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꿈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라고 밝힌 장혜진의 소신은 소박하지만 원대하다. 꾸준히 작품을 하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면서 겸손한 마음을 밝힌 장혜진이다.
장혜진은 1998년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해 영화 '우리들' '니나 내나' '우리집'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던 중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얼굴을 알렸다.
그런 장혜진이 이번에는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제작 아토)로 돌아왔다.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이야기다. 장혜진은 극 중 토일의 어머니인 선명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우선 장혜진은 "설레기도 하고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기도 하다.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한바탕 가족 소동극인데, 얼렁뚱땅하고 얼레벌레하지만 의미가 있다. 어둡지 않은 영화니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다가, 그런 의미를 훅 받아들이셨으면 좋겠다"고 개봉 소감을 밝혔다.
장혜진은 시나리오를 봤을 때 즐거움이 커서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순식간에 후다닥 읽을 정도로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최덕문과 정수정이 함께 한다는 소식을 들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 강말금이 맡은 호훈 엄마 역이 하고 싶었다.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 아니냐. 아들보다 임신한 토일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 좋더라. 그럼에도 선명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마지막 장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선명 캐릭터는 장혜진이 만든 색을 입고 한층 매력이 진해졌다. 장혜진은 최하나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발전시켰다고. 그는 "감독님이 이 역을 위해선 기존에 연기로 보여줬던 따뜻함을 바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냉철하고 쿨한 느낌을 줬으면 좋게다고 하더라. 딸이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선명은 바로 화를 내지 않는 인물이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차분하게 말한다. 이런 캐릭터를 감독과 상의를 통해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극 초반 차분하던 선명은 작품이 전개될수록 입체적인 모습을 띈다. 감정이 변화하면서 선명도 성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혜진은 "그동안 딸에 대한 미안함이 있지만, 아닌 척하면서 톡톡 쐈다면 큰 사건을 겪으면서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안 거다. 토일의 마음을 알고, 선명도 표현하는 지점이 생기면서 성장했다. 캐릭터들이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게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장혜진은 실제로 어떤 어머니일까. 그는 "요즘은 불량 엄마다. 지금 좀 바빠지니까 애들하고 옛날만큼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 잠깐 보는 시간만큼은 더 많이 안아주려고 한다. 그런데 또 내가 없어도 잘 하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나 없으면 안 될 줄 알았는데"라고 너스레를 떨며 "요즘에는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다. 대본을 계속 봐야 한다. 그러면 애들이 알아서 정리하고 치워준다.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표했다.
장혜진은 높아진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가족들은 덤덤하다고. 그는 "애들이 굳이 엄마를 자랑하지 않고 덤덤하다. 내가 미국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을 때 남편은 심지어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상을 받은 소식도 직원들이 말해준 거다. 가족들이 덤덤하니 나도 덩달아 덤덤해질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장혜진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건 영화 '기생충' 이후다. 그는 '기생충'으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장혜진은 큰 인기를 얻은 후 더욱 겸손하겠다는 마음이다. 그는 "정말 행복하지만, 부담도 느낀다. 현장에서는 후배들이 내 모습을 보고 다시 연기할 힘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만 둘까 말까의 기로에 선 후배들이 나를 보고 힘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사려 깊어져야겠다는 생각"이라며 "이제 말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은 단순히 연기를 좋아해서 했지만, 이젠 그 차원을 넘어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응원이 되는 글들이 많이 보이지만, 악플이 달리면 정말 상처가 되더라"고 설명했다.
장혜진은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방문했다. 그는 "첫 시상식이 미국 아카데미고, 첫 영화제가 칸 영화제였다"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시상식이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 정말 눈을 뗄 수가 없더라. 시상식 자체가 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계속 노래도 부르고 시상도 하고 재밌었다. 나도 같이 박수치면서 푹 빠져서 즐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만 보던 배우들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그날 비가 와서 드레스 옷자락이 다 젖었던 기억이 난다. 그걸 움켜쥐고 계단을 오르면서 낑낑댔다. 재밌는 기억이다. 외국 배우들도 '너무 잘 봤다', '너네 최고다', '너네한테 투표했다'고 말해줬다. 잊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혜진은 "꿈은 가늘고 길게다. 상황이 의도치 않게 이렇게 된 거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며 "'기생충'에 취하지 말고 내 갈 길을 걷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끝으로 장혜진은 조연으로서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애초에 내가 연기를 처음 했을 때부터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왜 꿈이 없냐, 왜 주인공 욕심이 없냐고 한다. 물론 나도 있다. 그런데 그릇이 아닌 것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면 내가 속상하다. 어렸을 때부터 주제 파악을 하고 살았다. 분량이나 역할 보다 내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장혜진은 연기에 대한 소신과 인생을 대하는 자세까지 진솔하게 털어놨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은 결코 작은 꿈이 아니다. 긴 인생을 연기와 함께 하면서 소중한 사람과 행복을 꾀한다는 것이다. 이는 장혜진의 겸손함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 장혜진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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