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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힘든 상처·말할 수 없는 구조, 체육계 성폭력 [ST연중기획-한국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⑤]
작성 : 2020년 11월 25일(수) 11:11

사진=픽사베이 제공

스포츠투데이는 연중기획으로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를 격주로 연재한다.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는 지난 100년간 화려한 성공 속에 가려진 한국 체육의 어두운 현실을 살펴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체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스포츠투데이 김호진, 이정철 기자] 지난해 심석희의 용기 있는 고백은 '체육계 미투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피해 사실을 숨기고 마음앓이를 해야만 했던 체육계 성폭력 피해자들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한 맺힌 호소는 큰 충격을 줬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말 못한 피해자들이 많다.

2020년 실업팀 선수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 제공=전용기 의원실


▲ 전체 성폭력 피해 경험자의 68.8%, 신고 엄두도 못 냈다

체육계는 뒤늦은 대처에 나섰다. 지난해 1월25일 쇼트트랙 심석희 사건 이후 범정부차원에서 '성폭력 등 체육계 비리 근절대책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발표하며, 비위 신고시 가해자의 징계를 강화하고, 성폭력 사건 은폐 및 축소시 최대 징역형까지 형사처분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후에도 정부는 물론 대한체육회, 각 종목 단체에서 성폭력 예방과 강한 처벌 등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발표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변한 것은 많지 않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위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실업팀 선수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1%가 '직접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성폭력을 행사한 주요 가해자는 코치 등 지도자가 66.7%로 나타났고, 다음으로는 선배(36.6%), 동료(4.3%)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전체 성폭력 피해 경험자의 68.8%는 당하고도 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스승과 선수 관계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였고, 지도자가 가진 권한 때문에 저항이 어렵다는 이유, 성폭력 문제로 자신의 이미지가 훼손되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뒤를 이었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지도자-선수, 선배-후배 관계, 지나치게 비대화된 지도자의 권력 등 근본적인 구조 개선 없이는 현상 개선에 효과가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 체육계 성폭력,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 만연

처벌 강화를 약속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2년간 접수된 성폭력 피해 현황의 처리결과를 살펴보면, 출전정지 및 자격정지 6개월 2건, 자격정지 1년 2건, 자격정지 3년 2건, 진행 중 3건이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보니 출전 및 자격정지 기간 이후 성폭력 가해자가 다시 체육계에 복귀해 피해자와 함께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체육계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해야 함에도 뻔뻔스럽게도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선수의 인권보다 성적과 실적이 강조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온갖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해도 성적이 좋으면 무마되는 이러한 현실은 피해자들을 낙심하게 만든다.

체육계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도 피해를 키우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선수들이 계속해서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도자의 말을 따라야 한다. 피해 선수들이 신고를 하더라도 스포츠계를 떠나지 않는 이상 계속 가해 지도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2차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해 실제 피해를 당하더라도 신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2016년 광주의 한 고등학교 배구부 선수 3명은 코치에게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이들은 어렵사리 피해 사실을 학교에 알렸다. 해당 사건을 접한 다른 배구부원들도 각자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진술서에 기재하며 피해 학생들과 의견을 함께 했다.

사건은 코치의 중징계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부원들이 돌연 태도를 바꾸며 새 국면을 맞았다. 입장을 바꾸게 된 배경에는 배구부 감독과 학부모들의 보이지 않은 입김이 있었다. 코치의 성추행 사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될 경우 팀이 해체돼 본인들의 진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선수들과 학부모들이 피해 학생들에게 사건을 덮을 것을 종용한 것. 결국 피해 선수 3명 중 2명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고, 다른 한 명은 배구계를 떠났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광주지방법원 1심 재판부(재판장 강영훈)는 1심에서 코치에게 징역 2년 형을 선고했다. 이후 2심 재판부는 피의자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형을 내렸다. 1심에서 선고한 피해 사실은 인정됐으나, 2심에 앞서 피해자 일부와 합의가 된 점, 피고의 가족과 동료들이 선처를 원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 등이 새로운 양형요소로 참작돼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 성폭행 근절 위한 새로운 기구 '스포츠윤리센터' 출범, 수사권 등 독립성 확보돼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체육계는 성폭력 근절을 위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취할 수 있는 독립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는 체육계로부터 분리된 스포츠인권전담기구를 설립할 것을 권고했으며 지난 8월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했다.

연구공동체 인권과스포츠 김동혁 대표는 "기존의 대한체육회가 운영해 온 시스템(클린스포츠센터)은 피해자 보호에 있어 매우 취약한 환경을 갖고 있었다. 스포츠계 선후배로 연결되기 때문에 신고가 들어가면 곧바로 가해자 귀로 들어가 피해자를 압박해왔다. 이에 피해자는 낙심하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성을 잃게 되며, 신고해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점점 더 대처가 어렵게 됐다"며 "스포츠윤리센터는 독립성을 확보해 피해자에 대한 2, 3차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밖에도 정책 개선연구, 예방적 차원에서의 인권교육, 문화와 저변의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인권에 관한 시민적 홍보와 협력체계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포츠윤리센터의 과제를 전달했다.

현재 스포츠윤리센터는 가해자를 조사·처벌할 수사권과 징계권이 없어 사건의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국회에서 스포츠윤리센터에 사법경찰 직무를 부여하도록 해 직접 수사와 고발이 가능하도록 법 변경을 추진 중이다.

스포츠윤리센터 이숙진 이사장은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상 관련 체육회에서 징계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에 따른 벌칙 조항은 없다. 또 스포츠윤리센터는 직접 조사할 권한은 가지고 있지만 수사기관과 같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아 증거 확보 등이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했다.

이어 "체육인의 인권을 증진 시킬 수 있도록 관련 법, 제도 등이 개선돼야 한다. 가해자를 엄정하게 처벌해 성폭력에 대한 체육인의 인식 변화를 가져오게 해야 한다. 성폭력을 행사하고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스포츠인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며 "이를 위해 학생선수 때부터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성폭력 문제는 그 심각성에 비해 우리 사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솜방망이 처벌과 은폐와 같은 안일한 대응이 현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더 이상의 묵과는 체육계를 퇴보를 의미한다. 한국 스포츠가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100년을 위해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스포츠투데이 김호진, 이정철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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