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영화 생태계 최하위에 위치한 독립예술영화계가 벼랑 끝에 다다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하 코로나19) 여파로 독립예술영화 단체와 개인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다. 이에 김혜수, 최희서, 김태리, 이제훈, 이병헌 등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영화관을 살려달라"며 독립영화 챌린지에 나섰지만 피해 복구는 여전히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국내 독립영화인들의 연대 '코로나19 독립영화 공동행동'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독립영화인 중 절반에 가까운 42%가 코로나19 사태 기간 수입이 전혀 없어 기본적인 생계를 영위하기 어려운 상태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비영리 영화 단체와 영세한 독립영화 제작사 및 배급사, 극장 전체가 사업의 운영을 유지할 수 없는 정도로 활동이 위축되고, 50%에서 100%까지 매출이 급감했다.
영화산업 피해 긴급지원 대책의 예산 중 70.6%가 투입되는 200개 영화관 특별전 개최(30억 원)와 할인권 제공(90억 원)은 코로나19 극복 이후에 진행되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으로, 현재 영화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긴급하고 직접적인 지원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금보유력이 있는 대형제작사와 배급사, 투자사와 달리 독립영화계에 대한 피해지원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개봉예정이던 독립영화의 경우, 대형제작사에 비해 제작진이 당장 생계를 잃게 됐다. 문화예술 관련 업종은 해당 피해사실 증명이 어렵다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최희서 독립영화 챌린지 / 사진=최희서 인스타그램
한 독립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무거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먼저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작품들의 현지 배급이 막혔다. 독립영화들은 해외 유수의 영화제 성과로 추가 타이틀을 얻어왔지만 현재로서는 그것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각종 지역 영상 위원회들로 하여금 코로나 19사태 관련 영화 지원 산업들이 늘었다. 산업적으로 내가 얼마나 가난한지,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증명해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독립영화계는 워낙 산업이 협소하기 때문에 입증 자체가 어렵다. 절대적 수치만으로는 피해액이 적을 수는 있지만 그 피해 자체로 생계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2월 이후 신작의 개봉들이 줄줄이 연기되며 독립영화들도 개봉을 미뤘다. 하반기로 넘어간 영화들도 많아 신규 작품에 대한 투자 자체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로컬, 독립예술영화극장의 상황은 어떨까.
◆ 더딘 회복세로 한숨 가득한 로컬 극장들
1958년 개관한 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로컬극장의 대표 대한극장은 현재 겨우 운영을 이어나가는 정도에 그쳤다. 이 마저도 지속된다면 한계점을 맞이하게 된다. 대한극장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버티는 것 밖에 없다. 회차를 최소화하고 극장 운영 시간을 줄였다. 매출이 작년 대비 80% 급감했다. 지금 같은 상황 속에서 올해 정상화는 어렵다고 본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드러냈다.
실제로 극장 매출은 최악에서 조금 올라온 수준이다. 관객수가 전월대비 소폭 상승한 6월은 아직까지 워밍업 수준일 따름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스템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지원 정책'이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만큼 대승차원의 지원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정부는 방역 물품 지원, 중소영화관 기획전, 할인권 지원 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할인권의 경우 자체 온라인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좋겠지만 대한극장의 경우 결제 대행 업체를 쓰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에만 사용할 수 있다"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대형 멀티플렉스들 위주의 혜택, 속 타는 독립영화관
독립 예술영화관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은 스포츠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회복되지 않는 예술영화관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원승환 관장은 "영남권에 있는 대구, 창원 등 예술영화관들은 대구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 이후 휴관을 길게 했다. 2개월 가량 수익이 아예 없었다. 재개관한 이후에도 관객이 없어 많게는 90%, 적게는 70%까지 매출이 줄었다. 인디스페이스 전년대비 매출이 70% 줄었다.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운 정도지만 휴관을 하지 않아 개봉하는 독립영화들의 상영기회를 주기 위해 축소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대상은 소기업, 소상공인, 휴관을 한 영화관을 기준으로 했다. 따라서 휴관을 하지 않은 영화관들은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이를 두고 원승환 관장은 "사실 큰 영화관 중심으로 지원 대책이 마련됐다. 작은 규모의 극장들은 정책 당국과 소통을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며 후순위로 밀려놨다. 이 과정에서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고 토로했다.
초창기에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코로나19 사태 대책 관련 물품도 받지 못했다고. 대형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방역 물품 지원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독립예술극장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높인 후에야 받을 수 있었다. 이는 최근 진행된 영화관 관람 할인권 사업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8일 영진위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객이 급감한 영화관을 살리기 위해 6월 1일부터 3주간 전국 극장가에 6000원 할인권 133만 장을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 활성화를 통해 영화 산업 전반의 피해를 극복하고 시민의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독립영화극장들은 이 캠페인을 논의하는 협상 테이블조차 앉지 못했다. 이에 대해 원 관장은 "할인권 배부 비율이나 방식을 함께 합의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독립예술관들도 알아야 한다. 95%의 비율을 가져가는 대기업 멀티플렉스들과 협의 후 발표를 했다. 독립예술극장들은 빨라도 6월 말에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거듭 안타까운 마음을 밝혔다.
◆독립영화계의 회색빛 미래
독립예술영화인들은 단순히 정부의 산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로컬 극장들은 통상적으로 상영관협회를 제외하고 개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과 같이 관객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유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한 영화인은 목소리를 높이며 밝지 않은 미래를 안타까워 했다.
"수입이 없는 영화인들이 80%다. 할인권 사업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할인권 예산만 88억만 배정됐다. 향후 정부 대책에도 마찬가지다. 영화인들의 코로나 피해를 줄이기에는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정부가 영화 업계의 현실을 너무 무시한다. 그저 일방적으로 대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정부가 적재적소의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긴급하고 가장 어려운 곳에 들어가야 할 대책 지원이 형평성을 잣대로 나눠지고 있다. 소외 받는 이들이 목 말라 가는 시급한 상황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존 독립영화계는 이번 사태를 통해 기회를 통해 전통적인 시네마 관람 외에도 다양한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멀티플렉스 중심의 영화 관람 뿐만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대에 발맞춰 상영 뿐만 아니라 독립 OTT, 독립 드라마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예술성과 시대적 메시지를 담은 독립영화계가 흔들린다면 이를 기반으로 한 한국 영화 산업 역시 흔들리기 마련이다. 기존 지원체계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