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정수정이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독립영화에 임산부 역할이다. 모두가 반대했을 때 정수정은 자신의 소신으로 한계를 돌파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 정수정이다.
정수정은 2009년 그룹 에프엑스(f(x))로 데뷔해 곡 '라차타', 'NU ABO', '피노키오', '핫 서머(Hot Summer)', '첫 사랑니' 등을 발매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드라마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속자들' '하백의 신부 2017' '슬기로운 감빵생활' '플레이어'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런 정수정이 영화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제작 아토)로 첫 스크린 도전에 나섰다. '애비규환'은 똑 부러진 5개월 차 임산부 토일(정수정)이 15년 전 연락 끊긴 친아빠와 집 나간 예비 아빠를 찾아 나서는 설상가상 이야기다. 정수정은 극 중 임산부 토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정수정은 "첫 영화인데 독립영화고, 임산부 역할이어서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다만 첫 영화나 임산부라는 부담감을 덜어놓고 그 단어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현장의 분위기나 좋은 에너지가 영화에서도 보인 것 같다. 부족한 면들이 많이 보이지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재밌는 느낌이 소소하게 잘 표현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토일은 부모님께 임신한 사실을 숨기다가 중절할 수 없는 5개월이 돼 공개하는 인물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 그러나 정수정은 이런 상황이 실제라면 토일처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난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좀 '쫄보' 기질이 있다. 토일이랑 비슷하게 당당하고 당차고 책임감 있으며, 스스로 믿으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5개월 동안 숨기는 건 이해가 되지 않더라.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토일은 정수정과 닮은 구석과 그렇지 않은 구석이 반반 섞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정수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토일의 캐릭터를 최하나 감독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씬들은 감독님이 생각한 톤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감독님은 나에게 '돈가스를 생각하라'고 말했다. 돈가스는 흔히 점심에 먹는 메뉴 아니냐. 그만큼 아무렇지 않은 듯 대사를 치라는 의미인 것 같다. 토일은 그저 '나 점심에 돈가스 먹었어'라고 말하듯 '나 임신했어'라고 말하는 인물인 것을 알려줬다. 현장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 항상 '돈가스를 생각하라'고 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돈가스 외에도 정수정은 최하나 감독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수정은 "최하나 감독은 딸들의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해 주신 것 같다. 모든 딸이 토일이 처럼 그러진 않겠지만,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도 불과 8~9년 전에 20대 초반이었으니까 그 심정을 잘 이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수정은 실제 어떤 딸일까. 그는 "영화 뒷부분을 보면 엄마랑 진지한 대화가 있다. 그런 부분이 좀 더 실제 나오 엄마 사이 같다. 엄마는 날 무조건 서포트 해주고 내가 뭘 하든 믿고 내 행복을 우선시해준다. 마지막 부분이 실제 내 모습과 가장 닮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극 중 토일은 향후 5년간의 계획을 세우면서 혼전 임신을 한 자신의 모습을 부모에게 설득한다. 실제 정수정은 계획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성격이라고 전했다. 정수정은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일하면서 다 계획적으로 하진 않았다. 알 수 없는 거 아니냐. 어느 작품이 언제 나에게 기회가 올지 모르는 거다. 가수로 예를 들면 앨범을 내고 싶은데 2~3달 밀릴 수 있는 거다. 그때 내가 주어졌을 때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계획 대로 안 되면 다 흘려보낸다.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데 못 하게 되면 운명이 나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다. 그리고 다른 걸 찾아 리프래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 캐릭터를 만나도 한 번의 좌절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정수정의 설명이다. 정수정은 "매 작품을 할 때마다 한 번의 좌절이 있다. 준비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혼자 만의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애비규환'도 그랬다. 혼자 만의 박스에 들어가서 생각했고, 마인드 컨트롤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리셋하면 그때부터 달라지더라"고 밝혔다.
좌절을 겪으면서 정수정에게 롤모델도 생겼다. 그는 "배두나를 좋아한다. 되게 멋있다. 다양한 장르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영화도 많이 찍지 않냐. 그 멋있는 행보를 응원한다. 나도 같은 길은 아니겠지만, 저렇게 멋있는 삶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정수정은 작품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밟겠다고 전했다. 그는 "캐릭터적으로 어느 것을 하고 싶은 건 없다. 그냥 대본을 읽었을 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게 있다. 요즘 더욱 깨닫는 점은 내가 새로운 걸 찾는다는 거다. 군인, 임산부, 여신 등 새로운 캐릭터를 하고 있다. 사실 나에겐 이런 게 중요하다. 새로운 걸 하는 건 재밌지 않냐"고 전했다.
배우로서 지향점을 밝힌 정수정은 인간으로서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다. 그는 "나는 그냥 지금 이 시간이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또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그런 기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바람을 말했다.
이처럼 정수정은 소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은 흔들리지 않는 강한 힘을 지녔다. 앞서 정수정은 에프엑스 활동 시절 차가워 보인다며 '얼음 공주'라 불린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사실 TV나 예능프로그램에서 내가 얘기를 많이 하거나 수다를 떨 수 없지 않냐. 이런 걸 보여줄 기회가 없으니까. 사실 차갑지 보다 수다를 많이 떨고 까불거리기도 한다. 대화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차갑다는 말이 나에게 나쁘게 작용된 건 없었다. 나는 이미지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도 나의 일부분이다. 다른 이미지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나 불만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정수정은 '애비규환'에 대해 "많이 그리울 것 같은 작품이다. 현장도 그렇고, 좋은 말을 직접적으로 들은 것도 이번 작품이 처음이다. '애비규환'으로 좋은 스타트를 끊은 것 같다. 앞으로 영화와 현장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 더 잘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처럼 정수정은 본격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부순 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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