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살면서 내가 내가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세대를 거쳐 몸에서 몸으로 유전된 기억이 나를 지배하면서 내가 내 몸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라고 느껴질 때 말이다. 사람들은 이를 ‘아빠 닮았네, 엄마 닮았다.’라고 말하며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닮음을 평가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몸에는 인류의 탄생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위대한 생존의 비밀이 뿌리 깊이 새겨져 있기에 이토록 닮아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장구한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남아 오늘의 나라는 존재에 이르렀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 평범한 일상조차 불현듯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빚은 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는 사우디아라비아에도 퍼져 살았을 것이다. 한참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칭기즈칸의 세력이 중동에까지 이르자 그중 한 사람이 원나라 연경(지금의 베이징)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제국공주를 따라서 고려에 들어왔는데 그이가 바로 나의 시조 할아버지다. 그런 그가 매사냥을 즐겼던 충렬왕의 일행으로 수도 개성을 떠나 김포를 거쳐 인천 계양산 근처 매방(사냥용 매를 기르고 교육시키는 곳)에 종종 들렀는데 현재 보름산미술관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바로 그들이 사냥을 즐겼던 장소이다. 한 번도 경험한 일이 없는 상황이나 장면이 언제, 어디에선가 이미 경험한 것처럼 친숙하게 느껴지는 일을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는데 보름산미술관이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연 것 또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Nathan Sawaya, 원?삼각형?사각형, 레고 아트
오늘은 가끔 인사동에 마실 나가는 아이들 할아버지가 노점에서 샀다는 칠교놀이를 손자들에게 내민다. 칠교 조각은 크고 작은 삼각형 다섯 개, 정사각형 하나, 평행사변형 하나로 되어 있다. 이것을 적절히 배치하여 칠교도 속 그림을 만드는 것이 놀이 방법이다. 레고나 몰펀 같은 블록놀이에 익숙한 아이들이 칠교놀이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는 의문이지만 예로부터 두뇌를 발달시키는 데에는 최고라고 여겨졌던 칠교놀이를 손자들에게 선물한 할아버지의 의도는 충분히 알 만하다. 칠교 조각을 주물럭거려보았다. 칠교도에는 수많은 형상이 있다. 7개의 조각이 나름의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하고, 그 모양새를 맞추는 건 더 재미있다. 칠교놀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터득하면 사서삼경을 숙독한 경지에 도달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놀이를 하면서 저절로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며 사람의 도리를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우리 몸이 유전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칠교도는 우리 몸 문화유전자가 어떤 모양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할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잘하면 세 번의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은 나 자신을 통해서, 그 다음 한 번은 자식을 통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번은 자식의 자식, 그러니까 손자손녀를 통해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 아이들에게서 부인할 수 없는 나의 모습과 내 아버지의 모습, 심지어 내 형의 모습까지 발견할 때마다 엄청 놀랍기도 하면서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이는 건 비단 나만이 느끼는 본능적 감각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내가 자랄 때는 전혀 살갑지 않았던 아버지가 손자들에게는 칠교놀이를 건넬 만큼 사뭇 세밀한 자상함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세 번째 인생만큼은 결코 허투루 살게 하지 않겠다는 아버지 몸속 ‘자기 복제자들’의 굳은 다짐 때문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 안에도 내 안에도 있다. 바로 그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P. S. 계양산을 또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부천시 중동의 장말에서는 임진왜란을 피해 평택에서 이주한 나의 시조 할아버지의 후손들이 모여 산다. 그들 가운데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장말 도당굿을 주재하는 도당할아버지가 있다는데 ‘춤추는’ 칠교가 그의 굿판에서 펼쳐지는 춤을 닮지는 않았을지 꽤나 궁금하다.
글·사진 장다운 보름산미술관 소장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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