 어려움이 있었다. SF물은 장르 특성상 CG가 많이 사용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스크르만 놓고 배우들이 상상하면서 합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이에 대해 김태리는 "스크린을 보고 연기해야 되는 건 역시 어려웠다. 또 업동이(유해진)는 로봇이니까 대하는 룰이 있더라. 업동이가 있을 때는 촬영을 반복해서 했다. 처음에는 업동이가 있이 찍었고, 그다음에는 업동이가 없는 상태에서 직전의 연기를 떠올리며 찍는 거다. 물론 업동이가 없는 화면이 진짜다. 시선, 터치 등 현실적인 부분에서 많이 해맸다"고 전했다.
다만 우주선 내부가 실감 나서 이입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김태리는 "내부에는 CG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소품, 가구 등은 전부 다 진짜였다. 그 안에서 생활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장선장과 태호(송중기)가 앉아 있는 의자도 진짜 움직이는 거였다. 우주선이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의자도 덜컹거리는 효과가 있었다. 사실 덜컹거리는 연기는 배우가 하기 힘든데, 이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주선 버튼도 다 실제로 누를 수 있는 거였고, 불빛까지 나와서 연기할 때 흐름이 깨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장선장을 향한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김태리의 새로운 모습이며 여성 리더의 지평을 높였다는 평이다. 김태리는 "전형적이지 않기 위해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다. 사실 캐스팅이 되고 제일 먼저 감독님께 왜 나를 캐스팅하고 싶었냐고 여쭤봤다. 장선장이라는 캐릭터가 좋았지만 시나리오를 봤을 때 내 얼굴로 읽히진 않았다. 나는 여태껏 작품을 할 때 대본을 보면 그 안에 있는 내 모습들이 쉽게 떠올랐다. 그런데 '승리호'는 그게 잘 떠오르지 않더라. 감독님은 전형적이지 않아서 내가 장선장에 좋다고 말씀하셨다. 선장이라는 타이틀을 보면 남자들을 이끌면서 우락부락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이 여리여리하고 그런 힘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조종석에 앉아 있을 때의 에너지가 좋다고 하셨다. 오히려 전형적인 인물이 앉아 있을 때보다 큰 효과가 날 거라고 설득하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호평을 받은 캐릭터지만 '승리호' 안에서 서사는 다소 짧게 그러졌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김태리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성희 감독님 전작을 보면 스타일이 있다. 아이가 나오고 감독님이 그리는 세계의 스타일이 있는데, '승리호'에서 감독님이 어떤 부분을 부각하고 싶은지 그런 선택들로 만들어진 거다. 나도 아쉽다. 전사도 많고 들려줄 수 있는 재밌는 얘기도 많은데. 하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 통일성, 완결성, 감독님의 색을 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또 김태리는 조성희 감독을 두고 수줍은 고집쟁이 천재라고 표했다. 그는 "일단 놀랐던 게 그림으로 생각을 많이 하신다. 처음 미팅할 때도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장선장의 얼굴을 보여줬다. 그림으로 생각하니까 그분만의 독특한 영상미가 나오는 것 같다. 감독님이 수줍음이 되게 많으시다. 그 안에 고집도 있다. 이 이야기를 10년 넘게 준비한 만큼 감독님 머릿속에는 그림이 있다. 그런 걸 예산에서 벗어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표현한다. 정말 예술가"라도 말했다.
김태리는 박찬욱 감독, 장준환 감독, 김은숙 작가, 그리고 '승리호'의 조성희 감독까지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이들은 김태리의 어떤 매력에 끌렸을까 궁금해진다. 김태리 역시 궁금하지만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그는 "감독님들이 사시는 동안 작품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외국 작품 말고 한국 작품으로 하셔서 다시 만나면 여한이 없다. 일단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미소를 보였다.
이어 "감독님과 미팅을 하면 보통 과거사를 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얘기를 많이 하고 가족 관계 얘기도 한다. 장선장 같은 경우는 감독님이 생각하는 부분을 많이 말씀해 주셨다. 나름 준비를 하고 감독님을 만나는 것 같다. 시나리오 보면서 물어볼 것들을 생각해 가고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태리는 거장들의 선택이 부담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가씨'도 큰 작품이었고, '미스터 션샤인'도 큰 작품이었다. 그리고 '승리호'도 정말 컸다. 부담이 솔직히 조금 된다. 부담감은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마음이 연기하는 데 원동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치의 도움도 안 된다. 그런 부담감을 빨리 털어야 된다는 걸 '승리호'를 통해 배웠다. 부담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인물이 살아 숨 쉬는 연구를 하는 게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태리는 앞으로도 끌리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는 게 중요하다. 시나리오 속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자기의 말을 하고 있는지를 많이 본다.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은데 결국엔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같다. 내 마음이 끌리는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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