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누군가는 포기를 용기라고 하지만, 임세미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용기였다. 그 용기는 결국 쳇바퀴가 아닌 계단을 오르게 만들었다. 여전히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 임세미다.
임세미는 '여신강림'에서 임주경(문가영)의 언니 임희경으로 분해 열연을 펼쳤다. 그는 극 초반부터 고정된 성 역할에서 벗어나 여타 로맨스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자 주인공 같은 면모들로 색다른 이미지를 형성하며 유일무이한 캐릭터를 완성했다.
전에는 본 적 없는 '클리셰를 뒤집는' 역할을 임세미만의 스타일로 완성하면서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제가 중점이 된다기보다는 인물들과 잘 호흡하는 것이 중요했다. 역할에 대한 부담이나 책임진다는 생각보다는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부담은 덜었지만, 기본적인 캐릭터 해석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임세미는 "화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연구했다. 제가 이렇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다. 술을 많이 마시는 캐릭터기 때문에 술도 좀 많이 마셔봤고, 소리 지르는 것도 많이 해봤다"며 "주경(문가영)이가 화장으로 달라진다면 저는 집과 회사, 남자를 만났을 때를 구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반은 제 모습이 있기도 한데, 실제 여동생을 많이 참고했다. 여동생이 터프한 편이고 털털하고 늘 술을 사랑한다. 옆에서 지켜봤던 여동생을 많이 따라 했던 것 같고, 로코(로맨틱 코미디) 남자 주인공들 스케치를 많이 했다. '도깨비', '상속자들' 등 김은숙 작가님 작품을 보면서 남자 주인공이 어떻게 하면 설렐까 하는 부분을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이전 드라마에서는 본 적이 없던 캐릭터였던 만큼 대중들에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임세미는 "'혹시나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억지스러워 보이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잘 봐주시고, 어딘가에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느겼다 며 "또 파트너인 오의식 오빠와도 이런 고민을 나눴는데, '나는 널 믿어'라고 해주셔서 함께 호흡하는 배우들을 믿고 자신감 있게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세미는 매력적인 임희경 캐릭터는 대본과 주변 배우들과 시너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우선 대본이 정말 재밌었다. 대본 리딩 때부터 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족들이 만나면 진짜 가족을 만난 것처럼 촬영하면서 매 순간 재밌었다. 현장이 재밌었기 때문에 드라마도 재밌게 잘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문가영을 정말 좋아하는 배우라고 밝힌 임세미는 "10년 전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에서 만나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때 만나고 나서 처음 만났는데 너무 멋지게 연기를 하더라. 진짜 아끼고 싶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차은우와 황인엽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두 친구는 저만 보면 웃음을 참지 못했다"며 "원래도 아름답고 빛나는 친구들인데 연기도 잘하더라. 저는 '저 나이 때 저렇게 하지 못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매 순간 빛나 보였다. 정말 좋은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게 참 귀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임세미에게 '여신강림'은 이렇듯 귀하고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는 "응원의 말도 많이 들었고, 저뿐만 아니라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사랑받은 걸 느꼈다"며 "희경이 캐릭터가 멋있고 시원하고, 힘이 나는 캐릭터기 때문에 저도 삶을 살면서 기운이 없을 때 떠올리면 힘이 날 것 같다. 제 마음속 보석 상자에 '여신강림'이라는 예쁜 조각이 담긴 것 같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말대로라면 '각 잡고 예쁜 역할'을 주로 해왔던 임세미에게 '여신강림'의 임희경 캐릭터는 또 다른 자신감을 안겨줬다. 그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하기에는 전 불러주시면 가는 배우다. 다만, '뭐든 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웃었다.
임세미는 2005년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데뷔해 벌써 데뷔 17년 차 배우가 됐다. 그는 "데뷔 10년 동안 중고 신인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 '처음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는 계속 연기를 놓지 않고 있었는데 '신인'이라는 딱지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 시간 동안 '연기적으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그 인물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고민은 제가 연기하는 동안 평생 계속될 거라고 생각한다"며 "이렇듯 인간 임세미로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저를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만든 시간이었다. 절대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 임세미의 삶은 계단이 아닌 쳇바퀴였다. 오르려 노력하면 할수록 제자리를 돌고 있는 것과 같았다고. 임세미는 "연기를 시작하면서 계단을 밟으면서 올라갈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야 하는데 매 작품을 할 때마다 긴장감, 부담감, 책임감은 커지고 물론 설렘도 있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하루하루 오디션에 던져지는 기분이 들더라. 이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난 또 실패한 사람, 틀린 사람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발성을 신경 쓰거나 연기를 하면서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면 할수록 매일 바뀌더라"라며 "이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연기를 하면서 살아있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역할에 대해 잘 느끼고 작품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물 같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닥에 뿌리면 납작해지고, 네모난 컵에 넣으면 네모나지고 싶다"며 "이런 생각의 결과로 희경이가 탄생했다. 잘하는 방법은 늘 찾고 있다"고 말했다.
매 순간 '이게 내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는 임세미는 "다른 친구들이 연기를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해서 자리를 잡고 사회 생활을 누리고 있을 때, 또 결혼을 해서 연기의 끈을 놓는 친구들을 볼 때 포기인 건지 용기인 건지 고민이 너무 많았다"며 "나도 꿈을 깰 때가 됐는데 정신 못 차리고 피터팬으로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좋은 걸 어떡해'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고집이라면 고집이고 그만 둘 용기가 없어서 계속 여기 있었다.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아서 놓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세미는 "그만둔 친구들에게도 '용기가 대단하다'라고 하면서 '그래도 난 연기할 거야' 라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우 임세미는 자신의 '내일'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들이 기대되고, 그것들을 위해서 인간 임세미로서 잘 지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제가 살아온 삶을 연기로 잘 녹여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단단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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