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신인에 걸맞는 패기와 열정에 신인답지 않은 연기력. 열린 열매보다 열릴 열매가 더 많지만, 짧은 시간 안에 탄탄하게 뿌리내린 단단한 나무. 데뷔 3년 차 배우 이도현의 이야기다.
배우 이도현은 JTBC 월화드라마 '18어게인'(극본 김도연·연출 하병훈)에서 한순간에 리즈시절의 몸으로 돌아가게 돼 고우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살아가는 18세 홍대영(윤상현)으로 분해 빈틈없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도현의, 이도현에 의한, 이도현을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모두 자신만의 색깔로 흡수했다. 2인 1역을 연기하면서도 시청자들이 고개를 갸웃할 만한 장면에서도 이도현의 연기력이 캐릭터에 설득력을 더했다.
이도현에게 '18어게인'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는 "감독님께서 제안을 주셔서 미팅을 갔었다. 대본이 너무 재밌었다. 8부까지 받았는데 다 읽고 많이 울었다.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저라는 신인을 주인공으로 발탁하는 과정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미 알려진 배우들도 많고 저보다 연기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저를 찾아주셨기 때문에 '잘 어필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감독님을 만났었다. 저를 선택해 주신 감독님에게 감사하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만난 첫 장편 주연작에서 이도현이 보여준 힘은 놀라웠다. 물론 부담감은 있었다. 이도현은 "주연이라는 부담감이 컸다. 배우라면 누구나 주인공을 꿈꾼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그랬다. 근데 막상 주인공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웃지 못했다.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고 '어떡하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작품에 누가 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첫 주연작에 대한 기쁨보다 걱정이 파도처럼 그를 덮친 상황 속 이도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연구와 연습이었다. 그리고 함께 연구했던 배우들이 그의 부담감을 함께 짊어졌다.
이도현은 "처음 등장했을 때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윤상현 선배님의 모습이 투영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감독님도 그 부분에 중점을 뒀고, 2인 1역에 대해 시청자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리딩을 많이 하고 상황마다 구체적으로 리액션을 설정하고, 또 디테일하게 많이 연구했다"며 "어린 대영과 고우영이라는 경계선도 확실하게 할 수 있게끔 분석을 했던 것 같다. 많이 신경 쓰였고 걱정도 많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하늘 선배님과 같이 멜로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보니까 더 열심히 연구를 했고, 감독님과도 많은 상의를 했다. 감독님께서 리딩 자리를 많이 마련해 주셨다. 근데 선배님들도 흔쾌히 나와 주시고 또래 배우들도 많이 나와서 리딩해줬다. 이 캐릭터는 다 함께 만든 거다. 혼자 했으면 절대 이만큼의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특히 로맨스 호흡을 맞춘 '대선배' 김하늘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배울 것도 또 배운 것도 너무 많았다. 이도현은 "많이 친해졌다. 선배님으로 시작해서 누나로 끝났다"며 "제가 걱정이 많은 스타일이다 보니까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연기를 해야겠다'라는 구체적 계획이나 설계를 한다. 근데 현장에 가서 누나랑 촬영을 시작하면 설계했던 것들이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누나가 연기가 베테랑처럼 하시니까 보고만 있어도 자연스럽게 따라서 나오더라. '내가 왜 이렇게 걱정을 했지. 누나만 믿고 가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진짜 그 뒤로는 너무 편하게 촬영했던 것 같다"며 "너무 많이 배웠다. '와 어떻게 저렇게 하시지?'라는 질문에서 끝난 것도 많다. 그건 제가 차차 답을 찾아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선배들, 그리고 또래들과의 호흡 모두 한 작품에서 경험하게 된 이도현은 "두 현장 다 너무 좋았는데 또래 배우들이랑 할 때는 활기차고 지치지 않는 그런 에너지가 있었다. 보는 사람도 힘이 나고 웃게 되고 다 너무 어리고 순수했다. 너무 순수해서 내가 때가 탔나 생각할 정도였다. 새하얀 도화지에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었다"고 웃으면서 "선배님들과의 현장은 완벽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에 제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순조로웠다. 확실히 연륜이 있으니까 부드러움 속에 강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새하얀 도화지에도, 이미 완성된 그림에도 이도현은 완벽하게 녹아들어 다양한 결을 그렸다. 로맨스, 코미디, 학원물, 진한 휴먼 드라마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소화력이었다. 여기에는 이도현의 넘치는 '연기 열정'이 큰 힘을 발휘했다.
이도현은 작품마다 그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작품 속 캐릭터와 평상시의 자신을 분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어린 아빠 홍대영이 아픈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 뒤 오열하는 장면을 찍을 때 이해가 안 돼 잘 녹아들지 못했던 경험을 하고 나서는 더욱 몰입에 공을 들였다.
그는 "(아이가 아팠던 신은) 강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가족에 대입을 해서 연기하기도 했는데 경험이 없으니까 한계점에 부딪혔다. 감독님에게 '저 가서 아이 낳고 올까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잘하고 싶었는데 너무 답답하고 속상해서 울기도 했다"며 "그 뒤로는 김하늘 누나를 볼 때도 진짜 와이프처럼, 시우(려운), 시아(노정의)한테도 진짜 아빠처럼 대했다. 평상시에도 잔소리를 많이 하고 그렇게 안 하면 연기할 때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원래 제 연기 스타일도 그런 것 같다. 그 캐릭터의 성격대로 살아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애드리브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는 기억에 남는 애드리브로 홍대영의 고등학교 절친이자 고우영의 가짜아빠 고덕진(김강현)과의 호흡을 꼽았다. 이도현은 "김강현 선배님과 욕하는 장면은 다 애드리브다. 집세, 물세, 재산세를 언급했던 대사는 안 짜고 리허설을 했는데 서로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왔고, 감독님이 OK 해주셨다"며 "어린 아들, 딸에게 토끼 수염을 그려서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데 이상한 수염을 그려서 보냈던 장면에서 했던 '아이고. 미안해라' 또한 애드리브다. 원래 선생님 대사한 뒤에 '아'하는 감탄사로 끝인데 그때 저도 모르게 그 말이 나갔다. 근데 감독님이 내보내 주셨더라"라고 말했다.
이도현은 연기 칭찬에 아직 답을 찾아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며 수줍게 웃었지만, 데뷔 3년 차 그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도현은 지난 3년을 자평해달라는 말에 조심스럽게 "많이 컸다"고 말했다.
이도현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학원을 다니며 배우의 꿈을 키우다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약 2년 동안 트레이닝을 받다가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그곳이 바로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다. 그는 "제 나름대로는 2년 동안 칼을 갈았다고 생각했다. 오디션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겨서 갔는데 욕심이 과했는지 준비했던 것도 잘 못하고 말도 더듬고 나와서 떨어질 줄 알았다. 근데 합격했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계속 야구공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게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첫 드라마 촬영을 하게 됐다. 정말 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현장을 갔는데 라면을 먹으면서 대사를 하는 게 제 인생 첫 연기였다. 하정우 선배님의 먹방 장면이 화제가 된 걸 염두에 두고 '누구보다 맛있게 먹어서 보는 사람 군침이 돌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근데 감독님이 '연결 맞출 수 있겠니?'라고 물으시더라. 연결이 뭔지도 잘 몰랐다. 한 번 한 행동을 똑같이 맞춰줘야 편집할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거다. 그래서 라면을 계속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거에 비하면 지금은 연결을 생각하는 능숙함이 추가되고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연기 열정에 능숙함까지 더해지니 배우 이도현의 발전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도현은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다. 아직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모두 보여주지도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점이다.
이도현은 "저는 욕심이 정말 많다. 다양한 장르를 많이 하고 싶다. 야구, 농구 등 운동에 관한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제 다른 장르도 분석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차기작 '스위트 홈'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지금까지 보여드린 캐릭터와 정반대의 성향이다. 아마 밉게 보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이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대립된 감정들이 공존하는데 그런 부분을 공감해 주셨으면 한다"고 기대를 당부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 SBS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tvN '호텔 델루나', JTBC '18어게인'까지. 3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그리고 또 달릴 이도현의 가장 큰 원동력은 가족이다.
이도현은 "저는 일해야 한다"고 단단한 눈빛을 보이며 "가족이 제일 크다. 장남이기도 하고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해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 돈을 벌어서 여행을 보내드리거나 안마의자 사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TV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그거 자체로 효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95년생인 이도현은 국방의 의무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제가 아직 미필인 것도 '열일'을 다짐한 원동력 중 하나다.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기 전에 열심히 해놔야 한다. 제가 어떤 장르의 작품을 하든 '믿고 보는 배우'가 된다면 군대에서 두 발 뻗고 자지 않을까 싶다"고 웃었다.
마치 뿌리를 깊게 내린 단단한 나무 같았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도현은 웬만한 바람에는 흔들리지 않을 힘을 가진 듯하다. 지금의 의지와 열정이 꺼지지 않는다면 배우 이도현의 한계 없을 성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