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노경은(롯데 자이언츠)이 성공적인 재기를 위해 가까이한 것은 바로 유튜브다. 이역만리 미국에 있는 '랜선 스승'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서클 체인지업 영상을 보면서 자신의 감을 찾기 위해서다.
롯데와 재계약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지난해를 몽땅 날린 노경은은 올 시즌 다시 글러브를 꼈다. 계절이 4번 바뀌는 걸 야구장 밖에서 지켜봐야 했던 노경은의 마음은 바이러스로 얼어버린 현 세계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1년 만에 다시 잡은 기회를 앞두고 노경은은 머리를 굴렸다. 2018년 9승6패로 팀 내 토종 최다승 투수에 올랐던 그때를 떠올리며 '어게인 2018년'을 목표로 삼고 무리하게 공을 많이 던지며 감을 찾아가기보다는 이미지 트레이닝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그가 찾아 나선 사람은 바로 수준 높은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류현진이다. 지난해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30경기에 나서 평균자책점 2.32를 기록하며 '괴물투수' 위용을 뽐낸 류현진의 주무기는 체인지업이다.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현재 류현진 소속팀인 토론토의 워커 투수 코치가 "류현진은 상대 타자들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수준의 체인지업을 던진다"고 목소리 높여 특급 칭찬을 할 정도다.
그런 류현진의 영상을 찾아보며 닮아가려 고군분투하고 있는 노경은이다. 공을 던지지 않고, 영상만 본다고 실전 감각이 올라올까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이는 효과가 있다고 노경은이 직접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그는 16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키움 히어로즈의 타선을 효율적으로 요리하며 팀의 5-7 승리를 이끈 후 "류현진이 체인지업을 어떻게 던지는지 영상을 통해 계속 봤다. 오늘 경기 전에도 보고 마운드에 올라왔다. (나의) 체인지업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그래서 그런지 편하게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날 키움의 강타선을 상대한 노경은은 6이닝 동안 3피안타(2피홈런) 3볼넷 5탈삼진 3실점 쾌투를 선보였다. 투구수는 87개. 포심(5개)의 비율은 높지 않았지만, 커브(15개), 슬라이더(25개), 체인지업(16개), 투심(21개) 등 다양한 구종으로 키움 타자들을 혼쭐냈다. 특히 체인지업 감각이 들쑥날쑥 롤러코스터를 탔던 시즌 초보다 많이 올라온 듯 보였다.
여기엔 류현진의 지분이 상당했다. 노경은은 "서클 체인지업은 공을 훑어야 하는데, 이전에 나는 직구처럼 던졌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투구가 되지 않았다"고 자신을 돌아본 후 "류현진은 잘 훑는다. 그의 영상을 보고 '나도 훑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 포인트를 자주 돌려봤다. 계속 보다 보면 시합할 때 (영상을 보고) 생각했던 발란스가 나올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짧게 압축해보면 노경은은 류현진의 영상을 보고 상상 기법으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짧은 시간에 유럽대륙을 집어삼킨 '전략 전술 천재' 나폴레옹은 전쟁이 임박해지면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전쟁에서 이기는 상상을 했다.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며칠씩 계속되는 상상 속 전쟁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승리를 거둘 때 비로소 종료됐다고 풍부하게 각색되기까지 했다. 노경은에게 매 경기는 '전쟁터'다. 살얼음판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파를 탄 류현진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앞날을 상상하는 노경은이 올 시즌 나폴레옹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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