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깜찍한 아역으로 눈도장을 찍은 박은빈이 20대 마지막에 만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더할 나위 없이 꼭 맞는 옷이었다. 차근차근 계단을 올라 청춘의 아픔을 보내며 이제는 더 성숙해질 30대를 준비하는 배우 박은빈이다.
박은빈은 1998년 드라마 '백야 3.98'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명성황후' '상도' '유리구두' '내 사랑 팥쥐' '왕의 여자' '태왕사신기' 등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2년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거듭난 박은빈은 '구암 허준' '비밀의 문' '청춘시대' '스토브리그' 등에 출연했다.
그런 박은빈이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극본 류보리·연출 조영민)로 돌아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아슬아슬 흔들리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박은빈은 극 중 4수 끝에 음대 바이올린 전공 신입생으로 입학한 늦깎이 4학년 채송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박은빈은 "작품을 하면서 코로나19 이슈가 있었고, 태풍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촬영이 지연될 때마다 무사히 끝나는 게 1차적 목표였다. 그 기간을 지나고 마지막 촬영까지 마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제일 크다. 함께한 분들이 좋아서 아쉽지만 무사히 할 도리를 다 하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시원섭섭하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 학도들의 이야기로 박은빈 역시 바이올리니스트로 분했다. 접근하기 쉬운 소재는 아니지만 박은빈은 클래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작품에 임했다. 그는 "원래 클래식을 좋아했다. 그런데 쉬운 소재는 아니어서 과연 괜찮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런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작품을 선택했다"며 "더불어서 바이올린을 하는 여주인공이라는 게 흥미를 끌었다. 바이올린을 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내 열망이 캐릭터에 녹아들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작품 선택 이유를 전했다.
이어 "사실 작년에 이 작품을 처음 제안받았다. 그 무렵 스스로 연기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다. 연기 폭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던 찰나에 이런 캐릭터도 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다른 결의 캐릭터를 보여드리면 삶의 폭도 넓어지고 연기자로 재밌지 않을까. 채송아라는 캐릭터의 결을 생각했을 대 지금 하면 시기상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고 덧붙였다.
삶의 폭까지 생각할 만큼 굳은 의지로 시작한 작품에 박은빈은 만족감을 표했다. 그는 "요즘 시청률 영역은 배우들이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개인적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에 만족한다. 또 결과보다 과정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체감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기대 이상으로 좋아해 주셔서 힘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은빈 /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이렇듯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유독 2~30대 청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픈 청춘들의 방황과 사랑이 공감을 샀다는 평이다. 박은빈 역시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다뤘다는 게 젊은 세대를 공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대본을 봤을 때 잔잔하고 정적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감정선이 주가 되면서 치열한 감정들이 시청자들에게 지루하지 않게 전달된 것 같다. 드라마가 청춘 멜로를 다룬 만큼 현대의 지친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공감을 하고 이입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꼭 20대뿐 아니라 20대를 지나온 분들은 청춘의 향수를 느낀 것 같다. 채송아를 응원하는 분들이 자신을 응원하게 되는 구도가 되길 바라면서 연기했다.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쁘다"고 미소를 보였다.
29살 박은빈은 극 중 자신과 같은 나이인 29살의 채송아를 만나 자신의 20대를 마무리하게 됐다. 그렇기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채송아는 박은빈에게 남다른 의미였다. 그는 "채송아가 바이올린에 진심이었듯이 나도 연기에 진심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비록 채송아는 바이올린 놔주고 행복한 길을 찾아 나섰지만, 박은빈은 새롭게 행복한 길을 찾아 나설 정도로 불안한 청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나도 정돈된 상태다.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채송아의 열정이 다시 한번 나에게 들어오면서 그간의 나를 되돌아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9살의 내가 29살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나이에 대한 부담이 없던 건 좋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캐릭터를 하면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연기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돼서 힘든데 이번엔 그런 고민 없이 내 옷을 입은 듯 편했다. 이런 작품을 하면서 나의 20대를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1년에 한 작품씩 하면서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었다. 28살에는 '스토브리그'로, 29살에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기억할 것 같다"고 애정을 표했다.
7살에 데뷔한 박은빈은 10대, 20대를 연기와 함께 보냈고 어느덧 30대를 바라보고 있다. 쉬지 않고 작품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책임감과 스스로 정해둔 기대치였다. 박은빈은 "단편적으론 책임감이 가장 크다. 내가 맡아야 할 일, 해내야만 할 일에 대해 책임감이 컸기 때문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다. 또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대치였다. 스스로 항상 기대치를 세워두고, 거기에 미치지 못하면 의구심을 가졌다. '내가 왜 이게 안 되지? 내가 이 정도밖에 할 수 없던 사람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졌다. 이런 단계로 인해 어렸을 때보다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말했다.
박은빈의 기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다. 계획을 촘촘하게 세우는 데서 온 기대치가 아니라 다소 추상적인 기대치였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의 경우 '건강하고 즐겁게'가 목표였다. 또 첫 멜로 도전이었기에 이런 장르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역할도 가능하다는 스스로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내 기대치였다"며 "매 작품마다 연기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큰 목표다. 적어도 박은빈이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고 설명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박은빈 / 사진=나무액터스 제공
책임감과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세우면서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한 박은빈은 연기에 대한 즐거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은빈은 "압박과 스트레스보다 잘 해냈을 때 성취감과 즐거움이 더 컸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은 만큼 배우라는 직업은 그런 나를 잘 충족시킨다. 정말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어떤 사람의 일생을 기승전결에 맞춰서 살고, 떠나보내는 과정은 누군가에게 버거울 수 있지만 나에겐 즐거움이었다"고 전했다.
박은빈은 "일을 시작한 건 너무 어린 나이어서 깊은 철학을 갖고 임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 자체가 즐거웠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가끔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다는 건 원동력이었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좋은 어른들을 만나서 칭찬받고, 칭찬받은 즐거움이 스스로의 발전에 기여되고, 그렇게 성장한 내가 스스로 의미를 찾는 작업이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은빈은 30대 첫 작품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그는 "열심히 달려왔던 드라마가 끝난 상황에서 당장 새로운 고민은 없지만, 30대에 들어선 첫 작품은 어떤 캐릭터를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될 것 같다. 휴식 시간을 조금 가진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마음을 가질 것"이라며 "새로운 것이 아닐지라도 낯설게 바라보는 작업을 거치는 게 목표다. 언제 연기를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대본을 읽느냐도 작품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총체적으로 고려해서 30대 첫 작품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은빈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30대에 들어설 준비를 마쳤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내며 한층 더 성숙해진 박은빈이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날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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