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100회에 이르는 대장정, 긴 여정 속에도 이민정은 견고하고 선명했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중심을 잡는 송나희 역의 이민정은 단단했고, 이로써 배우 이민정은 대중들에게 더욱 선명해졌다. 이민정의 재발견이다.
이민정은 최근 종영한 KBS2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이하 '한다다')에서 송나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올해 3월 시작해 9월까지 약 7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오랜만에 긴 호흡의 촬영이었다. 이민정은 "완급조절과 건강 관리에 신경 썼다. 미니시리즈와 달리 여러분들과 함께하며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아서 재밌기도 했다. 오랜 시간해서 그런지 끝난 것 같지 않고 다시 세트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힘들 만도 하지만, 오랜 기간 즐거운 기억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이민정은 "여러 배우들이 함께 대기실을 쓰는 특성 때문에 이전 드라마 촬영에 비해 덜 외로웠던 것 같다. 함께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이 음식도 먹고 하는 것들이 긴 시간의 촬영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생님들께서는 좋은 말씀과 옛날 여담 같은 것도 많이 해주시고, 저희를 편하게 해주시려고 많이 배려해 주셨다. 천호진 선생님은 정말 가족처럼 대해주셨다"며 "KBS가 대기실을 같이 써서 12시간을 같이 있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같이 음식도 나눠 먹고, 웃고 떠들고 하는 분위기였다. 원래 드라마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무게가 2~3kg씩 빠지는데 이 드라마를 하면서는 오히려 살이 쪄서 고민일 정도였다"고 즐거운 촬영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민정이 맡은 송나희는 일남 삼녀 중 셋째지만, 실제 서열은 1위다. 독하게 공부해 의대에 수석 입학해 수석 졸업했다. 그런 독함이 남들에게는 깐깐함, 지독함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직장 내 왕따, 구내식당 내 은따라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성격이다. 이민정은 연기적으로 큰 호평을 받았지만, 스스로는 다소 아쉬웠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초반에 싸우는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센 감정들을 아직 몸이 안 풀린 상태에서 한 것 같은 느낌이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화를 내는 장면을 찍을 때 차가운 느낌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세게 쏴붙이는 느낌으로 표현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정말 화가 났을 때 오히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화를 눌러서 좀 더 차갑게 표현했었어야 했다는 연기적인 아쉬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민정이 선택한 방법은 '대본에 충실하기'였다. 그는 "작가님이 써주신 대로만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캐릭터를 생각했을 때 애드리브가 어떤 때는 큰 임팩트가 있을 때가 있었다"며 "이번 작품은 전작보다 중간중간 의견도 내고 애드리브도 많이 시도했다. 그래서 캐릭터에 대한 애착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민정 이상엽 / 사진=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
또 이민정의 연기에 길라잡이가 된 것은 다른 배우들이었다. 특히 가장 많은 호흡을 맞춘 배우 이상엽은 이민정에게 큰 힘이 됐다. 이민정은 "극 초반부터 너무 싸웠던 장면들이 많았다. 배우들이 모든 연기가 어렵겠지만 싸우는 연기는 감정이 올라가고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에 합을 많이 맞춰봐야 더 편하게 나온다. 그런데 감정이 쌓이는 과정 없이 처음부터 싸우는 클라이막스부터 시작해서 어렵기도 했는데 지나보니 기억에도 남고, 어려운 연기로 첫 스타트를 끊어서인지 그 이후의 연기 호흡이 한결 쉬워지긴 했다"고 밝혔다.
이어 "가장 많은 장면을 함께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서로 의지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상엽 씨가 평상시나 연기할 때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아서 로맨스 연기할 때 둘의 합이 잘 맞았던 게 아닌가 싶다. '나규 커플'이라는 애칭도 붙여주고, 두 사람 얼굴이 많이 닮아서 함께 나오는 모습이 기분 좋고 편안하다는 얘기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며 "지인들이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해서 좋았고, 신기했던 건 어린 10대 분들이 사랑해 주신 게 놀라웠다"고 팬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편이자 배우인 이병헌의 도움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이민정은 "집에서 (남편이) 디테일하게 잘 봐줬다. 좋았던 장면이나 '이런 케이스면 어땠을까'하는 의견을 주기도 하고, 모든 가족들이 공감하면서 봤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는 끝이 났지만, 배우 이민정은 다시 시작점에 선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추진력'의 발판이 된 셈이다. 연기를 시작한 지 14년 차가 된 이민정은 여전히 목마르다.
이민정은 "사실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데뷔가 늦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하고 싶은 열망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조금이라도 연기적으로 나아지고, 조금이라도 나를 찾아주는 곳이 있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아직 20년도 안 됐고, 기껏해야 14년 남짓 된 시간이 남들이 보기엔 길다면 길 수도 있지만, 아직 저 스스로는 못 해본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기름이 많이 남아있는 유전 같다. 제 안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못 해본 것들. 바로 배우 이민정이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는 스릴러 같은 장르물도 해보고 싶고, 사극도 해보고 싶다. 영화에 대한 갈증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작품 수 자체가 많지 않아서 힘든 부분은 있다. 대신 여성 중심의 영화가 잘 되면 그만큼 임팩트가 크다는 것도 안다. 늘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아내, 엄마, 그리고 배우.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욕심이다. 1인 3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이민정의 시간은 열심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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