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최혜진 기자] 무모할 것만 같던 꿈은 현실이 됐다. 늦은 나이에 음악을 포기하고 연기 생활에 뛰어든 김준한은 몸소 성공을 증명했다. 꿈꾸며 달려온 김준한에겐 늦은 나이란 없다.
김준한과 '슬의생' 안치홍의 서사는 마치 평행세계와 같다. 서른 한 살의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된 안치홍처럼 김준한도 서른 한 살에 배우가 됐다. 김준한은 2005년 밴드 izi 드러로 활동하다 배우로 전향해 2014년 영화 '내비게이션'으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박열' '허스토리' '변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신의 퀴즈 : 리부트' '봄밤' 등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통해 신원호 사단에 눈도장을 찍은 그는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극본 이우정·연출 신원호, 이하 '슬의생')에도 낙점됐다. '슬의생'은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병원에서 평범한 듯 특별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 중 그는 신경외과 3년 차 레지던트 안치홍 역으로 열연했다.
신원호 감독, 이우정 작가와 두번째로 호흡을 맞춘 그다. "감독님, 작가님이 안치홍 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를 추천하셨다"고 밝힌 그는 "미팅을 하러 갔는데 대본을 읽어 본 후 바로 그 자리에서 출연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이미지 변신을 위해 출연을 희망했다. 다수 작품에서 줄곧 악역을 맡아온 그는 다정하고 섬세한 안치홍으로 완벽 변신하리라 다짐했다. 그는 "제가 그동안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연기했는데 따뜻하고 배려심 있는 모습도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의학 드라마'는 쉽지만은 않은 장르였다. "(작품 출연에) 부담감이 없진 않았다"고 털어놓은 그는 "그래도 저만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니 다 같이 힘을 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실제 작품을 위해 자문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계셨고, 고증에 있어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었다. 연기를 해야 되는 신이 있다면 미약하게나마 좀 찾아보고 공부를 했다"고 전했다.
남다른 각오로 임했던 만큼 작품에 애정도 커져만 갔다. 그는 "현장 가는 게 너무 행복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에너지 속에서 머물렀다. 그래서 그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립다. 헤어지면서도 많이 아쉬웠고 빨리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시청자로서도 재밌게 보던 작품이라 빨리 시즌 2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아쉬운 종영 소감을 밝혔다.
'슬의생' 속 안치홍은 그간 김준한이 보여 준 악역 캐릭터들과 180도 달랐다. 그는 극 중 채송화(전미도)를 묵묵히 짝사랑하는 안치홍으로 분해 다정하고 든든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전작의 강렬했던 악역의 이미지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준한은 "그런 평은 배우에 있어서 너무 감사한 이야기다. 저를 못 알아보셨다는 말에 너무 감사했다"고 감격했다.
그러면서도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좋은 글과 감독님의 연출이 있어야 한다. 드라마의 톤, 배우들의 분위기, 분장이나 의상 등이 모든 것이 어우려져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배우 전미도에 고마움과 존경을 드러냈다. 그는 전미도에 대해 "누나 자체가 인간적인 사람이고, 연기에 있어서도 모범생이었다. 작품을 위해 준비해 온 것도 정말 많았다"이라며 "사람으로서 너무 매력이 많았다. 짝사랑하는 역할에 몰입하기 굉장히 수월했을 정도다. 실제 누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본 현장 속 전미도는 채송화 그 자체였다고. 그는 "'슬의생'을 통해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색깔 중 하나를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연기도 더욱 자연스러웠고 각자의 개성도 다 살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매긴 안치홍과의 싱크로율은 몇 점일까. 그는 "실제로 저는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발랄한 면이 많다. 저보다 치홍이가 더 어른 같다"며 "치홍이는 채송화와 교수-제자 관계다. 그래서 채송화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 같은데, 실제 저는 다양한 곳에서 소스를 얻으려 한다. 나이 불문, 장르 불문, 누구든 간에 배울 점을 찾는 걸 좋아한다"고 치홍이와의 차이점을 털어놨다.
다정한 매력의 안치홍은 시청자들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그러나 채송화의 마음을 앗아가진 못했다. 특히 '슬의생' 마지막회에서 두 사람의 러브라인이 불명확한 채로 마무리돼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는 결말에 대해 "러브라인이 결론 나진 않았지만, 치홍이의 모습을 생각해 봤을 땐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무너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치홍이가 무너지질 않길 바랐겠지만 사실 인간은 때론 무너지기도 하고,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한다"며 "치홍이에게 있어서는 많은 성장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한 단계 성숙해져가는 과정인 것 같아서 의미 있는 결말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열린 결말로 인해 시청자들은 채송화-이익준을 지지하는 익준파, 채송화-안치홍을 지지하는 치홍파로 나뉘었다. 김준한은 이 같은 반응에 대해 "너무 재밌는 반응이다. 각자의 생각과 취향이 달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치홍파가 아닌 분들을 보며 상처받진 않았다. 반응 또한 격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감격했다.
김준한에게 있어 '슬의생'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또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슬의생' 속 '99즈'로 불리던 의사 5인방은 '미도와 파라솔'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직접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밴드 izi 드러머 출신 김준한은 "제가 재밌게 밴드 생활을 했었던 게 생각이 났다. 재밌어 보였다"고 말했다.
'미도와 파라솔' 밴드 실력에 호평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제가 도움을 드릴 것 없이 연습량이 많고 완벽했던 밴드"라며 "5명의 밴드 실력을 방송에서 보고 놀랄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드럼을 연주했던 유연석에 대해 "유연석이 사물놀이를 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 리듬감이 좋았다"고 감탄했다.
밴드로 활동했지만, 연기에 남다른 열정을 지녀온 김준한이다. 그는 배우와 밴드 활동의 차이점을 '괴로움'으로 설명했다. 그는 "연기는 즐거움으로 승화가 가능한 괴로움이지만 음악은 마냥 괴롭고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음악인에게 필요한 재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노력할 수 있는가'이다. 꾸준히 노력해야 성과를 이뤄낸다고 생각하는데 음악은 그것조차 힘들었다"며 "그렇지만 연기는 꾸준히 하는 것조차 재밌고 매 작품마다 설렌다"고 설명했다.
시즌 2로 이어지는 작품인 만큼 김준한은 여전히 안치홍으로 남고 싶어 했다. 그는 "이번 작품으로선 그저 안치홍으로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며 "제가 인복이 너무 좋아 이번 기회에 많이 배웠다. 제게 수업 같은 작품이었고 배우 생활에 큰 밑거름이 될 시간들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김준한은 음악인에서 진정한 배우로 거듭났다. 자신 앞에 높여진 제약과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함으로써 이뤄낸 성과였다.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는 금언을 성공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배우' 김준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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