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대중이 배우 배종옥을 계속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미지는 따뜻하면서도 서늘하다. 배종옥의 작품을 찬찬히 바라보면 무수한 인물을 그려 낸 그의 본 얼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그의 얼굴은 마치 다채로운 색깔의 향연이다.
10일 개봉한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제작 이디오플랜)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배종옥)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신혜선)이 추시장(허준호)과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한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무죄 입증 추적극이다.
극 중 배종옥은 기억을 잃은 채 남편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화자 역을 맡았다. 특히 특수 분장이 무색할 만큼 30년의 세월을 뛰어 넘는 인물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호평을 자아냈다.
작품은 당초 2월 개봉 예정작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며 개봉을 두 차례 연기했다. 이후 4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관객을 만나게 된 '결백' 팀. 이에 배종옥은 "관객들의 반응을 찾아보지만 집중하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개봉해서 다행이다. 개봉이 자꾸 연기되며 (개봉 자체를) 못하는 것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다. 관객을 부르기에 너무 미안한 시점이다. 욕심을 버리니 이제는 개봉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결백'은 신혜선, 배종옥을 필두로 정인과 화자, 두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며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의 서늘함과 인물에 대한 연민의 감성을 전달,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선보였다. 배종옥은 "우리 영화가 스토리텔링이 굉장히 탄탄한 작품이다. 정인의 사건 추적을 보는 재미가 작품의 강점이라 생각했다. 관객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겠지만 이야기 인물들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단숨에 읽었노라며 작품 참여 계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또 치매 걸린 노인 역이라는 캐릭터 도전을 두고 '언젠간 할 역할'이라며 "크게 어려운 역할이 아니었다. 그저 치매라는 특성이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연기를 하며 안쓰러움을 강조했다. 인물의 인생이 안쓰럽지 않냐. 흐름 속 연기적 변화가 어려웠을 뿐이지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상현 감독과 서로 인물에 대해 생각하는 지점을 맞춰가며 몸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맞춰가야 했다고. 배종옥은 인물의 감정을 하나 하나 계산하고 또 철저히 준비하며 이야기에 녹아들었다. 그의 고민은 극 중 서사의 한 몫으로 남았고 관객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특히 모녀로 분한 신혜선과의 호흡은 깊은 여운을 자아냈다.
배종옥은 이야기의 가장 중심이 된 신혜선과의 정서적 교류에 대해 실제로 감정이입을 했다고 설명했다. '결백'의 중심 토대가 되는 두 모녀는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을 유지하며 갈등을 극복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구태여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깨달으며 이해하는 과정이 서사의 큰 틀이다. 일반적인 모녀의 프레임이 아닌 두 사람의 그림을 만들기 위해 배종옥과 신혜선은 현장에서부터 '낯선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보이지 않은 낯섦을 만들어야 했다. 같이 작업하다 보면 식사도 함께 하곤 하지만 신혜선과는 밥도 잘 안 먹었다. 영화 촬영을 할 때는 서먹서먹했다. 사실 극 중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세 번밖에 안 만났다. 외롭게 섬처럼 있었다. 배우란 직업이 참 외롭다. 카메라 앞에서 결국 내가 해내야 하는 작업이다. 많은 이들이 도와주지만 내가 그몫을 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있다. 또 특히 치매 걸린 인물이 교류하지 않기 때문에 더 외로웠다."
그러면서도 신혜선에 대해 "금방 감정을 흡수한다. 이해력과 집중도가 좋은 배우"라는 칭찬을 곁들이기도 했다.
실제로 누군가의 어머니이기도 한 배종옥은 자신이 생각하는 부모의 가치관을 살짝 드러내기도 했다. 극 중 화자는 자폐 장애를 가진 아들 홍경을 위해 허위 자백을 감행하며 가늠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화자처럼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한다? 사실 모든 걸 희생할 순 없다. 합리적인 희생을 하는 것이 부모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자식의 눈치를 보게 된다. 하지만 희생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며 "나는 친구 같은 엄마다. 제 딸과 작품 이야기도 자주 하는 편이다. 작품을 보고 좋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영화 '환절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라이브(live)',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등 영화와 드라마, 연극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눈을 뗄 수 없는 명연기와 묵직한 존재감을 선보였던 그.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열정만큼은 그 어느 젊은 배우들보다 못지 않다. 배종옥은 "40대, 작품에 미쳐있었을 때는 작품 밖에 생각할 게 없다. 내 모든 걸 바쳐서 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의 연기 인생을 돌이키기도 했다.
이와 같이 배종옥은 어느덧 36년차의 베테랑 연기자다. 배종옥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인텔리적 이미지와 배종옥 특유의 목소리를 떠올리곤 한다. 배종옥을 사랑 받게 한 이 목소리는 사실 그의 데뷔 시절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배종옥은 "내가 데뷔할 때는 이런 목소리의 여배우가 없었다. 몇 몇 감독은 그 목소리로 배우가 되겠냐고 하기도 했다. 당시 목소리 때문에 배우가 못 할 뻔 했다. 지금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독특하다고 생각하니 고맙다. 사실 대중이 나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나는 스스로를 열심히 사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회상했다.
숱한 장르와 캐릭터를 만나왔던 배종옥이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코미디 장르'다. 그는 "앞으로 코믹 캐릭터를 하고 싶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했지만 지금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코미디는 묘미를 살려야 한다. 언젠가 웃긴 캐릭터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코미디를 잘 하는 배우는 단어 하나도 배꼽을 잡게 하는 느낌을 만든다. 예를 들면 '라이브'의 배성우처럼. 진지하게 들어왔다가 코미디할 때는 눈짓으로 웃게 만든다. 코미디 들어오면 배성우에게 공부하러 갈 것"이라며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처럼 배종옥은 아직도 배움의 자세를 갖고 있었다. 그를 이토록 움직이게 하는 것은 연기에 대한 올곧은 애정이었다. 배종옥은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연기를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힘들다는 생각을 안 한다. 젊었을 땐 더 그랬다. 일하는 게 제일 즐겁다. 35년간 연기를 하며 슬럼프도 있었지만 저는 일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 굳이 특별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 없다. 끊임 없이 달려오게 됐다. 배우로서 여기까지 오기까지 굴곡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너 나름대로 잘 살았구나' 생각이 든다. 새삼 감회가 새롭다. 열심히 달려 왔기 때문에 보람 있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좋은 캐릭터로 빛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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