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가황(歌皇)' 나훈아의, 나훈아에 의한, 나훈아를 위한 추석이었다. 15년 만 안방 나들이에 나선 나훈아가 남긴 여운이 짙다.
나훈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자는 취지로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이하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을 진행했다. 특히 그는 국민들과 다 함께 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공연 취지에 집중하도록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이번 공연은 나훈아의 첫 언택트 공연이었다. 당초 관객들과 함께 하는 야외공연으로 기획됐으나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1000명의 온라인 관객과 함께 하는 비대면 공연으로 전환된 것.
"손 한 번 잡아주이소"란 말로 유명한 나훈아인 만큼, 그는 관객들과 눈을 마주할 수 없고 손을 잡을 수 없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오늘 같은 공연을 태어나서 처음 해본다"며 그는 "우리는 지금 별의별 꼴을 다 보고 사는 중이다. 공연을 하면서 서로 눈도 좀 쳐다보고, 손도 좀 잡아보고 싶은데 아쉽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훈아는 74세란 나이가 무색한 가창력과 기획력이 돋보이는 무대 장치로 역대급 콘서트를 만들어냈다. 나훈아는 장장 2시간 30분 동안 1부 고향, 2부 사랑, 3부 인생을 주제로 '고향으로 가는 배' '고향역' '고향의 봄' '모란 동백' '물레방아 도는데' '홍시' '아담과 이브처럼' '사랑' '무시로' '울긴 왜 울어' '사모' '18세 순이' '갈무리' '비나리' '영영' '공' '청춘을 돌려다오' '남자의 인생' '번지 없는 주막' '고장난 벽시계' '사내' 등 히트곡과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테스형!' 등 신곡을 포함, 30여곡의 무대를 꾸몄다.
감각은 여전했다. 시작부터 배와 기차를 무대 위에 올리며 어마어마한 공연 스케일을 자랑한 나훈아는 바다 입수, 와이어 액션을 불사하는 가 하면 런닝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고,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는 이른바 '환복' 퍼포먼스까지 버무렸다. 트로트, 국악, 클래식, 힙합, 헤비메탈 등 장르마저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그의 콘서트 때마다 '피켓팅'이 펼쳐지는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나훈아의 빛나는 아이디어와 호랑이를 연상케하는 강인한 힘은 아이돌 팬덤까지 홀렸다. 앞으로는 '효도 피켓팅'이 아닌 '나를 위한 피켓팅'을 하겠다는 젊은층도 잇따랐다.
'다시보기' 없는 한 번의 공연이기에 시청률도 폭주했다.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29%를 기록했다. 공연 비하인드가 담긴 미니다큐 형식으로 3일 방송된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이하 '나훈아 스페셜')' 역시 심야시간대 방송이었지만 18.7%를 기록했다.
TNMS에 따르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추석 연휴 기간(9월 30일~10월 4일) TV 방송 시청률 전체 1위를 차지했다. 무려 743만명이 동시 시청했으며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각 연령대 시청률 1위를 휩쓸며 세대를 초월한 나훈아의 저력을 입증했다.'나훈아 스페셜' 역시 무려 392만명이 시청하며 전체 8위를 차지했다.
화제성도 압도적이었다. 나훈아의 이름은 추석 연휴 내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유튜브에도 나훈아 관련 동영상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랭크되며 재조명됐다.
특히 '테스형!'은 '밈(Meme, SNS 등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는 짤방 혹은 패러디물)'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 중이다. '테스형!'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칭하는 말로 중독성 넘치는 멜로디와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테스형" 등의 가사가 인상적인 곡이다.
지난 8월 발매된 '테스형!'은 두 달이 지난 10월, 여러 음원사이트 차트인에 성공하며 역주행했다. '테스형' 덕에 나훈아의 가족관계도 화제에 올랐다. 나훈아의 진짜 가족 외에 '소크라테스'가 의형제로 표기된 것. 이후 삭제됐으나 소크라테스를 친근하게 부르는 나훈아의 재치가 또 하나의 재밌는 에피소드를 낳은 셈이다.
더불어 나훈아가 했던 말도 '어록'으로 남았다. 나훈아는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이 또 왜 저래' 물어봤더니 모른다고 한다. 세월은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가게 되어 있으니까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 우리가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날마다 똑같은 짓을 하고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세월한테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한 번 가보고, 안 하던 일을 하셔야 세월이 늦게 간다. 지금부터 나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것"이라고 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또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의료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이라면서 "코로나19, 이 보이지도 않는 이상한 것 때문에 '절대 물러서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우리 국민은 긍지를 가지셔도 된다. 분명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는 김동건 아나운서 질문에는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살겠나.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훈장 달면 아무 것도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신비주의라니 가당치 않다.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인데 꿈이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저더러 잠적했다고 하더라. 뇌경색에 걸려 혼자서는 못 걷는다고도 하는데 이렇게 똑바로 걸어다니는 게 아주 미안해 죽겠다"며 언론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나훈아는 앞으로에 대해서도 시사했다. 그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다"며 "이제는 내려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그게 길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흐를 유(流), 행할 행(行), 노래 가(歌), 유행가 가수입니다. '잡초'를 부른 가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을 부른 가수, 흘러가는 가수입니다.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런 거(어떤 가수로 남고 싶으냐) 묻지 마소!"
[스포츠투데이 윤혜영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