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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값 폭행도 OK?' 돈많은 회장님에 고개 숙인 체육계 [ST연중기획-한국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⑨]
작성 : 2021년 02월 15일(월) 14:11

사진=영화 '베테랑' 포스터

스포츠투데이는 연중기획으로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를 격주로 연재한다.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는 지난 100년간 화려한 성공 속에 가려진 한국 체육의 어두운 현실을 살펴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체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재벌가 회장이 폭력을 행사한 뒤, '맷값'으로 2000만 원을 건넨다."

조폭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 범죄 행위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를 쏟아냈다. 이 사건은 영화 '베테랑'의 모티브가 돼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더 영화와 같은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가해자가 2심에서 집행유예형을 받고 풀려나더니, 10년 뒤에는 난데없이 한국 아이스하키 수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맷값 폭행' 사건의 가해자였던 최철원 마이트앤메인 대표는 지난해 12월17일 진행된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 선거에서 총 선거인단 82표 가운데 62표를 획득해, 압도적인 표차로 회장에 당선됐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에 국민들은 황당해했고, 체육시민단체들과 정치권에서도 체육계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후 대한체육회가 국민여론을 고려해 최철원 당선인을 인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회장 인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선거 이후 두 달 가까이 지난 뒤인 지난 4일 이사회를 열어 이 사건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하지만 이기흥 회장 역시 열흘 넘게 최 당선인에 대한 인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상식에서는 어긋나는 일들이다.

최철원 당선인의 공약 내용 / 사진=대한아이스하키협회


▲ 기업인 회장 모시기에 골몰하는 체육계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는 아이스하키계가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철원 당선인을 원한다는 데 있다. 과거 사회적 물의에 대해 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보다는 최 당선인의 재정 지원에 더 관심이 큰 것이다. 실제로 최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인프라 개선, 실업팀 창단 등의 공약을 걸었다. 아이스하키계에서는 최 당선인이 낙마할 경우, 아이스하키에 투자를 해줄 차기 회장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사실 이는 아이스하키계만의 고민이 아니다. 각 종목단체들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문제다. 프로스포츠를 제외하고는 마땅한 자생 수단이 없는 한국 체육계의 상황에서 '돈많은 회장'은 그야말로 소중한 존재다. 때문에 오히려 체육계가 재계에서 회장을 모셔오기도 한다. 대한체육회 68개 종목단체 가운데, 43개 단체에서 기업인 회장을 선출했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업인 종목단체 회장은 체육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바로 직전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이었던 정몽원 회장은 8년간 한국 아이스하키 협회의 수장을 맡아,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 아이스하키를 몇 단계 이상 성장시켰다. 대한양궁협회 정의선 회장도 아낌 없는 투자로,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이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반대의 사례도 발생한다. 일반적인 경우, 기업인들의 체육계에 대한 이해도는 체육인들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체육계에 들어오지만, 시간을 흐를수록 종목에 대한 흥미를 잃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다. 회장을 모셔온 체육인이 파벌을 형성하거나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기업인은 스포츠나 스포츠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그래서 대개 대리인(자신을 영입한 사람)을 내세우게 되고, 그러다보니 단체에 대한 관리, 감독이 철저하게 되지 않는다"면서 "대리인을 위주로 한 파벌 형성 등 잡음이 흘러나오는 사례들이 생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안민석 의원 블로그


▲ "체육 단체장, 높은 도덕성 필요하다"
이번 최철원 당선인의 사례를 계기로, 체육단체장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철원 당선인의 소식이 알려진 이후 더불어민주단 안민석 의원은 유사한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한 '최철원 방지법'을 발의했다.

안민석 의원은 "대한체육회가 최철원 당선인 인준 문제에 대해 결단과 책임을 회피하면서 핑퐁 게임을 하고 있는데, 취임 승인 거부를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면서 "만약 취임을 인준한다면 국민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하는 일이며 체육인들의 기대를 저버린 치욕적인 사건으로 체육계 흑역사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철원 방지법'은 체육단체가 스포츠 정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적 기관으로 고도의 도덕성,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폭력 및 성폭력을 비롯해 반사회적·반도덕적 범죄로 형사처벌을 받고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자가 체육단체 회장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고, 회장에 당선되더라도 취임할 수 없도록 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민석 의원은 "최철원 금지법이 통과된다면, 체육단체장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게 될 것이며, 스포츠계의 인권이 신장되고, 신뢰받는 체육계가 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면서 "향후 반사회적 범죄자들이 체육단체 회장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해 묵묵히 봉사하는 다수의 체육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길 바란다"고 전했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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