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이미 이별을 고한 연인의 뜻하지 않은 하룻밤은 가슴이 울렁대기 마련이다. 숨 막히는 어색함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는 너무 편안하다. 배우 안재홍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은 이렇듯 연인의 이별을 현실적으로 그렸다. 감독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안재홍의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다.
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감독 안재홍)는 울릉도에 살고 있는 남자 친구 철수(안재홍)를 찾아가 이별을 통보한 영희(이솜)가 난데없는 풍랑주의보로 섬에 발이 묶이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품은 영희가 울릉도에 도착해 철수에게 이별을 고하면서 시작된다. 이별을 고한 영희는 곧바로 섬을 떠나려고 했지만, 풍랑주의보 때문에 섬에 발을 묶여 어쩔 수 없이 철수와 밤을 보내게 된다. 이들은 따로 방을 쓰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로 향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는 30분짜리 단편영화다. 짧은 시간 동안 헤어지는 연인의 감정 변화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울릉도를 배경에서 펼쳐진 연인의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한 영희, 그리고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는 철수. 두 사람 사이에 대사는 없지만 눈빛, 호흡만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짐작게 한다.
이들이 왜 헤어졌는지는 모른다. 전사나 캐릭터 설명 없이 단편적인 모습만 나오는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 배우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안재홍과 이솜은 찰나의 순간, 초 단위로 바뀌는 호흡까지 이별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에의 공감을 산다. 영희가 철수에게 왜 이별을 고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아주 작은 순간, 배우의 감정만이 중요할 뿐이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 사진=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 스틸컷
감춰진 전사와 캐릭터에서 감독 안재홍의 뚝심이 빛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관객들에게 더 큰 서사를 준 것이다. 이별을 한 사람들이라면 저마다의 이유를 대입해 철수와 영희에 공감할 수 있다. 오히려 다 보여주지 않음으로 더 큰 설득력과 공감을 얻은 것이다. 인물들의 이름이 철수와 영희인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철수와 영희는 교과서에 실린 대표적인 이름이다. 특정 인물을 떠올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입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 점에서 안재홍은 영리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안재홍과 이솜은 연기력은 덜어진 전사 속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각각 관객 그 자체다가, 이별을 고한 누군가 된다. 평범한 상황을 곧 대로 전달하는 매개체다. 관객들이 현실에 대입하기 편안한 연기를 펼치면서 관객들을 상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철수가 영희에게 왜 이별을 고했는지 묻는 장면에서는 감정이 극대화된 클라이맥스다. 갑자기 터진 영희의 울음, 갑자기 화가 난 철수의 감정까지 모조리 이해시키는 배우들의 연기 내공은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는 이시스터즈의 곡 '울릉도 트위스트' 가사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중에 익숙한 곡이다. 철수와 영희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리는 음악도 관전 포인트다.
안재홍이 감독으로 첫 선을 보인 건 2016년 영화 '검은 돼지'부터다. 안재홍은 연출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면서 연기, 각본까지 겸비한 만능엔터테이너이자 영화인이다. 단편 영화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한 안재홍이 장편 영화에서도 훌륭히 제 몫을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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