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서사의 변주를 자유자재로 휘어잡는 배우, 유아인이 돌아왔다. 올 상반기 '#살아있다'로 치열한 생존기를 담아낸 그였다면 하반기 '소리도 없이'로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벗고 극에 온전히 녹아드는 유아인이다.
15일 개봉한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제작 루이스픽쳐스)는 납치한 아이를 맡기고 죽어버린 의뢰인으로 인해 계획에도 없던 유괴범이 된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의 위태로운 범죄 생활을 그렸다.
극중 유아인은 자의적으로 입을 열지 않는 범죄 청소부 태인 역을 맡았다. 태인은 묵묵히 범죄 조직의 뒤처리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악의 없는 유괴범이 돼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특히 '소리도 없이'를 통해 연기 인생 처음으로 대사 없는 캐릭터에 도전한 유아인은 몸짓과 표정만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먼저 개봉한 소감으로 유아인은 "많은 분들이 작품을 반겨주신다. 그 부분이 아주 감사하다. 또 지금의 호평들이 관객들까지 이어지길 고대하고 있다"며 "이 영화가 관객들의 삶에서 존재하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많이 즐기셨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영화 '베테랑' '사도' '버닝' '#살아있다'까지 늘 도전적인 행보를 보였던 유아인. 매 작품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왔던 그이기에 '소리도 없이'에서의 새로운 면모에 대한 기대감 역시 컸다.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는 저를 개인적으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다. 그동안 배우로서 다른 표현이나 다른 상태, 체온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또 현장에서 감당하는 무게와 책임감을 달리 갖고 싶었다. 그런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고민 중에 '소리도 없이'를 만났다. 아직 결과를 단정 지을 수 없는 단계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작품을 통해 다른 변화, 희망,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며 선택의 확신을 드러냈다.
지난해 유아인은 '#살아있다'와 '소리도 없이'를 역순으로 촬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좀비물과 범죄 스릴러라는 소재의 격차가 있기에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이를 두고 유아인은 "두 작품 모두 임하는 태도가 달랐다. 인물 역시 극단적으로 차이가 있다. 프로가 실험적인 자세로 임한다는 건 위험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현장은 실험이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소리도 없이'는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던 현장이었다. 현장에서 홍의정 감독님을 더 깊게 관찰하고 더 의지하며 따라가려 했다. 그 과정에서 감독님이 지키려는 부분에서 제 힘이 보태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유아인 소리도 없이 / 사진=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컷
'소리도 없이' 러닝타임 99분 동안 유아인의 존재감은 빛을 발한다. 특별한 전사 설명 없이 행동으로만 보여지는 태인은 창복과 동료 그 이상의 우애, 또 삶에 대한 거침 없는 태도, 초희(문승아)를 바라보는 연민 혹은 정의감 등 다채로운 감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다. 특히 삭발과 15kg 체중 중량 등 파격적인 외적 변화까지 감행하며 캐릭터 자체를 입은 듯한 유아인의 모습은 강렬하다. 이 가운데 유아인은 작품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밝혔다.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큰 숙제였을 테지만 그에게는 즐거운 과제로 다가온 것. 유아인은 "서사적으로 소리도 없이, 대사도 없다. 작품 제안을 받았을 때 신인 감독이라 들었는데 아주 도발적이라 생각했다. 빛, 어둠, 소리 이런 것들이 이 영화의 본질이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또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가치가 강하게 느껴졌다"며 작품의 첫 인상을 떠올렸다.
유아인은 태인이라는 옷을 오롯이 입기 위해 스스로 힘을 빼고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인물의 결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배우의 열정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유아인은 "제가 만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너무 많이 소비된 배우가 이 이야기를 무뎌지게 할까봐 많이 경계했다. 내가 느꼈던 도발적인 느낌, 모호하지만 끊임없이 그 이야기가 내 안에서 확장되는 독특한 느낌을 상업 지향 안에서 많이 무뎌지지 않을 수 있도록 까불었다. 아주 복합적인 힘이다. 어떤 곳에서는 나를 지우고 발을 빼는 일을 동시에 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러한 확신 전에는 많은 고민을 거쳤다. 유괴, 인신매매, 살인, 시체 은닉 등 자극적인 소재가 마음에 걸렸다고. 이를 두고 유아인은 "(이야기가) 아주 자극적일 수 있는데 일상으로 그려져도 될까. 위험한 범죄가 일상적인 톤으로 그려지는 것이 긍정적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지만 어느 정도 적당한 양심으로, 저마다 일을 수행하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연기할 때는 앞서의 고민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제 일을 수행하는 인물을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그의 해답을 완성시킨 것은 홍의정 감독이다. 현장에서 유아인은 홍의정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뱉었다. 앞서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인 제작보고회에서 유아인은 홍의정 감독을 두고 '또라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간 셀 수 없이 수많은 작품을 거쳐온 유아인에게 홍의정 감독은 유독 특별한 연출가다. 홍의정 감독과 유아인은 배우와 감독의 이상적인 관계 안에서 평등하고 자유롭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든든한 지지대가 됐다.
이를 두고 유아인은 "바깥에서 영화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홍의정 감독에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게 이르라'고 했다. 그 의사에 반하는 것은 '내가' 용납하지 않겠다고 장난스러운 선언을 하기도 했다"며 "현장에서는 부러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어디로 나를 끌고 가건 얼마든지 다 하겠다는 태도였다. 사적으로 장난도 많이 치고 괴롭혔다. 나를 더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끔 했다"고 말했다. 이는 신인 감독인 만큼 배우를 어려워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배려한 대목이다. 실제로 촬영 현장에서 유아인은 홍의정 감독의 주문과 시도를 그대로 따르며 감독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 과정에서 홍의정 감독은 제작 단계에서 유아인에게 연기 컨퍼런스 용으로 고릴라 영상을 보내 유아인을 당황하게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졌다. 태인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려면 고릴라처럼 본능적인 위압감을 자아내야 하기 때문. 천만 배우인 유아인에게도 고릴라 같은 연기하라는 주문은 당혹스러웠을 터. 이에 대해 유아인은 "1차원적으로 접근했다. 고릴라처럼 움직여야 하나 싶더라. 사실 고릴라는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것처럼 가공하지 않고 동물적인 본성으로 행동한다. 나 역시 아주 동물적인 움직임을 가져가야 했다. 고릴라를 봤을 때 우리가 이해하는 위압감과 느낌을 살리려 했다. 또 극 중 태인의 열등감, 초라하지만 세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약해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유아인이 추구하는 작품관은 '소리도 없이'와 같은 선상에 서 있다. '소리도 없이'는 내 주변에 일어날 법한 범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일상적인 색감과 편안한 컬러를 사용했지만 세상으로부터 방치된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이에 유아인은 "작품 속 희망적이지 않은 이들을 통해 오히려 희망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려한 사기가 유행하는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그럴 듯한 위로나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환상적인 마법들이 아닌 범위의 이야기가 펼쳐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소리도 없이'의 가치가 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밑바닥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작품의 의의를 뚜렷하게 표현했다.
인터뷰 말미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가 자신에게 남긴 가치를 두고 희망이라 표현했다. 영화 자체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떠나 유아인이라는 배우에게도 희망을 선사했다고. 시도와 도전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현장이었고 그가 그린 이상적인 감독을 만났다. 또 비극과 희망을 동시에 짚어내는 주제는 유아인이 원하던 이야기였다. 유아인은 작품을 두고 자신을 빚어내는 현장이라 표현하며 다시 한 번 애정을 드러냈다.
이처럼 유아인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성복 같은 작품을 만나 또 한 번 도약한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담긴 '소리도 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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