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테크노 여전사라 불리며 90년대를 주름잡은 이정현이 이번에는 영화 '반도'를 통해 좀비 잡는 액션 여전사로 돌아왔다. 모성애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총기 액션부터 카체이싱까지 스크린을 채운 그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이정현은 1996년 영화 '꽃잎'으로 데뷔했다. 이후 1999년 곡 '와'로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진 그는 파격적인 콘셉트로 이름을 알렸다. '반' '바꿔' '미쳐' '아리아리' '줄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매해 독보적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가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건 2010년 영화 '파란만장'을 통해서다.
이정현은 "다시 영화를 못 찍는 줄 알았다. 워낙 가수 이미지가 세다 보니 시나리오가 안 들어왔다. 들어오더라도 강한 공포영화뿐이었다. 속상하고 자신감이 없는 시간이었다. 내가 배우를 계속해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며 "그러던 중 우연히 사석에서 박찬욱 감독님을 만났다. 감독님이 '왜 연기를 안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작품이 안 들어온다.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후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 '파란만장'을 같이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파란만장'이 베를린영화제에서 좋은 결과가 있었다. '파란만장'을 하니 '명량' 시나리오가 들어오더라"고 덧붙였다. 이정현은 '파란만장'을 시작으로 '명량'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군함도' '두 번 할까요' 등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반도'(감독 연상호·제작 영화사레드피터)로 관객들을 찾았다. '반도'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작품이다. 극 중 이정현은 반도에 살아남은 민정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정현은 "개봉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영화계도 힘들고 극장도 힘들다. 앞으로 영화 시장이 망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스코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 관객들이 계셔야 영화가 만들어진다"며 "요즘 중단된 영화가 많다. '반도'로 관객들이 많아져서 중단된 영화가 다시 제작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소 좀비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정현은 '반도' 시나리오를 받고 흔쾌히 출연 결정을 했다고. 그는 "앨범 콘셉트를 좀비로 할 만큼 좀비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 '월드워Z' '레전드' '새벽의 저주'를 좋아한다. 또 '부산행'과 '서울역'도 너무 재밌게 봤다. 특히 '부산행'은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극장에서도 보고 TV에서도 많이 봤다. 그래서 '반도'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정현은 연상호 감독과의 인연을 떠올렸다. 그는 "2012년에 KT 올레에서 하는 단편 영화제가 있었다. 거기서 변영주 감독, 연상호 감독, 나 이렇게 셋이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때 뵙고 얘기도 많이 했다"며 "그러던 중 새해 인사드리다가 '반도' 들어가는데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 너무 좋았다"고 설명했다.
'반도'의 시나리오를 받고 이정현은 곧장 액션스쿨을 다니며 연습에 나섰다. 그는 "액션을 잘한다고 느꼈으면 액션스쿨에 안 가지 않았을까. 액션에 자신감이 없다. 현장에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액션스쿨에 다니기 시작했다. 무술 감독님이 현장에 가면 다른 거 많이 시킨다고 해서 그런 걸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거의 2~3개월 다니면서 옆차기 등을 준비했는데 막상 감독님이 하나도 안 시키더라"고 밝혔다.
이어 "현장에서 단순한 동작 몇 초만 찍었는데, 앞뒤로 붙이니 강력한 액션이 나왔다. 그렇게 구상한 감독님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애니메이션을 하셔서 그런지 콘티가 정확하다. 정확한 콘티대로 찍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미소를 보였다.
'반도'의 대부분 장면은 CG다. CG를 상상하면서 연기하는 게 어려울 터. 이정현은 연상호 감독의 철저한 준비 덕에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프로덕션을 완벽히 준비하신다. 현장에서 CG도 가능해져서 카체이싱도 잘 찍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림만 있어서 어떡하나 싶었는데 합성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이해시켜 주시더라"며 "카체이싱은 트럭 앞머리만 있었고, 나머지는 다 CG였다. 합성한 걸 보여주시니 상상하면서 연기하기 쉬웠다"고 전했다.
다만 촬영 시간이 짧다 보니 배우로서 더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이정현은 "매번 촬영이 일찍 끝나서 좋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됐다. 잘 찍혔을까 생각하면 감독님이 불러서 편집한 걸 보여줬다. 너무 신기했다. 딱 필요한 연기만 했기에 일찍 끝난 거다. 철저히 시스템화돼 있는 곳에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했다. 한국 영화가 많이 발전했구나 놀랐고, 이런 시스템을 잘 활용하는 감독님도 놀라웠다"고 말했다.
프리프로덕션과 콘티로 비주얼을 완성했다면, '반도'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가족'은 이정현의 모성애로 완성됐다. 이정현은 실제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조카들을 돌본 경험으로 모성애를 끌어올렸다. 그는 "5자매 중 막내다. 조카도 8명이나 있다. 다 내가 기저귀를 갈면서 자식같이 키웠다"며 "현장에서는 배우 이레와 이예원이 날 보자마자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라다니더라. 너무 천진난만했다. 이렇게 호흡이 잘 맞으니 특별히 어려운 건 없었다. 정말 내 딸이라고 생각하고 찍었다"고 미소를 보였다.
이정현은 "실제 내가 민정의 상황이 돼도 똑같이 행동할 것 같다. 가족도 있고 반려동물도 있어서 지켜야 될 게 많다. 전투력을 키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민정의 선택들이 다 이해가 됐다"며 "민정이 모성애 하나로 험난한 세상을 헤쳐가는 점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전투력을 장전한 이정현은 거친 모습으로 스크린을 활보했다. 그는 "거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신났다. 캐릭터에 맞게 최대치로 꾸며져서 더 좋았다. 내가 나이 어린 배우였으면 예쁘게 나오고 싶었을 텐데 그건 아니다. 더 거칠게 나오길 바라서 주근깨도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딱 캐릭터로 보이니 너무 좋더라"고 했다.
이처럼 이정현은 자신에게 꼭 맞는 캐릭터를 입고 존재감을 뽐냈다. 거친 분장에 거친 액션, 그 안의 따뜻한 모성애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이정현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그가 또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날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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