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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산편지] 이상한 나라의 십이지스타(12 Zodiac Stars)
작성 : 2014년 09월 29일(월) 17:14

12 Zodiac Stars / Andy Han

이곳은 2차원의 평지, 이상한 나라이다. 태초에 창조주는 밤하늘의 별자리로부터 열두 동물들을 내려보내 이 나라를 수호하는 임무를 맡겼다. 이름 하여 십이지스타! 열두 방위에 맞추어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십이지스타가 이 땅을 다스린다. 시간은 이곳에서도 흐른다. 옛날에는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으로 잡았는데, 하여 북쪽 방향을 관할하는 쥐가 오늘날 밤 11시에서 1시까지에 해당하는 시간을 맡고, 이어서 북동쪽을 관할하는 소가 1시부터 3시까지를 맡는 식으로 역할이 나누어졌다. 십이지스타의 몸은 수많은 입체적인 도형과 그 도형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패턴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평면으로만 인식하는 2차원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이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12궁도(12 Zodiac Stars),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88년. 십이지에 대한 관념은 이집트, 그리스,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서양에 걸쳐 폭넓게 퍼져 있다. 우아한 곡선미를 강조하는 아르누보 화풍의 알폰스 무하 작품 12궁도는 달력의 일러스트로 그려졌는데,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2차원 세계의 주민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탁자 위에 거대한 종이 평지가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고 여기에 동그란 동전 한 개가 놓여 있다고 치자. 그것을 위에서 보면 동그란 원으로 보인다. 이어서 바닥에 깔린 종이 가까이로 머리를 숙이면서 눈높이를 바닥으로까지 낮추자. 그러면 동그란 동전의 형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고 마침내 납작한 동전의 높이를 형성하는 하나의 직선만이 보인다. 이 세계에서는 ‘덩어리’ 같은 종류의 입체감이란 건 존재할 수 없다. 동그란 동전이 하나의 직선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는 삼각형이나 사각형 도형이라고 해도 단지 하나의 직선으로 보일 뿐이다. 이 도형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로 솟아오르거나 밑으로 가라앉지는 않는다.

경주 김유신 묘 둘레돌 십이지신상, 835년 추정.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을 새기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생긴 무덤 양식이다. 다른 왕릉의 십이지신상이 갑옷을 입은 데 반해 김유신 묘의 십이지신상은 평복에 무기를 들고 있다.


다행히(?) 3차원 ‘공간’에 사는 우리는 2차원 ‘평면’의 소우주를 ‘위에서’ 쉽게 파악하며 내려다볼 수 있다. 사냥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3차원 공간인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들소, 말, 사슴, 염소 등을 2차원 평면인 동굴 벽화로 그려냈던 선사시대의 주술을 떠올려 보라. 그들이 2차원 그림 속 동물들과 3차원 실제 동물들을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였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십이지스타의 형상 또한 그렇게 만들어졌다. 기하학적인 도형이 형체를 이루며, 형체는 다시 커다란 유기체를 형성한다. 자기 복제를 일으키는 연속 도형들은 펼쳐지고 접혀지는 부채의 동작을 연상시킨다. 사물놀이 캐릭터는 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춤을 추면서 역동성을 더한다. 힘찬 에너지는 강한 생명의 움직임, 즐거운 생명의 움직임으로 전이되어 꽃을 피우고 나비를 불러들인다.

라스코 동굴 벽화, 기원전 1만 7천 년 경. 1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사냥 장면을 그린 그림이 라스코 동굴 벽화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벽화는 놀라울 정도로 세밀한 묘사에 빨강, 검정, 노랑, 갈색 등 풍부한 색감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워낙 사실적이고 생생해서 당장이라도 벽에서 튀어나와 달릴 것 같은 강렬한 모습이다. 인류 초기에는 간결하고 추상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점차 사실적인 형태로 기술이 발전했다는 기존 미술사의 이론을 뒤엎는 충격을 던졌다.


하지만 3차원을 경험하지 못한 2차원 세계의 주민들에게 입체적인 십이지스타는 한낱 허망한 꿈일 뿐이다. 왜 아니겠는가? 아인슈타인이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들도 시간을 차원이라는 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3차원인 공간과 구분되는 별도의 독립적인 개념으로 여겼다. 상대성원리가 적용되고서부터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실질적인 4차원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고, 이 4차원 세계는 휘어져 있음이 증명되었다. 증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4차원 세계를 인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2차원의 주민들 또한 십이지스타가 부여하는 변화와 변화 사이에 있는 여백, 즉 쉼표의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행복을 알아보지 못한다. 차원이 하나 더 많거나 하나 더 적을 뿐이지만 그 차이가 깨달음의 차이를 만든다. ‘절대적 신의 간단한 조작에 의해서 세계는 하나가 된다’는 말이 너무나 절절하게 전해진다.

베리 공작의 기도서, 랭브르 형제(Limbourg brothers), 1412~1416년. 15세기에 활동한 랭브르 형제는 교회나 귀족의 장식품, 세공품, 특히 많은 필사본을 그리면서 유명해졌다. <베리 공작의 기도서>에는 베리 공작을 주인공으로 삼아 별자리 그림 아래에 일 년 열두 달의 생활상이 그려졌다.


2차원의 세계에서도 3차원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은 종교인이거나 물리학자뿐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십이지스타를 경험한다면 정말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선생님, 십이지스타를 보여주세요. 그들의 몸속, 내장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3차원은 어디에 있나요? 어느 방향으로 가면 되나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에게도 진리를 전할 수가 없었던 그들의 힘없는 중얼거림은 오늘도 마찬가지다. ‘북쪽이 아니라 위쪽으로.’ (‘위’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해도 그들은 ‘위’를 ‘북쪽 방향’으로 굳이 에둘러서 오해할 뿐이다.) 글·사진 장다운 보름산미술관 소장

12 Zodiac Stars / Andy Han


12 Zodiac Stars / Andy Han (한승민) 비주얼 아티스트
http://blog.naver.com/hanart24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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