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25년 동안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배우가 있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사랑과 관심이 따라왔단다.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묻어 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운 배우 김희선이다.
김희선은 1993년 데뷔해 드라마 '프로포즈' '미스터Q' '토마토' '요조숙녀' '슬픈연가' '신의' '참 좋은 시절' '앵그리맘' '품위있는 그녀' '나인룸'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대한민국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김희선이 SBS 금토드라마 '앨리스'(극본 김규원·연출 백수찬)로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앨리스'는 죽음으로 인해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 남녀가 시간과 차원의 한계를 넘어 마법처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희선은 극 중 천재 물리학자 윤태이, 시간 여행 중 임신 사실을 알고 홀로 아이를 낳은 박선영이라는 1인 2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김희선은 "다른 드라마의 촬영 기간보다 훨씬 길고 힘든 여건 속에서 촬영했다. 그만큼 배우, 감독, 스태프 모든 사람들에게 끈끈한 동료애가 생긴 것 같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 의지해서 더 두터운 우정이 쌓일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코로나19로 종방연도 못했다. 밥 먹으면서 회포를 푸는 건데, 그 식사 한 번 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안타깝다. 만약 조금 더 나아진다면 스태프들과 같이 밥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술도 한잔하고 싶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앨리스'는 다중 세계에서 여러 인물들이 시공간을 오가는 작품이다. 특히 김희선은 극 중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를 소화하면서 1인 2역에도 도전했다. 다소 어려운 소재를 김희선이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희선은 "'앨리스'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겠다 싶어서 선택했다. 또 감독님을 믿었다. 사실 여러 요소로 인해 우려를 많이 했고, 불안했다. 다 잘하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오히려 나에게 역효과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며 "내가 다양한 캐릭터를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싶어서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더 감독님을 믿었던 것 같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밝혔다.
여기에 김희선은 천재 물리학자 역까지 소화해야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하지 못했다. 다시 해도 못할 것 같다. 요즘 웬만한 게 유튜브에 나와있지 않냐. 유튜브를 보면서 물리학 공부를 정말 많이 했는데도 안 되더라. 따라갈 수 있는 전문직이 있고, 입으로 많이 뱉어서 몸에 배게 억지로 해야 되는 전문직이 있다. 천재 물리학 교수 역은 연습만이 살 길이었다. 원리를 이해한다는 건 도저히 안 되더라. 보면 볼수록 헷갈렸다. 그래서 대사를 억지로 머리에 넣었다. 다음부터 천재 물리학 교수는 안 하려고 한다. 너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청자들 역시 물리학적인 내용이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김희선 역시 이 부분을 인지하면서도 과학적인 부분보다는 휴머니즘에 집중하길 바랐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 평행세계 양자역학은 내가 들어도 거부감이 들고, 어렵겠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시간 여행을 최대한 많이 풀어서 얘기하려고 했다. 그래도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한 분들이 있었다. 우리 드라마의 큰 틀은 모성애고 휴머니즘이기 때문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1인 2역 연기도 어려운 도전이었다. 분장, 대사량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김희선은 "박선영 연기를 하다가 다시 머리를 하고, 분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윤태이 연기를 해야 됐다. 가슴에 박선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빨리 윤태이가 돼야 했다. 장소 대여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어서 빨리 진행했어야 됐다. 조금 더 시간이 있었으면 박선영과 윤태이에게 각각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또 대사량도 어려웠다. 박선영과 윤태이를 다 외워야 됐다. 내가 혼자 A4 3장을 다 외운 거다. 특히 윤태이와 박선영이 한 씬에 등장할 때는 내가 윤태이를 하면서도 박선영의 대사가 뇌리에 남아서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이런 부분이 헷갈릴 때가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주원과의 모성애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고. 이는 김희선이 실제 모성애를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희선은 "일단 분장의 힘이 컸다. 사람이 분장, 헤어, 톤 등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는데 박선영 분장을 하면 박선영이 되더라. 그땐 주원도 철저하게 내 아들이 돼 있었다. 그래서 어려운 장면은 없었다"며 "모성애는 다르지 않다. 모성애는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하고 짠하다. 내가 주원처럼 큰 아들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초등학생 5학년짜리 딸을 키우고 있으니 이 마음을 대입했다. 어쩔 때는 주원만 봐도 눈물이 났다. 모성애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세상 모든 부모는 다 마음이 똑같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우려 속 시작한 작품이지만 김희선은 만족했다. 그는 "1회를 보고 만족했다. 내가 '앨리스'에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부분의 반 이상을 보여드렸다고 할 만큼 다양한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1회를 좋아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경험이 없으니 이를 어떻게 연기해야 될까 고민이 많았다. SF적인 요소를 드라마에서 시도하기 어렵지 않냐. 많은 상상력과 감독, 배우들 간의 대화가 필요했다. 생소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나름 잘 표현한 것 같다. 125%가 다 나온 건 아니지만 감독님과 나는 만족했다"고 미소를 보였다.
여러 어려움 가운데 김희선은 '앨리스'를 이끌었고, 스스로 만족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 이는 김희선의 연기 폭이 넓어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앞서 김희선은 드라마 '나인룸'에서도 1인 2역을 연기하면서 파격적인 변신을 한 바 있다. '나인룸'은 영혼이 바뀌는 내용으로 '앨리스'의 1인 2역과는 차이가 있다. 김희선은 연달아 연기 변신에 성공하면서 호평을 받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희선은 "우선 '나인룸'은 영혼이 바뀌었기 때문에 같은 1인 2역이지만 조금 다르다. 각각 내가 이 사람이 되면 어땠을까 상상하면서 했다. 그때 상황과 캐릭터에 맞게 생각하면서 소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호평해 주셔서 감사하고 기분이 좋다. 그래도 후회가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성장한 모습이라고 하니까 좋다. 25년째 재평가되고 있는 건 감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김희선은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레전드를 경신했고, 긍정적인 재평가도 얻었다. 그가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김희선은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건 역시 대중들이다.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이렇게 오래 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 식상한 대답인지 모르겠다. 이분들의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다. '이런 것도 김희선이 해?' 이런 말을 들으면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희선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억지로 무언갈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이 관심을 받으려고 하면 안 되더라. 참 무섭다. 대중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서 뭘 하려고 하면 멀리 도망가는 것 같다. 그냥 내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지 사랑받으려고 일부러 어떤 행동을 했으면 역효과가 났을 거다. 자기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잘 봐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희선은 25년 동안 톱스타 대열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 역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앞으로도 그는 대한민국이 사랑한 배우의 길을 걸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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