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배우 조진웅이 작품에 임하는 자세는 누구보다 뜨겁다. 뜨겁기에 진지하고, 진지하기에 자신할 수 있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다소 난해한 작품도 이해하기 쉽다고 말하는 조진웅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조진웅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그는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 '뿌리깊은 나무' '시그널'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끝까지 간다' '명량' '암살' '아가씨' '공작' '완벽한 타인' 등에 출연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사라진 시간'(감독 정진영·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로 돌아왔다. '사라진 시간'은 한적한 소도시의 시골마을에서 외지인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형구(조진웅)가 사건 수사에 나선다. 그러던 중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상황에 빠지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조진웅은 극 중 시골 마을을 수사하던 형사에서 눈 떠보니 다른 인물이 된 형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라진 시간'은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이다. 앞서 정진영 감독은 조진웅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배우에게 영광이자 한편으로 부담이었다. 조진웅은 "감독님이 날 두고 썼다고 말씀해 주시는 거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고 영광스럽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부담이 되더라. 날 두고 썼다는 건 내가 이 역할을 함에 있어서 판이 보장된다는 거다. 내가 연기만 잘 해야 되는 일이라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사라진 시간 조진웅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이런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조진웅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시나리오가 주는 묘한 매력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시나리오가 연기를 하고 싶게끔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혼자 집에서 연습을 해봤는데, 현장에 가보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감독님 디렉션도 받아 보고 싶어서 선택하게 됐다. 감독님을 처음 보고 한 말이 '원작이 따로 있냐'는 거였다. 그만큼 천재성이 느껴지는 시나리오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나리오를 보고 처음에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럴 때는 가슴으로 느껴야 된다. 배우 스스로는 이해해야 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어서 현장으로 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으로 향한 조진웅은 드디어 정진영 감독과 작업하게 됐다. 조진웅은 배우인 감독과 작업해 소통하는 부분에서 유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소통의 부분이 확실히 달랐다. 배우를 겸하시니까 내가 어느 부분이 가려운지를 아시더라. 배우들도 캐릭터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해오기 때문에 전문가일 수 있다. 감독은 작품 전체의 그림을 보는 사람이고, 어떤 디테일적인 부분에서는 배우가 더 전문가일 때가 있다. 이렇게 배우는 노력하고 감독은 에너지 레벨을 맞춰 연출하는 거다. 그런 소통에서 유리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연기하면서 어떻게 놀든 간에 감독이 날 담아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릴랙스하게 연기할 수 있다. 정진영 감독님은 분명히 날 받아줄 거다. 내가 어떤 돌을 던지든 잘 받아줄 거라는 신뢰가 있었다. 신인 감독에게서 느낄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사라진 시간'에 참여하게 된 조진웅은 자신에게 꼭 맞는 형구 캐릭터를 입고 스크린을 자신의 존재감으로 채웠다. 그간 조진웅은 다양한 형사 캐릭터로 관객들을 만났다. 이번에도 형사 역할이지만, 새로운 느낌이다. 조진웅은 "형사 역은 내가 오랫동안 작업을 한 것 같다. 데뷔 때는 형사들과 살다시피 하면서 배웠다.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다른 영화에서는 형사와 조폭과 관련된 내용이었다면, '사라진 시간' 속 형사는 단순히 직업군이었다. 형구가 자연스럽게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정의로운 형사의 모습보다는 직업이 형사인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라진 시간'은 난해해 일반 관객이 보기에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조진웅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나만 쫓아오면 된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조진웅만 쫓아오면 다 설명이 된다는 거다. 조진웅만 쫓아오면 모호하지 않고, 감정이 가슴속에 오랫동안 향기로 남을 것 같다"며 "이해하기 어려울 땐 내 감정을 쫓아오는 게 현명하다. 내가 감정을 받아주고 정리해서 이해해 주기 때문에 쫓아오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라진 시간 조진웅 /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이런 조진웅의 자신감은 그가 쌓은 연기 경력에서 나온다. 특히 그는 연극판에서 놀던 시절을 자신의 변곡점으로 꼽았다. 그는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는데 의무적으로 선배들 연극을 보여주더라. 그 연극장이 일반적인 소극장의 무대 형태를 갖춘 게 아니라 거의 유치원 발표회장처럼 작은 무대였다. 그렇게 가까이서 열연을 보고 쇼크를 받았다. TV나 큰 뮤지컬은 많이 봤으나 밀접되게 본 건 처음이었다"며 "내가 무대에 있어야 되는데 난 왜 관객석에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조진웅은 "이후 몰래 무대에 올라가 봤다. 올라가 보니 다른 냄새가 다고 소품 하나하나도 다 다르게 보이더라. 이걸 계기로 연극을 더 의미심장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부산에서 안 서 본 공연장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무대에 섰다. 예술의 술이 기술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많이 한 사람을 못 이긴다는 뜻이다. 난 계속 공연을 하면서 쌓았다"고 전했다.
쉴 틈 없는 연극 무대의 경험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조진웅은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다작하는 배우다. 그는 "몸이 그렇게 됐다. 사람들이 가끔 내게 안 힘드냐고 물어보지만 난 연기를 하면서 쉬는 거다. 굳이 쉬어본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매체에서 활약하는 조진웅은 다작을 하고 있음에도 연극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속내를 전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진다. 관객들에게 약속한 게 있는데,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내가 과연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싶다. 또 무대에 선다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 시간이 없어서 완성되지 못한 연습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의무감과 책임감이 드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연기가 더 농익어야 되고, 후배들과 관객들이 바라보는 지점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조진웅은 정진영 감독처럼 연출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파이널 믹싱 하나만 남은 단편 연출작이 있다. 그런데 요즘 시국 때문에 중지가 됐다. 영화제로 보여주고 싶긴 한데, 그것도 코로나19 때문에 불투명하다"며 "13분짜리 단편이다. 장편을 만들기 위한 레퍼런스다.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온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밝은 코미디 장르다. 만약에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극장을 대관해 날 좋을 때 풀면 어떨까"라고 했다.
연극판에서의 경험이 배우 조진웅을 만들었고, 배우 조진웅의 수많은 작업들이 감독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그렇기에 그는 늘 뜨겁고, 작품에 자신감 있는 배우다. 열정을 잃지 않는 조진웅의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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