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우리 (프로그램) 포맷은 비싸지 않다. 구입을 하시면 가이드를 자세히 해드리겠다. 베끼는 것이 더 힘들다. 비싸지 않으니 가능하면 정품을 구매해 달라."
중국의 국내 예능 프로그램 표절 현상에 대한 CJ E&M 나영석 PD의 일침이다. 중국 방송들의 한류 표절이 몇 년째 심각한 수준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목은 물론 프로그램 포맷 전체를 베껴 국민 예능으로 등극하고, 후속 시즌을 제작하는가 하면 해외에 수출까지 하는 실정이다.
정식으로 판권을 수입해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고, 중국 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한국 프로그램을 베끼지 않은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PPL(간접광고)이 활성화된 중국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어느 정도 보장된 후에 협찬을 받고,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순수 창작'보다는 기본적인 시청률과 화제성이 보장되는 외국, 특히 한국의 인기 예능을 표절하고 있다.
윤식당, 중찬팅 / 사진=tvN, 후난위성TV
중국의 표절 대상 프로그램은 '1박 2일', '무한도전', '런닝맨', '전지적 참견 시점', '복면가왕, '미운우리새끼' 등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종합편성채널 및 케이블 방송이 제작한 '윤식당', '삼시세끼', '프로듀스101', '효리네 민박', '팬텀싱어'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있다.
중국 후난TV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향왕적생활'은 tvN '삼시세끼' 포맷을 도용했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시즌제로 제작되며 인기리에 전파를 타고 있고, tvN '윤식당'을 그대로 베낀 후난TV '중찬팅' 또한 시청률과 화제성을 모두 잡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동방위성TV가 2015년부터 방송한 '극한도전'은 MBC '무한도전'의 정식 판권을 구매한 CCTV '위대한 도전'과 달리 판권 구매 없이 포맷을 그대로 베낀 예능 프로그램. 이에 더해 최근 방송에서는 tvN '신서유기'의 게임을 그대로 베낀 듯한 내용이 전파를 타 논란이 일고 있다. 게임 내용은 물론, 카메라 워킹, 편집 방식까지 그대로 가져다 쓴 듯한 모양새다.
중국 인기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의 영향을 받지 않은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중국 망고TV 웹 예능 '밀실대도탈' 정도가 tvN '대탈출'의 판권을 수입해 방송하고 있다. '대탈출' 정종연 PD는 "일주일 정도 스토리 위주로 컨설팅을 했다. 기술 스태프도 가서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을 컨설팅하고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정문가들은 2016년 7월 사드 배치에 즈음한 한중관계 악화로 중국 정부의 해외 방송프로그램 포맷 수입이 제한되면서 중국 방송사의 국내 방송 표절 행태가 더욱 심각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SBS '런닝맨'의 중국판으로 판권을 구매한 뒤 제작, 방송하던 중국 저장위성TV '달려라 형제'는 '한한령'(한류 제한 명령) 이후 제목을 '달려라'로 은근슬쩍 바꾸고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2015년 MBC '복면가왕' 포맷 수출 계약을 맺고 방송된 장쑤위성TV '몽면가왕' 또한 '한한령' 이후 수익금 정산을 제대로 하지 않고,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약간만 고치더니 이름을 '복면가수를 맞춰라'로 바꿨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난해 12월까지 총 네 개 시즌에 걸쳐 방송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달려라, 복면 가수를 맞춰라 / 사진=절강위성TV, 장쑤위성TV
오랜 시간 지속돼온 중국의 프로그램 표절을 해결할 뚜렷한 대응책이 없어 방송 관계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해당 프로그램이 표절 제기를 했을 때 유사한 포맷일 뿐이라며 표절을 부정하는 경우가 다수다.
한국저작권협회 관계자는 스포츠투데이에 "원저작물은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의 침해여야만 '표절'이 인정된다. '포맷'을 베끼는 것은 국제적으로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으로 인정받지 않는 실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어떻게든 해결돼야 할 문제라는 데는 공감하고, 정부 차원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저작권협회 관계자는 "대응에 한계는 있지만, 해외 사무소를 통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고 있고, '예능 포맷 바이블' 제작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의 예능 프로그램 표절 논란에 중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중국의 노골적인 베끼기 행태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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