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하나의 사건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한 쪽은 죄책감을 품고 살아야 된다. 죄책감에서 자유롭기 위해 누가 피해자가 될 것인가. '빛과 철'은 이런 심리를 세밀하게 다룬 영화다.
'빛과 철'(감독 배종대·제작 원테이크필름)은 한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두 여자가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남편을 잃은 희주(김시은)가 고향에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삶에 대한 의욕도, 생기도 없는 희주는 그래도 삶을 살기 위해 과거 일했던 공장으로 복직한다. 그곳에서 희주는 남편이 사고를 낸 피해자의 아내 영남(염혜란)과 그의 딸 은영(박지후)와 만나게 된다. 피해자는 2년째 의식불명인 상황. 죄책감이 희주를 짓누르면서 괴로움으로 인해 공장에서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다시 모든 걸 포기하려는 찰나, 은영의 한마디가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빛과 철'은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심리를 그린다. 남편을 가해자라고 생각한 희주는 혹여나 남편이 피해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기자 급격하게 변한다. 영남을 바라보기도 힘들어했던 희주는 어느새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독기 섞인 주장을 이어간다. 희주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영남도 자신의 남편이 가해자일지 모른다는 의심에 피폐해져간다.
희주와 영남이 무슨 죄가 있을까. 이들은 단지 누군가의 아내일 뿐이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책감이다. 누가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누가 가족을 향한 사랑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지를 두고 싸우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모두 피해자다. 상처 입고 아파하면서 처절하다.
의심과 오해, 그리고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뒤바뀌는 상황이 서스펜스를 만들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관객들 역시 끊임없이 의심하고, 희주와 영남에게 번갈아가며 감정이입을 하면서 스릴을 느낄 수 있다.특별한 장치 없이, 오롯이 인물의 심리 만을 통해 장르적 특성과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야말로 칼과 칼의 만남이다. 이들의 대립이 날카롭고 숨막힐 정도다.
이는 김시은과 염혜란이 보여주는 연기의 힘이다. 계속해서 상황이 변하는 만큼 감정도 변한다. 넓은 감정의 스펙트럼 안에서 이들은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스크린을 압도한다. 찰나에 스치는 표정마저도 절제와 표출 사이의 아슬아슬함이 느껴진다. 중간에 있는 박지후의 역할도 중요하다. 팽팽한 줄 사이에 서 있는 박지후는 중요한 키포인트 역할이다.
배종대 감독의 섬세한 연출도 돋보인다. 작은 소품, 심지어 동물마저 메타포를 갖고 있다. 또 빛을 이용한 연출은 첫 장면부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빛과 철'은 사회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노동자의 인권, 안전사고 등이다. 이쯤 되니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빛과 철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함께 붙어 있을 때 어색하다. 밝음과 어둠에 대입할 수 있고, 빛이 철에 닿았을 때 생기는 반사를 떠올릴 수도 있다. 표면이 거친 철에 빛이 닿으면 반사가 왜곡될 수 있다. 이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건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빛과 철'은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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