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강정호가 음주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은지 3년6개월 여 만에 공식 석상에서 고개를 숙였다.
강정호는 23일 오후 2시 서울 상암 스탠포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정호는 KBO 리그를 평정한 뒤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주전급 활약을 펼친 선수다. 빅리그에 도전한 KBO 리그 출신 야수 가운데 최고의 성공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정호는 지난 2016년 12월 서울 시내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해 야구팬들을 실망시켰다. 과거 두 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은 강정호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강정호는 이로 인해 미국 취업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오랜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2018년에서야 취업비자를 발급받은 강정호는 빅리그에 재도전했다. 하지만 오랜 공백으로 인한 경기력 하락으로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9시즌 이후 갈 곳이 없어진 강정호는 미국에 머무르며 새로운 팀을 찾았으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조차 여의치 않게 됐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강정호는 KBO 리그로 눈을 돌렸다. KBO에 상벌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고, KBO는 강정호에게 1년 유기실격과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강정호의 잘못에 비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솜방망이 징계' 논란이 일었다. 강정호가 공식 석상에서 제대로 자신의 잘못을 사죄한 적이 없다는 것도 야구팬들을 화나게 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강정호는 지난 5일 귀국했다. 그리고 2주 자가격리가 끝나고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사죄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준비한 사과문을 꺼낸 강정호는 "제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어떻게 사과의 말씀을 드려도 부족하지만 다시 한 번 죄송하다"면서 "2009년과 2011년 음주운전에 적발돼 면허정지가 됐지만, 구단에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또 2016년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현장을 수습하지 않고 떠나는 부끄러운 행동을 저질렀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어 "제 잘못된 행동을 보고 실망한 모든 팬, 야구를 좋아하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엎드려 사과드린다. 음주운전으로 피해를 본 뒤, 저로 인해 다시 아픔을 떠올리게 된 모든 피해자들에게도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정호는 또 "야구팬들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사과도 너무 늦었고, 스스로도 떳떳하지 못했다"면서 "어리석고 책임감 없는 모습으로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렸다"고 반성한 뒤 "잘못을 되돌릴 수 없지만, 야구선수 강정호이자 인간 강정호로 성실하고 진실되고 살려고 한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칠 각오가 돼 있다. 모든 비난을 감당하며 묵묵히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겠다. 다시 한 번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사과문 낭독을 마친 강정호는 첫 해 연봉을 음주운전 피해자들에게 기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음주운전 예방을 위한 캠페인과 기부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기를 바란다"고 간청했다.
이후 강정호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강정호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KBO 리그 복귀를 결심한 것에 대해 "변화된 모습을 팬들과 국민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어리석었다.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아직도 부족하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돼 꼭 보답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사과가 늦어진 점에 대해서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KBO의 징계가 결정됐지만, 강정호가 다시 KBO 리그에서 뛰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키움 구단이 강정호의 임의탈퇴를 해제해야 한다. 임의탈퇴를 하더라도 키움 구단의 자체 징계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강정호는 "(키움 구단으로부터) 어떤 징계가 나와도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이다.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키움은 강정호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강정호에 대한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여전히 강정호에 대한 야구팬들의 반감이 높은 가운데, 키움 구단이 어떤 선택을 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