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당 이재관, 오수초족도(午睡初足圖), 종이에 수묵담 채, 56×122cm, 19세기 초반, 리움 미술관 소장
요즘 나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있다. 결혼하며 회사가 가까운 동네로 분가할 때가 생각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섭섭해 하는 식구들을 보면서, 부모님이 늙고 내 아이들이 적당히 크면 친가와 처가 가족이 가까이 모여 살면 좋겠다고 계획을 세웠더랬다. 그런데 그 막연한 결심이 정말로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는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인지 아이들 양육 및 교육 문제, 장거리 출퇴근 문제, 그리고 보다 자주 맞닥뜨릴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 문제 등 염려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디 걱정이 그뿐이겠는가. 다들 알다시피 아파트 시세가 폭락하면서 거래 또한 덩달아 이루어지지 않는 터라 마음먹은 대로 집을 구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이자와 빚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남은 방법은 내 집을 버리고 대출을 얹어 전세살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아파트로 대변되는 부동산의 가치가 폭락하자 사람들은 드디어 집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역설적이게도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꿈도 꾸게 되었다. 그리고 집이라는 물건이 대대로 물려줄 우리 가족의 유산으로 남겨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디에 집을 지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집터를 잡는 일은 좋은 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때의 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 ‘복거론(卜居論)’에서 집터 잡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선비란 모름지기 조정에 나아가 벼슬하지 않고 산림에 은거하는 자다. 그러니 마련해 둔 한 뙈기의 땅과 몇 칸의 집이 없다면 어떻게 그 몸을 의지해 생업을 편히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복축(卜築 : 터를 가려 집을 지음)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은 경솔하게 살 곳을 결정할 수 없다. 논밭을 다듬고 원포(園圃: 과일나무나 채소를 가꾸는 뒤란)를 만들어 꽃과 나무를 심어 놓은 뒤에 거기를 살 곳으로 정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면 많은 공력만 헛되게 허비한 결과가 되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그러니 반드시 풍기(風氣)가 모이고 앞과 뒤가 안온하게 생긴 곳을 가려서 영구한 계획을 삼아야 할 것이다.
글만으로도 소박하고 편안한 선비의 사랑채가 그려진다. 나에게도 이런 집이 허락될 수 있을까? 이 또한 집을 향한 집요한 욕망이라면 욕망일 것이다. 금강산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단발령(斷髮嶺)’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유람을 떠났던 수많은 시인묵객이 그 아름다운 경치에 홀딱 빠져서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금강산에 들어갔다 하여 생긴 이름이란다. 불가에서는 세속과 극락의 경계가 없다 하였는데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면 그 말이 공허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집이라는 게 딱 그런 것 같다. 그야말로 세속과 극락의 경계에 있는 셈이다. 때로는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가져다줄 것만 같은 허망한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 가족의 행복한 쉼터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간절한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겸재 정선,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斷髮令望金剛山), <풍악도첩(風樂圖帖)>, 비단에 옅은 색, 37.4×36cm, 171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과연 ‘참 삶의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속세를 버리고 극락에 갈 수도, 하다못해 금강산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에 다다랐을 때 예술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림으로나마 ‘내 삶의 공간’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을 한쪽 벽에 걸어 놓고서는 감추어진 나만의 욕망을 은밀히 발산하거나 다스린다. 그러니 하우스 푸어, 전세살이를 시작하면서 챙겨야 할 이삿짐 목록의 맨 윗줄에 그림 한 점쯤 선별하여 적어 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글·사진 장다운 보름산미술관 소장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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