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무대에서 여장을 하다가도 금세 얼굴을 바꾸고 스승을 팔아 넘긴다. 또 현실감 넘치는 유령을 소화했다가도 강도로 돌변한다. 어느 순간에는 복면을 쓰고 당당히 왕좌에 앉아 있다. 변화무쌍한 배우 최재림의 이야기다.
최재림이 출연하는 뮤지컬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ême)'을 현대화한 작품으로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그린 작품이다. 1996년 미국 초연 당시 '올해 최고의 작품' 등 언론의 찬사와 함께 '렌트 헤즈'라는 팬덤 문화를 일으키며 브로드웨이를 뒤흔들었던 화제의 뮤지컬로, 개막과 동시에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석권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에 초연한 이후, 2011년까지 7시즌 공연되며 최정원, 남경주, 조승우, 전수경 등 당대 최고의 스타가 거쳐갔으며 이건명, 김선영, 정선아, 김호영, 최재림 등 수많은 신예를 스타로 만들어냈다.
최재림은 2009년 '렌트'의 콜린 역으로 데뷔한 이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킹키부츠', '리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에 출연하며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차근 차근 쌓아왔다. 이후 11년 만에 다시 '렌트'의 같은 인물을 맡으며 최재림 만의 콜린을 선보인다.
먼저 최재림은 오랜 만에 콜린 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만큼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며 "'렌트'는 제게 했던 걸 되풀이하는 그 이상이다. 그 전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남한산성'을 다시 해보고 싶긴 하다"고 표현했다.
또 반가운 마음도 크다는 최재림은 "개인적으로 제가 얼마나 콜린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할 수 있을지 도전하게 됐다. 앞서 경험을 한 사람으로써 처음하는 사람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오게 될지 고민했다. 이번에는 실력이 좋은 배우가 많이 들어와 어떤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킬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또 다시 콜린으로 무대에 선 그는 한 번 입었던 옷인 만큼 조금 더 익숙하면서도 자유로움을 한껏 담아냈다. 또 나이를 먹은 만큼 성숙해진 그의 표현력과 에너지는 관객들의 호평을 자아내는 중이다. 실제로 같은 인물을 오디션을 보고 다시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최재림은 제작사의 오디션 요청을 너무도 흔쾌히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렌트'와 캐릭터에 대한 애정 없이는 성사되지 않았을 터. 이에 대해 최재림은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 때 굉장히 감사했다. 항상 일을 제안 받을 땐 감사하다"며 "'렌트'는 제게 데뷔작이라는 각별함이 있다. 당시 좋은 피드백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그에게 이전 무대와 비교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객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그간 쌓인 경험을 토대로 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우려를 이겨냈다고. 데뷔 이후 최재림은 '무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매 무대에 섰다. 이에 대해 '아이다' 공연 때부터 자신감이 많아졌다는 건 루머다. 나는 항상 있었다. 내 지병이 쓸데없는 자신감이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어 "자신감이 있다는 건 스스로에 대한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랑 안 맞는 무대라서 오디션을 고사한 경우도 있다. 그런 것 때문에 주변에서 자신감이 많다고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스위니토디'의 토비는 나와 안 어울린다. 미성숙한 어른, 소년, 잔인한 냉혹한 세상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하기엔 제 성격이 너무 논리적이다. 도전할 생각도 안 한다. '장발장'의 자베르는 내가 아직 어리지 않냐"며 남다른 작품관이 전해졌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 직접 "냉철하고 지적이면서 논리적인 성격"이라며 한껏 자신감을 드러낸 그다. 특히 분장실, 연습실, 무대에서 언제나 밝은 에너지를 선사한다고. 이처럼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최재림은 동료들의 무수한 칭찬을 받기도 했다. 특히 선배 양준모의 호평이 세간의 화제를 자아낸 바 있다. 이에 대해 최재림은 "같은 업계에 있는 분의 칭찬이 가장 좋다. '리타'에서 같이 호흡을 맞췄을 때 제 좋은 면을 많이 봐주셨다"며 짐짓 겸손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무한 자신감'이 가득찬 최재림에게도 '가왕'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앞서 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의 128대 가왕의 정체가 최재림으로 밝혀지며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대해 최재림은 출연 계기를 두 가지로 꼽았다.
그는 "먼저 개인적으로 도전 의식이 앞섰다"며 "작품 홍보 때문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벼운 마음을 시작했다가 후회하기도 했다. '내가 왜 나간다'는 말을 했을까. 취소하면 안되나 했다. 그러다가도 '이게 뭐라고, 이겨내자'면서 다시 연습하곤 했다"며 출연 전 마음 가짐을 회상했다. 이어 "내 노력에 보답하듯 가왕에 등극하고, 또 내 이름이 검색어로 뜨기도 했다. 사실 내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떴을 때 황당했다. 어떻게 알았지? 감사함과 절망감이 동시에 있었다. 주변에서 물어보길래 '아니'라고 했다. 모르는 척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열띤 연습 끝에 가왕을 차지한 최재림. 남자 뮤지컬 배우로서는 첫 가왕인 만큼 더욱 의미가 깊을 법도 한데 정작 본인은 몰랐다고. 이에 대해 최재림은 "의미가 생겼다긴 보다 뮤지컬 업계에 먹칠을 하진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업계의 위상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있다. 자부심과 겸손함을 같이 느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최재림의 말처럼 그는 겸손함의 미덕과 자신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사람이다. 특히 남성적인 마스크와 굵은 체격에 대해 스스로 만족한다고 밝힌 최재림은 "부모님께 감사하다.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잘생겼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멋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목소리를 주신 것도 감사하다. 스스로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본인의 필모그라피를 두고 '잘 풀린 케이스'라고 밝히긴 쉽지 않을 터. 최재림의 당당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운도 따라줬지만 베이스에는 실력과 노력이 있었다. 뮤지컬 판에 들어오기 전 치열히 노력했고, 대학원에 진학하며 연기 공부에 집중했다. 또 배역을 따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자신에게 맞는 인물을 신중히 골랐던 덕분에 지금의 최재림이 있는 것. 현재 최재림의 생각은 데뷔 때와 같다. 아직도 몸을 쓰는 연기를 더욱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고.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채우기에 바쁜 그다. 최재림의 목표는 '현명한 배우'다. 이처럼 자신의 여백을 충실히 채우고 있는 최재림의 앞날이 궁금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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