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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이주영이 말하는 '좋은 배우' [인터뷰]
작성 : 2020년 06월 18일(목) 18:00

이주영 / 사진=싸이더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좋은 작품은 시의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고, 좋은 배우는 지금 사회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다."

'야구소녀' 속 주인공이 남들의 시선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달려 결국 결승점을 통과하듯 배우 이주영도 그렇다. 대다수가 기대하는 '배우'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렇게 이주영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영화 '야구소녀'(감독 최윤태·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시속 130km 강속구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지닌 주수인(이주영)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성장 드라마다.

이주영은 '야구소녀'에서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 프로 선수를 꿈꾸는 주수인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주영이 '야구소녀'를 만나고, 또 선택했을 때는 작품을 끌고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던 때였다. 그는 "여성 중심 서사의 작품들이 요 근래 쏟아져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그래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근데 '야구소녀'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 이야기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이주영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실 여자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남자가 아닌 여자도 프로야구 선수는 될 수 있도록 규정이 개정됐지만, 전례가 없을 뿐이었다. 즉 영화 속 주수인은 법이 아닌 남들이 정해놓은 벽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이주영은 "신기했고,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도 이런 일이 있고 또 그런 길을 걸어가는 선수들이 있다는 게 새롭게 다가왔다"며 "저와는 다른 분야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부분을 이 시나리오 안에서 공감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접하고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주영은 이야기는 물론 자신이 연기해야 하는 '주수인'이라는 캐릭터에게도 큰 매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커다란 벽을 있는 것을 알면서도 부딪히고 또 부딪히는 주수인이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수인에게 자연스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자,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고.

그는 "수인이가 무모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포기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데, 저조차도 수인이에 대해 그런 인상을 가졌던 것 같다"며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저도 8년 정도 연기를 했는데, 수인이는 저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야구를 했던 캐릭터다. 만약 저한테 '연기 말고 다른 거 해봐'라고 권유했다면, '왜 그래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내 상황에 빗대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왜 수인이는 이해를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면서, 이주영은 주수인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배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주영은 "주수인 캐릭터를 대하면서 저보다 더 단단하고 뚝심 있는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도 있지만,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굽히지 않고 나아가는 게 저보다 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야구소녀' 속 주수인은 저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작은 히어로 같은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야구소녀'는 히어로 무비가 아닐까"라며 웃었다.

이어 "자존감이 탄탄한 주수인을 보면서, 저도 누군가가 저를 평가하고 한계 지을 수 있지만 저부터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작품을 선택하는 데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그렇다"고 덧붙였다.

이주영 / 사진=싸이더스 제공


이렇듯 누군가에게는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주수인을 잘 표현하기 위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야구선수를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도 공존했다.

이주영은 "실제 야구선수를 꿈꾸는 남자 선수들과 함께 배웠다"며 "야구에 대해 아예 몰랐기 때문에 기본적인 룰이나 투수라는 포지션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필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도 신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부담감이 더 컸다. 주어진 시간 안에 내가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무리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처음에는 감독님이 대역도 있을 거고, CG도 있을 거라고 안심 시켜줬는데, 제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대역이 필요 없겠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촬영장에 가보니 대역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주영은 "어쨌든 짧은 시간 속에 신체의 한계는 분명히 있고, 거기서 최대한을 하자는 마음이 제일 컸다"며 "효율을 따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어떻게 했을 때 앵글에 가장 그럴듯하게 나오고, 어떤 각도로 찍었을 때 폼이 예쁘게 잡히는지 상의하고 생각하면서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이주영 / 사진=싸이더스 제공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이주영만의 또 하나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편견에 맞선다는 점에서는 앞서 이주영이 연기했던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트랜스젠더 주방장 마현이 캐릭터와 비슷하기도 하다. 또한 이주영은 가출청소년을 그린 '꿈의 제인'(2017), 믿음과 불신을 오가는 간호사 역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메기'(2019) 등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작품을 주로 택하고 있다.

이주영은 "제가 선택한 작품의 캐릭터를 봤을 때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다. 작품의 결, 메시지 자체가 소수자나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던 것 같고, 작품성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로 작업을 했다"며 "제가 고착화된 이미지를 밀고 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배우 생활을 계속 해나가면서 외연을 넓혀가려고 할 거고,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간 이주영은 자신의 소신을 꾸준히 밝히고, 작품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등 '젠더 프리' 이미지를 가진 독보적인 배우로 꼽힌다. 자신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젠더 프리 이미지에 대해서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틀에 대중들이 기대하는 게 분명히 있다. 그런데 저는 배우고, 연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냥 하는 거다. 목소리를 낸다는 말 자체가 거창하다. 지금 시대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외압이 가해지는 시대도 아니고, 이야기를 해주고 목소리를 내주고 발언해 줘서 고맙다는 게 더 이상한 것 같다. 저는 딱히 뭘 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초반에 연기를 시작해 좋은 영화나 미디어를 많이 접하면서 가치관이 견고해졌다. 저는 어렸을 때도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를 좋아했다. 살면서 잊고 살았던 부분을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며 "좋은 작품은 시의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고, 좋은 배우는 지금 사회가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배우다. 거기서 대중들이 좋은 영향을 받으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는다고 해도 배움의 창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주영 / 사진=싸이더스 제공


그렇게 자신의 가치관을 견고하게 다지며 작품으로 목소리를 낸 지 8년, 이주영은 20대 후반의 주목받는 배우가 됐다. 기대보다 걱정이 더 많아지는 시기. 이주영은 영화 '야구소녀'를 통해 다시 한번 용기를 얻었다.

이주영은 "이제 20대 후반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걱정도 많고, 겁내는 순간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데 '야구소녀'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겁내지 않고 살아가는 마음이 나도 예전에는 있었구나'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현실에 부딪혀서 살아가다 보면 계산하게 되고, 지레 걱정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는 제가 작품을 선택하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이 일을 하면 이런 걸 얻고, 이런 걸 잃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까 겁이 생겼다"며 "결국에 제 모든 건 예상일뿐이다. 그 예상이 100%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느끼면서 앞길을 모르면 부딪혀 보는 게 안전하고 후회가 남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달리고, 또 달렸던 '야구소녀' 속 주수인을 연기한 이주영 또한 앞으로 겁내지 않고 달려볼 생각이다. 부딪힌다는 것은 무언가를 향해 달리기 때문이고, 달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배우 이주영의 앞으로의 연기 인생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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