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코트 안팎 그 어느 곳에서도 고(故) 고유민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전 여자 프로배구 선수 고유민은 지난 31일 오후 광주시 오포읍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나타나지 않은 점을 비춰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고 있다. 자세한 사태 파악을 위해 고 선수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최근 체육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어둡기만 하다. 앞서 트라이애슬론 선수 고 최숙현이 감독 및 선배 선수들의 가혹행위에 시달려 지난달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엘리트 집단 내 만연한 폭행·폭언 추악한 현실에 학을 뗀 최숙현은 경주시체육회·대한체육회 등 전문기관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기뿐이었다. 소속팀 안에서도, 그 울타리 밖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던 최숙현이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 그간 그럴싸하게 포장돼 왔던 체육계 민낯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 시즌까지 코트장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고유민도 보호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운동선수는 평가의 대상이 된다. 매 경기 전쟁에 임하는 각오를 해야 하는 이유다. 중대한 경기에서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악성 댓글에 시달려야 하는 게 일상다반사다. 고유민이 세상 끝으로 간 이유기도 하다.
2013년 CBS배 전국남녀 중고배구대회 여고부 우승을 차지했던 고유민은(당시 대구여자고등학교) 활약을 인정받아 당해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건설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7시즌 동안 팀에서 뛰며 백업 레프트로 활약했다. 지난 시즌에는 주전 김연견의 발목 부상으로 리베로 역할도 도맡았다. 그러나 포지션 전향은 고유민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상대 선수들의 집중공략 대상이 됐고, 점수를 내주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결국 부담감에 리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고유민이 리베로 포지션에서 벗어났지만, 끔찍한 게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악성 댓글이다. '프로 의식이 없다', '이 시기에 빠져야 하나', '팀 패배의 원인이다' 등의 조롱과 매일 마주해야 했다. 개인 SNS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고유민은 오랜 시즌 몸담았던 구단에서도 기가 죽어 있었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유민은 자신의 일기장에 "미스(실수)하고 나오면 째려보는 스태프, 무시하는 스태프,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주전 연습할 때도 코칭 스태프가 거의 다했지 전 밖에 서 있을 때마다 제가 너무 한심한 사람 같았다"고 적었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하기 힘들었다고도 덧붙였다.
증언도 이어졌다. 고유민 선수 선배는 "팀에서 무시당하고 자기 시합 못하고 오면 대놓고 숙소에서나 연습실에서나 그런 거 당한 게 너무 창피하고 싫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고 선수의 어머니도 "사람을 완전 투명인간 취급한다더라"라고 토로했다.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고유민은 지난 3월 초 팀을 무단이탈한 뒤 5월1일 한국배구연맹(KOVO)에 임의탈퇴 공시됐다.
고유민은 직접 "악성 댓글을 삼가 달라"고 부르짖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벽을 앞에 두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익명'을 앞세운 도 넘은 악성 댓글이 지속적으로 고유민을 괴롭혔다. 단 한 글자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는 비수처럼 내리꽂힐 수 있다. 지속성을 갖는다면 어둠의 소용돌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파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는 주인 없는 말에 세상을 등지는 사람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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