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매력적인 캐릭터와 시나리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배우 김정은은 그토록 원하던 캐릭터가 있는 곳을 찾아 홍콩에서 서울까지 바다를 건넜다. 26년 차 배우는 여전히 '좋은' 캐릭터에 목마르다.
1996년 MBC 25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정은은 드라마 '해바라기' '여인천하' '파리의 연인' '루루공주' '연인' '울랄라 부부' '여자를 울려' '듀얼', 영화 '가문의 영광' '불어라 봄바람' '내 남자의 로맨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식객: 김치전쟁'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런 김정은이 MBN 월화드라마 '나의 위험한 아내'(극본 황다은·연출 이형민)으로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나의 위험한 아내'는 사랑해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결혼이라는 생활을 그저 유지하고만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부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부 잔혹극'을 표방한 작품이다. 극중 김정은은 지성과 미모, 재력을 갖춘 인생을 살다가 김윤철(최원영)과 결혼한 심재경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정은은 '나의 위험한 아내'에 출연하기 위해 홍콩에서 서울로 입국해 2주 간의 자가격리를 마쳤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3월 24일에 홍콩에서 서울로 도착하여 2주간가 격리 후 제작진을 만났다. 그 후부터 열심히 준비해 5월 중순부터 촬영을 시작하고 여름을 지나 초겨울까지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심재경이라는 인물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말하면 작품이 끝난 후에 찾아오는 허무감, 혼자만 느끼는 외로움, 배우로서 느끼는 우울감은 좀 있다. 물론 안 그런 척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랜만에 복귀작이라 처음에 걱정도 많았고 긴장도 했었다. 다행히 감독님, 작가님, 같이 했던 배우들, 편집실까지 내게 다양한 도움을 줘 빨리 캐릭터에 적응할 수 있었고, 나중엔 내가 언제 쉬었었나 할 정도로 신나서 연기했던 것 같다. 코로나19와 장마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을 견디면서 마음 졸이고 촬영을 해서 그런지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잘 견뎌준 모든 스태프들, 배우들께도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3년 만의 복귀다. 김정은은 오랜만의 복귀가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김정은은 "이번 같은 경우는 정말 내가 혼자 뭘 해낸 게 없다. 날 좀 도와달라고 주변에 도움을 청했던 것 같다. 처음에 몇 년 쉬니 감을 못 잡겠더라. 그리고 옛날처럼 혼자도 못하겠더라. 올드하기도 싫고, 꼰대도 싫고, 연기 못하는 건 더 싫었다. 그래서 혹시 내 몸에 남아있는 아집이나 고집을 다 버리려고 노력했다. 감독님께 도와달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귀와 마음을 열고 단 한치의 의심도 없이 좋은 의견들을 즉각 다 먹어버리는 등 시키는 대로 했다. 다행히 내 주변엔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다가가면 다 물심양면 도와주는 사람들뿐이었다. 그 덕분에 잘 끝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기할 때는 솔직한 게 최고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정은 / 사진=뿌리깊은나무들 매니지먼트 레드우즈 제공
복귀에 대한 부담감, 홍콩에서 서울이라는 물리적 거리, 그리고 2주간의 자가격리라는 벽에도 김정은은 캐릭터에 끌려 '나의 위험한 아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심재경이 결국 모든 사건을 주도면밀한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여성 캐릭터를 정말 만나기 쉽지 않다. 또 겉으로는 매우 평범하고 약해 보이는 현모양처의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반전과 희열이 큰 쾌감을 줬다. 처음엔 납치 자작극으로 나중엔 50억을 놓고 서로 싸우는 과정에서 현실을 약간 비껴간 판타지로써의 반전과 복수들이 매력적이었다. 이 부분들이 늘 약자로만 그려지는 같은 아내의 입장에서 통쾌하게 느껴졌었다"며 "현실에서의 우리 아내들이 얼마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가. 하지만 그 희생을 그만큼 높이 평가받고 있는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물론 현실에 심재경 같은 인물이 존재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이런 물음이 생겼다. '남편들이여, 평범한 주부를 얕보지 마라'는 메시지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김정은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고자 노력했다. 그는 "심재경은 가장 판타지적인 인물이었다. 재력에 남편 내조까지 완벽하게 해내면서도 남편 외도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이후에도 모든 사건을 혼자 다 꾸미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50억으로 현혹 시켰다. 이런 아내가 현실에 어디 있겠는가. 때문에 현실적인 인물로 안착시키는 게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래야 보시는 여성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테니"라며 "처음 외도를 목격하는 되는 과정에서도 평범했던 주부를 가만히 놔뒀으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흑화가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재경이는 워낙 감정을 숨기고 계속 연기하고 거짓말하고 아닌 척하는 씬들이 많아서 가끔 김윤철(최원영)에게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리 지르고, 우는 등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씬들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또한 멋진 빌런이지만 여자로서, 아내로서 사랑받고 싶은 느낌도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 김정은은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호흡도 매력 포인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심혜진을 두고 "선배님은 꼭 만나보고 싶었던 분이다. 마지막에 심혜진 선배님과 감정적으로 타이트하게 연기한 씬들이 정말 너무 좋았다. 갖고 있는 이미지처럼 쿨하게 힘 빼고 툭툭 연기하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니 그게 훨씬 힘과 큰 존재감이 느껴지더라. 역시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씬 중간중간 식사 시간에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햄버거를 먹으며, 인생 선배님으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 것도 마음에 깊이 남는다. 다른 작품에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정수영 씨는 현장에서 만나면 서로 너무 팬이라고 외쳐대기 바빴다. 사실 나와의 씬들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크다. 스케줄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의 불가피하게 없어진 씬들이 너무 아쉽다. 정수영 씨는 한 장면을 나와도 존재감을 주는 그런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최유화는 나와 세게 대립하는 컷들을 찍을 때마다 중간중간에 뒤돌아서 주먹 쥐고 벽을 치거나 잠깐 밖에 가서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다 왔다. 그러면서도 나와 너무 친해지고 싶은데 늘 죄송하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웠다. 이렇게 현장에서 몸을 부딪혀가며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너무 예뻐보인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백수장도 매우 열심히 하는 배우여서 감동받았고, 윤예희 선배님도 늘 자연스럽고 유쾌한 연기로 분위기 메이커셨다. 이준혁 선배님도 늘 밝고 재미있게 현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서 항상 함께하는 씬들이 기대가 됐고, 안내상 선배님과의 씬들은 늘 긴장하고 무장하고 들어갔던 것 같다. 워낙 연기를 잘하시니까 그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말이다"라며 "이렇듯 막강한 배우들이 존재감을 빛내며 자리를 지켜줘서 정말 든든했다. 난 '작품은 캐스팅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제작진이 정말 최고의 캐스팅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나의 위험한 아내'는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두고 김정은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재경과 윤철을 너무 사랑해서 보내주기에 살짝 우울감도 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정은 / 사진=뿌리깊은나무들 매니지먼트 레드우즈 제공
반대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김정은은 "늘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들 아마 캐릭터를 연기할 때나 어려운 씬을 찍을 때, 혹은 잠을 못 잘 때? 그런 부분이 아닐까 예측하실 것이다. 솔직히 그런 부분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느끼고 감당해야 할 가장 힘든 부분 늘 연기 외의 것들"이라며 "촬영 현장도 여러분들처럼 작은 사회, 회사 직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상황과 인간관계가 있고, 난 그걸 지켜내고 이끌어가는 입장 중의 사람으로서 아직까지도 그 관계들이 가장 힘들고 어렵다. 인내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배려해야 하는 상황들이 끊임없이 존재하고 난 그 드라마의 대표 얼굴로서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정은은 "그래서 때로는 그런 게 꼴 보기 싫어서 '차라리 놀러나다니지'라는 생각도 한 적도 있는데, 물론 좋은 대본을 읽게 되면 또 내 안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그런 생각들은 눈 녹듯 사라지긴 한다. 또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될 때 힘들었던 시간들은 다 충족되고 결과물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데뷔 26년 차 배우인 김정은은 새로운 캐릭터보다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꼭 다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은 별로 없다. 좋은 시나리오 안의 캐릭터라면 비슷한 이미지여도 상관없다. 단지 그 '좋은'의 의미를 어디서 찾냐의 문제인데, 대본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캐릭터가 얼마나 나에게 매력 있게 다가오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좋다. 코미디도 좋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정은은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 없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 맘에 드는 게 없으면 남편 따라 홍콩에 갈 수도 있다. 연락 주실 분들은 좀 미리 연락 달라. 14일 전에. 난 격리가 필요하다"고 유쾌한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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