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사냥의 시간' 박해수가 이전의 얼굴을 모두 잊게 만든 새로운 그의 페르소나를 드러냈다.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제작 싸이더스)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들의 숨 막히는 사냥의 시간을 담아낸 추격 스릴러물이다. 극 중 박해수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한으로 분해 네 명의 친구를 뒤쫓는다. 한은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친구들 앞에 나타나 쉴 틈 없이 이들을 몰아붙이며 공포감을 주는 인물이다.
당초 2월에 개봉했어야 할 '사냥의 시간'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인해 긴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주연배우인 박해수 역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던 상황들을 두고 속을 앓아야 했다고. 당시를 두고 박해수는 어쩔 수 없었다고 표현하면서 "제 속이 제 속이었냐"고 슬쩍 웃어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크린에서 OTT 플랫폼으로 전향한 최초의 선택이 영화계의 새로운 바람을 야기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박해수는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뀔 것 같다. '사냥의 시간'은 앞으로 시장 상황이 변화를 맞게 됐을 때 그 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냥의 시간'은 대형 스크린이 아닌 넷플릭스 플랫폼로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는 국내 영화계 최초의 선례로 '사냥의 시간'이 선택한 새로운 루트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넷플릭스는 분명 대중적인 플랫폼이지만 스크린이 주는 몰입감을 생각했을 때 아쉽진 않았을까. 이를 두고 박해수는 "분명히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보면 좋은 점이 있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 특성상 보고 또 보고, 멈췄다가 다시 보는 방식이 유리하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영화 '양자물리학' 등 그간 쾌활했던 캐릭터를 주로 맡아왔던 박해수는 이번 작품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를 선보인다.극 중 이유를 숨기고 사냥감을 쫓는 한의 극악무도함은 이야기의 몰입감과 장르적 특성을 극대화시킨다. 캐릭터 서사를 완성시키기 위해 박해수는 윤성현 감독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장르를 담아낸 인물'을 완성시킨다.
서스펜스 장르 자체를 캐릭터에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던 박해수는 "쫓기는 자들의 극대화된 공포감"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그의 말처럼 한이라는 인물은 국내 영화에서 꽤 보기 드문 '서사 없이 움직이는 악인'이다. 이를 두고 박해수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한국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인물이라고 자부한다"면서 "이 인물의 과거는 단 한 개도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물론 관객들이 짐작할 수 있는 인물의 서사는 있다. 전쟁을 겪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한을 완성시키기 위해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참고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속 한을 연구하며 박해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앞서의 하비에르 바르뎀을 참고했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가 완성됐다.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갖게 되며 모티브, 레퍼런스 없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그의 방이나 몸을 보면 과거를 엿볼 수 있다. 한은 특수부대 출신이고, 전쟁통에 있던 생존자다. 매 순간 총소리와 비명 소리를 듣고 죽음을 목도한 사람이 조용한 방에 있으면 어떨지 상상했다. 죽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며 "그래서 한은 누군가를 쫒거나 죽여야만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캐릭터가 됐다. 삶과 경계에 선 인물이기에 극 중 인물들을 쫓는 것도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욕망에서였다고 생각했다"고 자신 만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삶에 대한 욕망을 녹여내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했던 고민을 두고 박해수는 윤성현 감독의 연출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한의 전사를 밝히는 것이 장점보다 단점이 커서 이렇게 연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악인인 한은 되도록 함축적으로 표현돼야 한다"며 윤성현 감독의 의도를 이해했다.
"극 중 한은 자신보다 어린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등 네 명에게 계속 존댓말을 쓴다. 이는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존재 자체가 다르다'는 뜻에서 써보려 했다. 실제로 너무 힘이 쎈 사람은 너무 힘이 없는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을 봤다. 이를 두고 윤성현 감독도 고민하더니 내 의견에 동의했다. 타인에게 존댓말을 쓰는 행위가 상대를 인격 자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가 갖고 있지 않은 낯선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박해수는 자신을 극단적으로 몰아 붙이며 극한의 연기력을 이끌어낸다. 특히 '내면의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현장을 비롯한 모든 생활에서 외로움을 살려 내야 했다. 당시를 두고 박해수는 "현장에 존재하지만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배우들, 윤성현 감독과 최대한 거리를 뒀다. 지방 촬영할 때는 숙소에만 있었다. 정말 외롭고 고독한 과정이었다. 현장에 가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면서 "나중에는 편해졌다. 그때 쓴 일기를 보니 다른 사람 같더라. 낯설지만 큰 도전"이라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사냥의 시간'. 이후 관객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고 일각에서는 스토리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혹평을 전하기도 했다. 이처럼 확연하게 나뉘는 '호불호'에 대해 박해수는 "예상했던 반응"이라며 "스토리텔링을 친절하게 하기보단 감정선을 따라가는 장르적 영화다. 몰입해서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박해수의 말을 빌리자면 '사냥의 시간'은 그 안에 빠져들어 순간 순간 호흡들을 느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이는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외로움과 고독을 몸으로 체화한 박해수의 공이 크다. 그의 고민과 노력은 영화에 톡톡히 담겨졌다. 작품를 보고 있노라면 박해수의 서늘함이 공포감 보다 더 큰 감정을 자아내기도. '사냥의 시간'은 캐릭터를 넘어 작품 자체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든 배우 박해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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